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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결 Dec 02. 2022

2만 9천 원짜리 갈비탕이 계속 아른거리는 이유

잊지 못할 식당 1

  잊지 못하는 식당이 있다. 아니, 꼭 다시 가고 싶은 식당이 있다. 맛있는 식당을 검색하고 맛있는 식당을 발굴하는 게 업무지만 그 과정에서 만나는 모든 식당들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식당을 많이 다니기에 정말 다시 가고 싶은 식당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그 이야기를 살짝 풀어보려고 한다.


  내게 다시 가고 싶은 식당은 두 가지 부류로 나뉜다. 첫 번째는 음식이 너무 맛있어서 계속 그 맛이 아른거리는 식당이고, 두 번째는 음식을 만드는 과정을 알게 된 후 그 음식이 더욱 좋아지는 식당이다. 전자야 말할 것도 없지만, 후자 같은 경우는 사실 맛집 작가가 아니었다면 느끼기 어려웠을 감정이다. 음식은 그것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의 수고로움과 노력에 대해 알게 되면 더욱 각별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평상시에도 맛있는 집에 가게 되면 사장님께 넉살 좋게 뭘 넣고 만들었냐고 물어보는데, 대부분 신나게 자신의 노력과 비결을 알려주시곤 한다. 그런 얘기를 듣고 그 음식을 다시 마주하면 어느 때는 경건해지기까지 한다. 이 한 그릇을 내기 위해 그다지도 정성을 기울인다니, 이걸 모르고 먹고 가는 사람들에게 외치고 싶을 지경이다. '이것 좀 알고 드세요! 제발요!'


  아무리 물가가 올랐다지만 갈비탕이 2만 9천 원이라는 건 사실 용납이 좀 어려운 이야기다. 그런데 나는 그 돈을 내고 굳이 그 갈비탕을 다시 먹고 싶다. 그것도, 전라북도 정읍까지 가야 한다. 정읍 하면 내장산으로 유명한 도시지만 내장산 인근도 아니고, KTX와 SRT가 정차하는 정읍역에서 가까운 곳도 아니다. 그래도! 가장 다시 가고 싶은 식당 중 부동의 1순위로 꼽는 집은 바로 그 집이다.

충격의 갈비탕 (한 덩이는 1만 5천 원, 두 덩이는 2만 9천 원)

  이 집은 떡갈비가 유명한 곳으로, 주말이면 어김없이 웨이팅이 생긴다고 한다. 답사 때도, 촬영 때도 당연히 떡갈비를 먹었는데 촬영이 끝난 후 제작진들에게 식사를 대접해주시겠다는 사장님이 떡갈비와 함께 내주신 것이 바로 이 갈비탕이었다.


  처음 이 갈비탕을 받아 든 심경이란 글쎄... 바닥이 보이는 말간 국물에 계란과 파 그리고 이 동그란 떡갈비 하나가 떡하니 놓여있는데, 당황스럽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말 그대로 이 집에서 구워서 내놓는 떡갈비를 뭉쳐 넣어 그대로 끓인 비주얼이었다. 으레 갈비탕이라면 뼈에 붙은 두툼한 갈빗살이 들어있기 마련 아닌가. 어떻게 이런 발상을 하신 걸까. 난생처음 보는 희한한 갈비탕에 다들 갸우뚱한 것도 잠시, 조심스레 한술 맛본 국물의 맛은 그야말로 어메이징 했다. 곰탕, 설렁탕, 갈비탕, 고기나 그 뼈를 넣고 푹 우린 고깃국물을 못 먹어본 바 아니나 그 어떤 고깃국 국물보다도 깔끔하고 담백했다. 하얀 도화지에 고기의 구수한 맛만 아주 얇게 펴둔 느낌? 있는 듯 없는 듯한 고기 향이 은은하게 입 안을 휘두르고 지나가는데 꿀꺽 삼키고 나면 다시 그 맛을 입안에 가득 채우고 싶은 느낌? 갈비탕을 먹으며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맛이었다.


  놀라운 감칠맛의 비결을 여쭤봤더니 돌아온 대답은 '그냥 고기를 넣고 끓인다'였다. 재차 여쭤봤지만, 오로지 저 고깃덩어리만 넣고 끓이면 그 맛이 난다고 했다. 고기 육수를 낼 때 고기의 잡내나 기름기를 제거하기 위해 채소와 약간의 한약재를 더하는 곳이 많은데, 그런 건 일절 없다고 했다. 그리고 그 말을 듣자, 바로 납득이 됐다. 이 집 떡갈비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이미 알고 있었기에, 그 떡갈비만으로 충분히 그 맛을 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하루 종일은 아니겠지만, 어느 때에 가면 식당 방 한 칸에서 긴 도마를 두고 고기를 다듬는 주인장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최상급 한우 암소갈비를 기본 손질해서 들여와 그 방 안에서 근막과 지방을 손수 모두 제거해 고기를 다져 사용한다. 시할머니 때부터 줄곧 그렇게 해 왔고 지금도 일일이 사람의 손을 거쳐 고기와 맛을 다듬어낸다. 불에 떡갈비를 구울 때도 석쇠 위 고기에 손으로 양념을 발라가며 굽는다. 다른 집에서 흉내 내지 못하는 맛의 비결은 아마 수십 년을 이어온 손끝이 잡아내는 맛의 한 끗에서 탄생하는 듯하다. 기계로 하면 빠르고 쉽지만 완벽하지 않다. 근막이 섞일 수도, 지방을 미처 떼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런 조그만 것들이 결정적으로 맛을 해할 수 있다는 걸 알기에, 오늘도 도마와 불 앞을 떠나지 못하는 것이다.


  이 집이 1978년에 열었다고 하니 역사가 어느덧 44년이다. 그 해는 강남에 고속버스터미널이 완공된 해고, 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 형 집행정지로 석방된 해다. 우리 부모님조차 초등학생이었던 시절부터 4대째 이어져오고 있는 것이다. 좋은 재료를 쓰기에 늘 높은 가격대를 유지해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님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값에 상응하는 맛의 가치를 아는 사람들이 쭉 찾아주는 이유일 테다. 일반 갈비탕이 1만 5천 원, 특 갈비탕이 2만 9천 원인데 갈비탕만 시켜도 열다섯 가지 내외의 반찬이 함께 나온다. 이 집 떡갈비의 명성에 밀렸지만 반찬들도 하나하나 직접 만들어 손맛이 일품이다. 올 겨울이 지나기 전에 꼭 다시 들리고 싶다. 입 안 가득 적당히 기름지고 고소한 떡갈비의 풍미가 퍼지면 한겨울 추위도, 정읍까지 가는 노고도 싹 녹아내릴 것을 잘 알기 때문에.



**방문 꿀팁: 막걸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번 쯤 들어봤을 ‘송명섭 막걸리’ 양조장이 바로 인근에 있어 함께 들려볼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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