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겨울 송림동에서 온기를 느끼다.
온기를 간직한, 인천 동구 송림동
송림동은 드라마 도깨비 촬영지로 익히 알려진 동네이다. 차가운 겨울에 드라마 도깨비를 보고 있자면 알 수 없게 쓸쓸하기도, 또 따뜻하기도 한 마음들이 뭉글뭉글 올라오곤 했다. 송림동은 딱 그때 그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동네이다. 몇몇 곳은 낙후된 것처럼 보이기도 하나 젊은이들의 손길로 따뜻한 온기가 밀려오고, 또 어떤 곳은 오래되어 쓸쓸한 분위기가 풍기지만 어른들의 관심과 사랑으로 젖어 한겨울을 따뜻함으로 녹인다.
시장 골목 속 노포
배고픔을 안고 현대시장의 유명 맛집인 만복분식으로 향했다. 정겹고 예스러운 시장 골목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다 보면 나오는 노포 만복분식. 늦은 점심시간에 방문했지만, 꽤 많은 사람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각각 다양한 메뉴들을 시켜 놓고 나눠 먹는 가족들, 할머니들의 모습을 보니 따뜻한 정이 느껴졌다.
많은 메뉴 중 선택한 것은 쫄면이었다. 미리 방문 전에 후기를 찾아봤는데 쫄면이 괜찮은 듯해서 길게 고민하지 않고 주문했다. 쫄면은 인기 메뉴라 그런지 첫인상부터 남달랐다. 면, 달걀, 양배추, 당근 순으로 재료가 산처럼 쌓여 있어서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돌았다. 새콤달콤한 양념에 쫄깃한 면발, 아삭한 식감의 채소까지 더 해져 황홀한 조화를 이루는 쫄면은 이내 굶주림을 싹 해소해줬다. 살짝 매워질 때쯤 몸을 녹여주는 따뜻한 장국을 들이켜면 매운맛이 알맞게 중화되었다. 쫄면을 먹고 나니 저절로 힘이 솟아나는 기분이었다.
아이들이 먹기에는 약간 매울 수 있으니 다양한 메뉴와 함께 주문하는 것을 추천한다.
위로의 음식, 닭알탕
소화할 겸 송림동 현대시장 주변을 돌아보니 시장 맞은편 길가에 줄줄이 늘어선 닭알탕집들이 보였다. 이곳을 닭알탕 거리라고 부르며, 최소 30년 이상 된 노포 식당들이 연속으로 자리하며 닭알탕을 판매한다.
이 닭알탕 골목의 역사는 50여 년 전 시작되었는데, 닭알탕은 가난했던 시절 인근 공장 노동자들의 주린 배와 고단함을 위로했던 음식이다. 그 시절 한 냄비 푸짐하게 끓여도 1,500원이었던지라 배부르게 한 끼를 해결할 수 있었다. 닭알탕은 죽은 암탉의 배 속에서 꺼낸 알과 알집을 주재료로 육수에 넣어 끓인 것이다. 부자들이 살코기를 먹는 동안 가난한 노동자는 닭알탕으로 끼니를 해결했다. 현재는 추억 가득한 별미로 인천 송림동에서 맛볼 수 있는 특별한 음식이 되었다.
스콘과 커피의 하모니
추운 겨울, 외관부터 따뜻함이 가득 묻어나는 카페237에 도착했다.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1층의 모습은 작은 테이블이 있는 작고 아늑한 공간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친절한 사장님과 레몬, 초콜릿, 호두 등의 다양한 스콘과 에그타르트의 모습이 보였다. 카페 237은 스콘 맛집으로 유명한 만큼 스콘들이 전부 먹음직스러운 자태를 뽐냈다. 고민하다 무화과 스콘과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2층으로 올라갔다. 나가는 길에 짐을 들고 문을 여는 것이 안쓰러워 보였는지 사장님께서는 친절하게 문을 열어 주셨다. 사장님의 배려와 스콘을 먹을 생각에 자연스레 웃음이 새어 나왔다.
넓은 좌석들이 있는 2층은 아기자기함과 우드톤의 인테리어가 어우러져 있는 힐링의 공간이었다. 창문으로 옅게 비치는 햇빛은 주변 식물들과 함께 싱그러움을 선사해주었다. 자리에 앉아 잠깐의 여유를 즐기다 무화과 스콘을 한입 베어 물었다. 은은한 달달함이 입안에 퍼져서 옆에 쌓아 놓고 계속 먹고 싶은 마음이었다. 달달한 스콘과 쌉싸름한 아메리카노의 하모니는 입안에서 축제처럼 어우러졌다. 이 카페에 방문할 사람들은 꼭 스콘과 아메리카노의 조합을 느껴봤으면 좋겠다.
사장님께서 스콘은 매일 아침 만든다고 하셨기에 늦은 시간에 방문하면 스콘을 맛보지 못할 수도 있다. 미리 전화 예약을 하면 따로 보관한다고 하니 방문할 사람들은 참고하길 바란다. 스콘을 포장하고 바로 먹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사장님께서 꿀팁을 알려주셨다. 스콘을 냉동 보관한 뒤 전자레인지에 살짝 데워 먹으면 갓 구운 것처럼 따뜻하고 바삭한 스콘을 맛볼 수 있다고 한다.
옛것의 따스함에 일렁이다
배불리 먹었으니 이제는 움직여 보겠다는 마음으로 배다리 헌책방 골목을 천천히 둘러봤다. 헌책방들은 골목에 옹기종기 모여 레트로 감성을 자극했다. 먼저 드라마 도깨비의 촬영지로 유명한 한미서점으로 향했다.
샛노란 색의 외관을 보니 드라마 도깨비 속 주인공이 된 것 마냥 감성에 젖어 한참을 바라봤다. 평화로운 옛 거리에 튀는 색깔의 한미서점, 나도 평화로운 거리 속 이 서점처럼 존재감이 확실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딱 봐도 세월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서점들, 오래 보아야 아름답다는 말이 있듯이 세월을 간직한 서점은 그 자체로 아름다움을 뿜어냈다. 오래된 것은 낡고, 고지식하고, 재미없다는 인식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세월을 지킨 만큼 역사가 되고 그 역사는 여러 인물의 발자취를 남긴다. 바로 그 발자취만으로 의미 있는 것이 아닐까? 역사와 인물의 흔적을 담고 있는 만큼 소중한 가치가 보였던 헌책방들이었다.
많은 책방 중 집현전 내부의 노란 조명이 따스해 보여 둘러볼 겸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수많은 책에 압도됐다. 흔히들 아는 대형서점처럼 정리가 잘 되어있지도, 깔끔하지도 않았지만, 아슬아슬 쌓아 놓은 책들과 구깃구깃 꽉 차게 들어선 책꽂이의 책들이 모두 멋스러워 보였다. 꽂혀있는 책을 쭉 둘러보니 아주 오래된 책부터 추억의 교과서, 유명소설까지 다양한 장르와 세월을 가진 책이 있었다.
이곳만의 감성이란 이런 것일까? 정리되지 않은 아름다움, 존재 자체의 아름다움, 세월의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책방이었다. 한쪽에는 포스트잇에 메모를 남기는 공간이 있었는데, 여러 사람의 다양한 글귀는 나를 미소 짓게 하기도, 울컥하게 하기도, 또 새로운 다짐을 불어넣기도 했다.
나무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니 정리되지 않은 책들과 함께 앉을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창가에 빨간 꽃이 지키고 있는 탁자는 책에 둘러싸여 있어서 이곳 그대로의 운치를 느낄 수 있었다.
집현전은 인천에서 가장 오래된 헌책방으로 총 3층 건물이다. 3층은 전시공간으로 사용되지만 내가 방문했을 때는 전시를 하고 있지 않아 2층까지만 구경하고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송림동은 작고, 따뜻하고, 정감 있다. 꾸불꾸불 골목길이 많아 길을 헤매기 쉬우나 들어간 골목마다 따뜻한 온기와 감성이 묻어 있다. 마치 고향 집에 온 것 같은 따스함이다. 옛것의 향기가 짙으나 현대의 것들과 조화롭게 어울리며 독특한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젊은이들은 예스러운 것들에 흥미와 신비로움을 느낄 수 있고 어른들은 추억을 회상할 수 있다.
내가 방문했던 시점은 겨울이었지만 전혀 춥지 않았다. 따스함과 감성에 물들어 추위를 잊었던 것 같다. 전 연령층이 온기를 느낄 수 있는 이곳은 인천의 송림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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