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의 출산을 겪는 동안 난 계속 기업에 소속된 회사원이었고, 총 6개월의 출산 휴가 기간 동안만 온전히 아이를 위한 엄마였을 뿐이었다.
출산 휴가가 끝나면 난 워킹맘이라는 이름으로 일과 육아를 병행했다.
아이를 낳은 후로는 내 머릿속에 일종의 스위치가 생긴 것 같았다.
출근길에 회사원 모드의 스위치가 켜지면, 엄마 모드의 스위치는 자동으로 꺼졌고 퇴근길에 엄마 모드의 스위치가 켜지면 자동으로 회사원 모드의 스위치는 꺼지는 것 같았다.
물론, 회사에 있을 때 아이 생각을 전혀 안 할 수 없었고, 아이와 있을 때 회사 일을 전혀 떠올리지 않을 수는 없었다.
일에서도, 육아에서도 나는 완벽할 수 없었다.
특히, 아이들의 엄마로서 나는 50점도 안 되는 불량엄마이다.
1. 면역력 빵점의 큰 아이
큰 아이는 생후 백일도 되기 전에 어린이집에 보내졌다.
회사 복귀를 코앞에 두고 처음 아기를 맡길 어린이집에 갔을 때, 이 작고 소중한 아기를 어떻게 낯선 곳에 떼어 놓나 싶어 원장 선생님 앞에서 눈물을 보였었다.
너무 어릴 때부터 갖은 질병에 노출되었던 탓인지, 큰 아이는 돌이 되기도 전 아주 어릴 때부터 사소한 전염성 질병(각종 감기, 수족구, 폐렴, 기관지염 등)으로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다. 모유가 아기의 면역력에 좋다는 말에, 회사에서 틈을 내 모유를 유축해서 먹였지만, 여러 아기들이 함께 있는 최악의 환경을 내 모유가 이길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아기 때부터 면역력이 없었던 큰 아이는 지금도 쉽게 감기에 걸리고, 한번 걸리면 잘 낫질 않는다.
2. 아이가 아플 때
회사에서 일을 하다가 갑자기 울리는 핸드폰의 발신처에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이나 학교 담임 선생님의 이름이 뜨면, 내 가슴이 먼저 반응한다. '철렁!!'
일과 시간에 울리는 어린이집이나 학교의 전화는 십중팔구 아이에게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다. 아이가 아프다거나, 다쳤다거나...
그 이야긴 곧 얼른 일을 내버려 두고 아이를 집으로 데리고 와야 한다는 말이다.
물론, 일이 바쁘지 않아서 급하게 반차를 내고라도 아이를 데리고 올 상황이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할 일이 쌓였다거나 중요한 미팅이라도 남아있는 상황이라면 어김없이 남편과 신경전을 벌일 수밖에 없었다. '니가 갈래 내가 갈까...'
또, 전염성 질병에 걸렸다면 전염력이 없다는 의사의 진단서가 있어야만 다시 등원이나 등교가 가능하니 아이가 다 나을 때까지 집에서 아이를 간병할 수밖에 없었다.
그럴 때마다 간혹 시어머니 찬스를 쓰긴 했지만, 대부분 남편과 내가 번갈아가며 휴가를 내고 아이를 볼 수밖에 없었다.
머릿속에는 회사 일을 가득 채운 채로...
아픈 아이가 안쓰러워 빨리 병이 낫길 바라는 마음이 컸지만, 회사에 빨리 복귀해야 하니 아이가 빨리 낫길 바라는 마음도 조금은 있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코로나가 한참 유행이던 시기, 면역력 약한 큰 아이에게도 어김없이 코로나가 찾아왔다.
아이는 혼자 있을 수 있는 나이였지만, 열이 펄펄 끓고 찢어지는 듯한 목의 통증을 호소하는 아이를 혼자 두고 회사에 출근해 일을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아이는 혼자 자기 방에 격리되어 스스로 열을 재고 해열제와 약을 먹으며 버텼다.
그렇게 우리 네 식구 중 큰 아이 혼자 코로나에 걸렸고, 코로나를 이겨냈다.
3. 미디어 중독
회사에서 일을 하다, 아이의 하원 시간에 맞춰 부랴 부랴하던 일을 내팽개치고 퇴근을 하면, 엄마 모드의 스위치가 켜지고 다시 제2의 직장에 출근해야만 한다.
분명 어린이집에서 간식을 먹었을 텐데 활동량이 많은 아이의 배꼽시계는 나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정신없이 저녁밥을 하는 동안 나는 아이와 놀아줄 수 없기 때문에, 아주 어릴 때부터 큰 아이의 손에는 아이를 홀릴만한 영상이 재생되는 휴대폰을 들려줄 수밖에 없었다.
그 휴대폰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된 지금도 아이의 손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고, 작은 아이도 별반 다르지 않다.
매일 휴대폰 보는 시간으로 아이와 씨름을 하다 보면, 그 원인의 9할은 내게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나 스스로가 원망스러워진다.
4. 비나 눈이 쏟아지는 날
어릴 때, 학교가 끝날 무렵 갑작스레 소나기가 내리면 학교 앞에는 엄마들이 우산을 들고 기다렸다.
그 엄마들 중 우리 엄마는 없었다.
학교와 집의 거리가 멀기도 했거니와, 엄마 역시 일을 했기 때문에 우산을 들고 학교로 마중 나올 시간과 여력이 나의 엄마에게는 없었다.
지금의 나도 마찬가지다.
갑자기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날이나, 펑펑 눈이 내려 온 세상이 하얗게 반짝거릴 때도 난 아이를 데리러 단 한 번도 아이의 학교 앞에 서 있질 못했다.
회사 사무실에서 쏟아내는 하늘을 원망스럽게 쳐다보고 마음속으로 그만 그쳐라 그쳐라 외치면서 비에 쫄딱 젖거나 눈사람이 되어 뱅뱅뱅 학원을 돌다가 집에 돌아올 아이를 안타까워했다. 그나마 요즘은 '양심 우산'이 학교에 비치되어 있어 갑자기 내리는 소나기나 폭설을 막을 방도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니 다행이었다.
5. 배달 음식
코로나 팬데믹의 영향 중 내게 도움이 되었던 것은 대부분의 음식점에서 가능해진 포장과 배달이었다.
길어진 미팅이나 외근으로 퇴근이 늦어진다거나, 아이에게 먹일 식재료가 없을 때 휴대폰 앱으로 아이들이 먹고 싶어 하는 음식을 골라 주문만 하면 집 앞까지 배달해 주니 얼마나 좋은가! 그렇게 우리 아이 둘은 배달 음식을 자주 먹으며 자랐고, 앞으로도 꽤 많은 배달 음식의 영양으로 성장할 것이다.
(끊기 힘든 담배나 술처럼, 배달 음식의 편리함에 중독된 나는 이를 끊을 수 없을 테니까...)
배달 음식이라고 다 나쁜 것은 아니지만, 음식이 만들어지는 곳의 위생 상태나 만들어진 음식이 담긴 일회용 용기들이 아이에게 그다지 좋은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을 알기에
배달된 음식을 먹이면서도 일말의 죄책감이 느껴지고, 정성 들여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을 해주지 못하는 엄마인 것이 미안했다.
이렇게 나는 아이들이 엄마를 필요로 할 때 옆에 잘 있어주지 못하는 불량 엄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내게 조건 없이 무한한 사랑을 주고 있다.
어느 순간에는 내가 아이들에게 주는 사랑보다 오히려 아이들에 내게 주는 사랑이 더 크지 않을까 싶을 정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