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유발자들 4
어릴 때부터 명절 때마다 인사드리고
성묘를 함께하는 친척 내외분이 있었다.
내가 학생일 때에는
진로나 성적에 대해 관심을 많이 표현하셨고,
취업이나 결혼에도 염려가 많으셔서
항상 열심히 살고 있다며
안심을 시켜드려야 편하게 웃으시던
어르신 두 분이었다.
그분들과
'걱정' 때문에 갈등이 빚어질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신혼 때였다.
결혼을 준비하면서부터 그 어르신들께
연락을 자주 못 드린 것 같아
남편과 차량 이동 중에 함께 전화를 드렸다.
내일 일정이 괜찮으시면
맛있는 식당에서 함께 식사하자는 말에,
어르신은 흔쾌히 좋다고 말씀하셨다.
그때쯤 바빠서 얼굴을 자주 못 뵈었는데,
식당에서 뵈니 얼굴이 환하고 더 좋아 보이셨다.
식사를 하기 전까지는.
음식이 나오며 일상 이야기를 나누던 중,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러자 금세 공기가 달라지는 걸 느꼈다.
기다리던 얘기가 안 나오는 듯
친척 어르신A가 한 말씀을 건네셨다.
“할 말이 있다면서.
왜 얘기를 꺼내지 않니?”
나는 무슨 말씀인지 몰라 당황해 대답했다.
“네? 저희는 함께 식사하고 싶어서
연락을 드렸는데...”
“이 사람은 상의할 게 있는 줄
알고 있던데?”
어르신B는 같은 테이블 위
세 명의 시선이 집중되자 시선을 피했다.
그 순간 알 수 없는 방향으로
대화가 흘러가기 시작했다.
우리는 단순히 안부를 전하려 했지만,
그 두분에게는 이미 다른 이야기가
준비되어 있는 듯했다.
“결혼도했으니
이제 직장은 정리해야 하지 않겠니.
계속 그렇게 바쁘게 다니면
가정은 어떻게 챙기려고 그래.”
우리는 신혼부부였고,
우리만의 삶의 방식을 만들어가던 중이었기에,
어르신들의 갑작스런 조언이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저희는 그런 안건은 말씀드린 적이 없고,
저희가 앞으로 잘 상의해서 결정하겠습니다.”
이 말을 끝마친 내게 고성이 날아들었다.
“어른이 하는 말에는 이유가 있는 법 아니겠니?”
“어르신. 이렇게 화내면서 말씀하실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나, 소통이 되지 않았다.
대화가 아니라 결론을 알려주러 오신 것처럼 보였다.
잘 결정할 거라고 달래며 잘 말씀을 드려도
오히려 자신들의 선의를 왜곡한다며
서운하다는 표현을 하셨다.
양쪽대화가 꽉 막힌 상태로
서로의 언성이 높아질 때쯤,
옆 테이블 손님이 우리에게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언성을 좀 낮춰달라는 얘기였다.
가정 내부의 일이 공공장소에서
시끄러운 논쟁이 되었다는 사실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가만히 계시던 어르신 B는 말했다.
“지금은 이해가 안돼도
너희를 위한 이야기니까 새겨들었으면 한다.”
지금껏 내내 했던 우리의 이야기가
소용없었다는 생각에 한숨을 쉬는데,
씩씩대며 냉수를 들이켜는
어르신A의 모습이 보였다.
이 일이 어디서부터 어긋났는지
기억은 하고 계신걸까.
그리고,
왜 우리의 좋은 뜻이
이토록 최악의 결말을 맞이한 걸까.
애초에 이 자리를 마련한 연락마저
후회가 될 지경이었다.
결혼 이전에는,
그저 내 걱정이 많으신 거라고,
내가 잘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제야 알았다.
어떤 통제는 겉으로
걱정의 얼굴을 하고 다가온다는 것을.
결국,
식당에서 있었던 일은 상처가 되었고,
상처가 쉽게 아물지 않아
쉽게 그분들께 연락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분들의 얘기가 주변에서 들렸다.
내가 결혼한 후에 변했다는 이야기.
예전처럼 친근하게 굴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
마지막 잡고있던 맥까지
탁 풀리고 말았다.
그 순간 절실하게 와닿았다.
내 감정이 중요치 않은 걱정은
진짜 걱정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배려가 없는 관계는 오래갈 수 없다는 것.
내 영역을 존중하지 않던
그들에게서 한걸음 물러났다.
거리를 재정비할 차례였다.
*다음 화에는 타인의 자기합리화의 피해자가 된 순간을 풀어가볼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