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수십 년 전 예견한 경기교육청 AI홍보영상 논란

by 오렌지

최근 경기도 교육청의 '하이러닝' 홍보 영상이 논란이 되고 있다. 하이러닝이란 경기도 교육청이 제작한 학습 플랫폼으로, ZOOM과 비슷한 비대면 온라인 수업 도구 내지는 구글 클래스룸처럼 학습 자료와 과제물 등을 업로드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알려졌지만 최근 들어 AI 기능에도 주안점을 두고 있다. 이번 홍보 영상은 AI로 논술형 수행평가를 채점하는 기능을 홍보하는 내용이었다. AI로 수행평가를 채점한다니, 얼핏 들으면 참 유용해 보인다. 그러나 많은 교사들과 교육 관련 단체에서는 해당 영상에 대해 불쾌함을 표현하고 있다.


나는 이 사건이 해당 영상 제작에 관여하신 선생님들에 대한 인신공격이나 초등 교사 vs 중등 교사 대립 구도로 흘러가는 상황을 반드시 막고 싶다는 점을 먼저 말하고 싶다. 사람은 누구나 완벽하지 않고, 누구나 실수를 한다. 그리고 사람은 자신의 행동을 변화시키며 발전할 가능성을 언제나 품고 있는 존재이고, 우리 교사들은 바로 그 가능성을 신뢰하는 이들이다. (인간의 발전 가능성을 믿지 않는다면 도대체 교육을 왜 하겠는가?) 해당 영상 제작에 참여하신 선생님들께서는 사과문을 올리셨다.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은 분명 용기 있는 행동이며, 사과문을 올린 선생님들께 '인성에 문제가 있다'느니 '교직을 그만두라'는 비난을 하거나 '역시 초등교사들은 모두 한심하다'며 교사 집단에 낙인을 찍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도움이 전혀 되지 않는다.


우리는 개개인에 대한 비난이 아니라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 고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이 사건의 근본적인 원인은 교육보다 기술을 우선시하는 경기도 교육청의 전반적인 기조다. 최근 몇 년 간 경기도 교육청은 AI 등 최신 기술을 교육에 접목시키는 데에 급급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경기도 교육청은 하이러닝 플랫폼 구축을 위해 60억 원, 하이러닝 이용료로는 86억 원의 예산을 소모했다고 한다. 그러나 경기교사노동조합이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총 4,362명의 응답자 중 '하이러닝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라고 답한 비율이 88%나 되었다. 작년에 경기 교사들은 강제적으로 AI교과서를 선정하고, 강제로 하이러닝 필수 연수를 이수했다. 그러나 기껏 선정한 AI 교과서 사용은 무산되었고, 하이러닝은 잘 사용되지 않는다. 교사들은 비본질적인 AI 관련 업무를 하느라 수업 준비나 학생 상담과 같은 본질적인 업무를 할 시간을 빼앗기고 있다. 그리고 이번에 논란이 된 하이러닝 홍보 영상은 교육보다 기술을 우선시하는 경기도 교육청의 기조가 표면에 드러난 빙산의 일각이다.


해당 영상이 불쾌감을 유발하는 원인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교사가 AI에 의존하는 수동적인 존재로 그려진다.

본 영상에는 학생이 교사에게 자신의 답안이 왜 틀렸는지 묻는 장면이 나온다. 정작 그 질문을 받은 교사는 대답을 하지 않고, 교사 곁에 있는 AI(출연자가 '하이러닝 AI'라고 적힌 머리띠를 쓰고 AI 역할을 연기했다.)가 학생의 질문에 답변한다. 이후 교사는 학생들에게 "이거 AI가 채점 도와준 거니까 너희들 할 말 없지?"라고 말한다. 마치 교사가 AI의 도움 없이는 학생들의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수동적인 존재처럼 보일 소지가 있다.

MBN 뉴스 자료 화면

이미 클리포, ChatGPT 따위의 인공지능을 사용해서 수행평가 채점에 도움을 받는 교사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인공지능이 수행평가를 채점하기 위해서는 먼저 교사가 제작한 수행평가 기준을 인공지능 툴에 입력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인공지능의 판단을 교사가 다시 검토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인공지능이 제공한 정보를 검토 없이 전적으로 신뢰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는 다음 문단에서 자세히 말하고자 한다.) 인공지능 툴 자체의 성능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그 툴을 누가, 어떻게 현명하게 활용하는지이다. 교육 과정을 설계하고 교육 경험을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주체는 인공지능이 아니라 교사일 수밖에 없으며, 인공지능에게 평가를 일임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둘째, 디지털 리터러시에 대한 경기도 교육청의 이해 부족이 드러난다.

디지털 리터러시는 디지털 도구를 활용해 정보를 적절하게 찾고, 분석하고, 활용하는 능력이다. 디지털 리터러시 역량을 갖춘 사람은 디지털 기기를 통해 얻은 정보를 무분별하게 신뢰하지 않고 비판적으로 평가할 줄 안다. 이는 2022 개정교육과정이 규정하는 핵심역량 중 하나인 '지식정보처리 역량'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매년마다 대부분의 교육청은 학생들의 디지털 리터러시 역량을 증진하는 것을 올해의 교육 목표로 삼겠다는 내용을 교육 계획 문서에 포함시킨다.


AI가 널리 사용되는 현대 사회에서 디지털 리터러시 역량은 더욱 중요해졌다. AI는 거짓된 정보를 사실처럼 둔갑시키기 일쑤이니 말이다. 일명 ‘환각 효과(hallucination)’라고 불리는 현상이다.

ChatGPT가 사용자들에게 '붉은사슴뿔버섯은 몸에 좋다'는 거짓정보를 제공하는 모습. (출처: 경향신문)

한동안 온라인상에서 ‘붉은사슴뿔버섯’이라는 버섯이 화두가 된 적이 있었다. 소량만 먹어도 죽음에 이를 수 있는 맹독성 버섯인 붉은사슴뿔버섯을 ChatGPT가 ‘맛있고 몸에 좋은 버섯’이라고 판단하며 유저들에게 잘못된 지식을 전달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AI를 활용해 블로그를 운영하는 여러 블로거들은 AI가 써준 글을 그대로 복사해 '붉은사슴뿔버섯의 효능'이니 '붉은사슴뿔버섯 레시피' 따위의 포스팅을 업로드하기까지 했다. 디지털 리터러시가 없으면 바로 이런 일이 벌어진다! 이외에도 ChatGPT가 1.14를 1.15보다 큰 숫자라고 주장하는 등 AI가 부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는 일은 무수히 많다.


다시 하이러닝 홍보 영상으로 돌아가보자. 홍보 영상 속에서 교사는 “자, 얘들아 이제 이의 더 없지? 이거 AI가 채점 도와준 거니까 너희 할 말 없지?”라고 말한다. AI가 채점했다는 사실이 수행평가 채점의 정확성을 보장하는가? 만일 그렇다면 AI가 주장대로 붉은사슴뿔 버섯은 식용 버섯일까? 수행평가의 타당성과 신뢰도를 위해 필요한 것은 적절한 평가 기준을 세우는 교사의 전문성이지, AI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이 아니다.

셋째, 본 영상에서 교사는 무능하고 신뢰할 수 없는 존재로 그려진다. 영상 속 교사가 '앞으로 조금만 더 노력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야'라고 학생들을 격려하자 하이러닝 AI는 '빈말입니다. 동공이 흔들리고 음성에 진심이 담겨있지 않습니다.'라는 말로 일축해 버린다. 물론 실제 하이러닝 AI에는 교사가 한 말의 진실성을 감정하는 기능 따위는 들어있지 않으며, 순전히 유머를 위해 들어간 장면이다. 그러나 유머를 위해 들어간 이 장면이 웃음보다 한숨을 불러오는 까닭은, 학생들을 정서적으로 지지하며 동기를 북돋우려는 교사의 노력을 ‘빈말‘로 표현하며 교사를 신뢰할 수 없는 존재로 그리기 때문이다.

MBN 뉴스 자료 화면

이 영상 속에서 교사는 교수-학습 과정에서 학생들을 동기화시키지도, 학생들과 신뢰를 쌓거나 유의미한 관계를 형성하지도 못한다. 그리고 수행평가 결과를 보여주며 ‘AI가 채점을 도와준 거니까 할 말 없지?‘라고 하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AI의 힘을 빌리지 않고서는 학생들에게 수행평가 결과의 타당성을 입증하는 것도 힘들어 보인다. 결국 교사는 AI툴을 단순히 사용할 뿐인, 신뢰하기엔 너무 무능한 존재인 것이다.


놀랍게도 하이러닝 AI를 비롯한 각종 에듀테크가 생기기 수십 년 전, 1970년대에 이런 미래를 예견한 학자가 있다. 임용고시를 준비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름을 들어봤을 미국의 교육철학자 마이클 애플(Michael W. Apple)이다. 애플은 교육에서 컴퓨터를 사용하는 것이 매우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 교육에서 컴퓨터가 무분별하게 사용될 경우, 교사는 (타인에 의해 이미 만들어진) 학습자료를 컴퓨터 기기를 활용해 학생들에게 보여주는 지극히 수동적인 일만을 하게 될 것이다.

- 결국 교사는 창의적으로 교육과정을 구성하거나 그 교육과정에 적합한 학습 자료를 직접 제작할 기회를 잃게 되어 전문성이 훼손될 것이다.

- 결과적으로 교사는 교육용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조작하는 단순 기술자이자 수업을 관리하는 사람에 지나지 않게 될 것이고, 교육으로부터 분리되고 소외될 것이다.

교육에서 컴퓨터가 사용되는 것의 위험성을 경고한 교육철학자 마이클 애플(Michael W. Apple)

앞서 살펴본 하이러닝 홍보 영상을 다시 떠올려보자. 학생의 질문에 직접 답하는 대신 AI를 손으로 가리키며 AI가 학생에게 답변을 하는 동안 가만히 쳐다보기만 하던 교사의 모습은 애플이 이야기한 '단순히 기술을 조작할 뿐인 수동적인 교사'상과 동일하다. 애플은 기술에만 지나치게 치중하는 경기도 교육청의 정책을 수십 년 전에 이미 예견한 걸까? 경기도 교육청은 다른 분야의 예산을 기하급수적으로 줄이는 와중에도(가령 2023년에 비해 2024년에 경기도 교육청의 '기초 학력'관련 예산은 80%나 감소했다.) 하이러닝을 비롯한 각종 에듀테크 관련 사업에는 아낌없는 예산 투자를 이어오고 있다. 이 글의 세 번째 문단에서 밝힌 바와 같이, 경기도 교사들은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디지털 교과서나 하이러닝 같은 에듀테크에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투자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어쩌면 경기도 교육청은 최신 기술을 사용하기만 한다면 교육의 질이 당연히 상승한다고 믿고 있을지도 모른다.


기술에만 지나치게 집중하는 이러한 관행은 교육의 질 상승이 아니라 저하를 불러온다. 한정적인 예산과 에너지, 시간이 새로운 기술 도입을 위해 주로 사용된다면 수업을 위한 교재연구, 방과후 수업, 학생 상담, 기초학력 미달 학생 지원 등 교육의 본질에 가까운 일에 투자될 예산과 에너지, 시간은 부족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업무가 지나치게 많은 학교에 근무했던 교사들이 '하루 종일 행정 업무를 하다 보니 수업 준비를 제대로 할 시간이 도저히 나지 않아 학생들에게 너무 미안했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종종 듣는다. 필자는 줄어든 기초학력 예산 때문에 기초학력 미달 학생들을 위한 수업을 개설하지 못하게 될까 봐 전전긍긍했던 경험이 있다. 그 당시 교육청은 하이러닝을 활용해 수업을 잘하는 학교에 과자와 과일을 보내주는 이벤트를 개최하고 있었다. '차라리 과자와 간식 말고 기초학력 예산이나 더 주지!'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기술이 우선시 되는 곳에서 학생과 교사는 뒷전이 되고, 애플이 예견했던 대로 교사는 기술을 작동시키는 보조자로 전락한다.


하이 러닝 홍보 영상 논란은 영상 제작에 참여한 몇몇 교사나 몇몇 교육청 관계자만의 일이 아니다. 교사의 역할보다 최신 기술 도입을 중시하는 경기도 교육청의 오랜 관습이 빚어낸 일이다. 하이러닝이라는 도구 자체를 쓸모없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실제로 하이러닝을 사용해 효과적인 수업을 운영하는 선생님들도 계시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정된 자원으로 양질의 공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하이러닝 개발 및 사용 독려가 과연 최선의 선택이었을까? 하이러닝이 제공하는 대부분의 기능은 구글 클래스룸, 클리포 등의 다른 에듀테크를 통해서도 사용 가능한데, 60억 원을 들여서 개발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이러닝 사용 방법 연수를 들을 시간에 선생님들이 학생에게 조금 더 관심을 기울일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지식을 기계적으로 전달하는 AI가 아니라 곁에서 전문성 있는 선생님의 격려와 도움이라는 사실을 경기도 교육청이 기억하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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