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이장애와 타인의 인정에서 벗어나기
나는 종종 생각한다. 나와 우리 아빠는 경제적인 문제가 아니었다면 꽤나 좋은 부녀가 되었을 것이라고. 아마 이곳이 소설 속 세상이었다면 나와 우리 아빠, 그리고 우리 가족은 단란하고 평화로우며 누군가는 부러워할 법한 가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소설처럼 낭만적이지도 다정하지도 못하며 지극히 매정하기 그지없다. 소설 속 인물들은 사랑만으로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 누군가의 다정한 성미만으로도 함께 삶을 살아간다. 그곳에선 어찌 됐든 사랑이 최고의 가치이니까. 하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현실은 사랑'만' 있으면 굶어 죽기 십상이며 우리는 시간이 되면 밥을 먹고 화장실에 가고 쓸모없는 것을 사고 싶어 하는 인간이다.
그렇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는 필연적으로 돈이 든다. 하지만 우리 아버지는 소설 속에 사는 사람이었다.
그는 다정한 성미를 가졌다. 예술적이며, 감정적이고, 의리가 있는 멋진 남자다. 그가 얼마나 다정하냐면, 자신의 어린 두 아이들을 두고도 망해버린 회사의 사장님과 부장님을 따라다니며 몇 날 며칠 함께 술을 마셔줄 정도로 다정한 사람이다. 자신만 바라보고 있는 아내와 두 아이는 그의 다정함에 약간 밀려버린 것만 제외하면 정말 그는 완벽한 사람이다.
어머니는 둘째를 출산한 뒤 직장을 그만두었다. 처가에서 애들을 먹여 살려보라고 욕을 하면서도 작은 컴퓨터 가게를 차려주었지만 예술인의 기질을 가진 나의 아버지는 한 곳에 쉽게 정착하지 못하며 한 가지 일은 금방 질려하는 성미를 가진 터라 그것 또한 오래가지 못했다.
나의 어린 시절 기억은 딱 두 가지로 나뉜다. 초기 어린 시절엔 보통 온 가족이 행복하게 어딘가에 놀러 가거나, 부모 중 한 명과 함께 놀러 나가 있는 것이고 어느 정도 큰 후반에는 어머니의 울음소리와 가구가 엎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었다. 그냥 그 한 번이 너무 강렬했을 뿐이다. 닫힌 방문이 열리고 어머니가 7살이 될까 한 나를 품 안에 끌어안으며 흐느낀다. 포근해야 할 어머니의 품 안이 두려움으로 가득 찼다. 엄마는 내 귓가에 속삭인다. 어머니의 흰 상의에는 간장인지 피인지 모를 무언가가 묻어 있었다.
'수지야 너네 아빠가 너랑 네 오빠를 고아원에 버려버릴 거래. 엄마가 너희를 지킬 거야...'
나는 울지도 못하고 겁에 질려 떨고 있는 어머니를 꽉 끌어안았다. 엄마의 몸은 온통 슬픔과 분노로 차갑게 떨리고 있었다. 엄마와 닿아있는 살갗에서 그 감정들이 내게로 모조리 스며드는 것만 같았다. 아버지는 그런 말을 자기가 언제 했냐며 펄펄 뛰었으나 엄마는 연신 내 귓가에 '너를 버리겠다고 했어...' 하며 힘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엄마는 나를 잃고 싶지 않다는 듯 그날 밤 내내 나를 안고 있었다.
마치 나를 잃어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어린 시절 어머니를 떠올리면 항상 피로한 얼굴과 함께 차가운 겨울의 바람 냄새 뒤로 슬픔이 흘러넘쳤다. 나는 종종 그 슬픔에 잠식당해 죽어버릴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엄마를 기쁘게 해 주기 위해 부러 더 어린아이처럼 발랄하게 굴고, 웃으며 사랑한다고 속삭였다. 내가 그럴 때면 엄마는 힘없이 웃으며 나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리고 따라 사랑한다고 이야기했다. 나는 내 사랑한다는 말에 엄마의 슬픔이 엄마에게서 빠져나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럴 수만 있다면 내 목이 다 쉬어버리는 한이 있어도 엄마에게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엄마의 안에 가득 찬 검고 푸르고 차가운 것들을 내가 다 빠져나가게 해주고 싶었다.
나의 아버지는 그 당시에 나를 아주 사랑해 주었다. 우리 집안은 흔치 않은 '고추밭'인 집안으로 친가에선 아들만 태어나 내가 유일무이한 손녀였다. 게다가 오빠와 달리 성격도 발랄하고 해맑아 똥강아지처럼 뛰어다녔다. 온갖 어른들이 나를 예뻐하지 못해 안달이었다.
그 당시의 나는 '돈'이란 개념이 없었으므로 항상 집에 아버지가 있는 게 좋았다. 유치원에 다녀와 아빠와 함께 손을 잡고 동사무소로 가서 그리스 로마 신화나 한지 공예 같은 것들을 하며 저녁 무렵까지 아버지와 놀았다. 그리고 집에 가는 길에는 아빠가 사준 떡꼬치를 손에 들고 오빠와 함께 미군에서 사용했다던 길게 펼쳐진 지상 지하철 철도길을 따라 걸으며 항상 집으로 갔다.
나는 그 시간을 무척이나 사랑했다.
나의 다정한 아버지는 나를 사랑했다. 그리고 나도 아버지를 사랑했다. 우리는 서로를 너무 사랑했고, 함께 있음이 즐거웠다. 아버지는 매일 같이 장난감과 맛있는 간식을 사주었다. 어머니는 그것을 무척이나 못마땅하게 여기며 매번 아버지에게 핀잔을 주었는데, 감성이 예민한 아버지는 아이가 즐거웠으면 됐지 왜 부인이 자신을 이렇게 못살게 구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매번 잔뜩 화가 난 얼굴을 하고 집 밖을 뛰쳐나가곤 했다.
그리고 새벽 무렵이 되어서야 담배 냄새와 함께 현관문을 열고 들어와 나를 꽉 끌어안아주었다.
아버지는 니코틴이 찌든 담배 냄새와 비누냄새를 함께 풍기며 이야기했다.
'수지야, 아빠는 세상에서 너를 제일 사랑해.'
그땐 나도 그랬다.
내게 있어 엄마는 언제나 차갑고 쓸쓸하게 흔들리는 뒷모습이었다면 아버지는 항상 고독하고 슬픈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나는 아빠의 뒷모습을 볼 때마다 이유를 알 수 없이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아빠의 뒷모습이 마치 울고 있는 것 같았다. 아무리 내가 가서 사랑한다고 이야기해 주어도 아빠의 외로움은 눈곱만큼도 사라지지 않았고 그 속의 슬픔이나 분노 따위가 항상 웃는 얼굴 아래에서 찰랑거리고 있었다.
어린 시절엔 아버지의 손을 잡고 있으면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음에도 그 감정들이 내게로 타고 흘러왔다. 어렸던 나는 항상 아빠는 왜 항상 이렇게 슬프고 외로운 걸까 궁금했다. 아니 궁금하기보단 이 슬픈 뒷모습을 내가 더 많이 사랑한다고 해주면 없앨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건 내가 아니라 아빠의 아빠만이 채워줄 수 있다는 것을 난 너무 늦게 알았다.
나의 두 부모는 가족 관계가 최악이었다. 아버지는 경상도 사람이었는데, 할아버지가 젊었을 무렵 충청도에서 홀몸으로 부산으로 와 조선업으로 자수성가를 이루었다. 그러다 할머니를 만났는데 아버지가 갓난아기일 무렵 이혼하고 새 할머니와 재혼을 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 새 할머니는 그 당시 몇 안 되는 딸을 끔찍이 여기는 집안의 여성이었고, 그 집안 남자들을 아버지를 끔찍하게 싫어했다.
금이야 옥이야 키운 여동생과 딸내미를 아들 딸린 남자한테 시집보낸 게 싫었던 거지. 하지만 분풀이를 할 수 있는 할아버지는 매일 같이 배를 타고 나가 들어오질 않으니 아버지에게 그 화살이 모두 쏟아졌다고 한다. 아버지는 어린 시절 삼촌들에게 죽도록 맞고 물고문을 당하며 자랐다고 했다. 그리고 이복동생이 태어나 모든 사랑을 받으며 외롭고 쓸쓸하게 자랐다는 이야기.
그리고 어머니는 1남 2녀 집안의 둘째 딸로 태어났다. 첫째 이모는 첫째라서 막내는 남자라서 예쁨 받았다. 할머니는 6.25 전쟁에서 살아남은 여성으로 남존여비 사상이 뚜렷한 여자였다. 엄마는 설이 가깝다는 이유하나로 생일 케이크 대신 전을 먹으며 살아왔고 매번 이모와 삼촌의 생일 케이크를 부러워하며 살았다.
외할아버지는 불같은 성격으로 나에게만큼은 다정했으나 주변 사람들을 달달 볶아대는 사람이었다. 그래, 흔히 말하면 '비싼 돈 내고 대접 못 받아먹는 인간'의 축에 속했다. 한우를 먹이면서도 말로 사람을 달달 볶아내디 한우고 나발이고 이 인간과 떨어지고 싶다는 감상을 주는 사람.
나의 부모는 이토록 지독히도 외롭고 불쌍한 사람들이 만나 이룬 가정인 것이다. 단 한 번도 부모에게 제대로 된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들. 그러니 어린 내 눈에도 그들이 슬프고 외로워 보였던 거겠지.
그래도 난 그 둘을 모두 사랑하고 감사하게 생각한다.
나의 부모는 자신들이 부모에게 받지 못했기 때문에 내게 사랑을 주려고 노력한 사람들이다. 나의 아버지는 항상 '난 자식들에게 친구 같은 아빠가 되고 싶었어.'라는 이야기를 달고 살았으며 나의 어머니는 '내가 상담을 배운 이유는 너희 할머니처럼 너희를 키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이야기한 사람들이다.
다만 어머니는 '제대로 사랑을 주려고' 노력하고, 공부한 사람이고 아버지는 '자신이 좋은 방식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어머니는 내게 초콜릿 보단 야채와 채소를 먹이고 싶어 하고, 늦게 자기 보단 정해진 패턴에 자고 일어나길 원하지만 나의 아버지는 내게 술과 담배를 적극적으로 권하며 함께 인터넷 게임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는 게 문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