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글
현대미술관에서는 올해의 작가상 수상작가의 전시가 있다. 매 해 4명의 작가를 선정한다.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전시장은 내게 미궁이다. 컴퓨터의 뚜껑을 열고 메인보드를 바라보거나 웹사이트의 프로그램 코드들을 보는 것처럼 난공불락이다. 기껏해야 의지하는 것은 벽에 검정테이프로 북 박아 놓은 글자들이다. 그마저도 낱말마다 한 권 분량의 문서를 포함한 듯 무겁다. 나는 자포자기하며 이 공간과 사물들이 나의 물렁한 몸을 마구 때리고 주무르도록 허용한다. 내가 반응한 곳은 갈라 포라스-김의 전시장이다. 그의 작업공간 또는 상대는 박물관과 유물들이다. 흔적을 다루는 그의 방식은 사진과 유사한 면이 있어 어느 정도 끌려갈 수 있었다. 유물을 분류하고 보관하고 전시하는 박물관의 방식이 아니라 시간과 서사를 부여한다. 예술가가 부여할 수 있는 시간과 서사란 먼지와 곰팡이, 상형문자에 떠도는 운율과 사라진 영혼들이 떠돌았을 물 위에 부유하는 물감의 지도다. 나는 이집트 멕시코 한국의 고인돌을 떠돌며 밤과 낮의, 천 년의, 만 년의 시간 밖에서 꿈을 꾸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