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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짝반짝사진방 Sep 15. 2023

차가 퍼졌다.

갑작스런 남해기행 #1

   2박 3일의 독일마을 일정을 마치고 일행은 스타렉스를 타고 상경할 것이다. 일정만 마치고 남해를 떠나는 것이 아쉬워 점심으로 멸치쌈밥을 먹고 금산의 보리암을 들르기로 했다. 금산으로 오르려는 차량들이 두 줄로 늘어서 관리원의 수신호를 기다렸다. 산 위의 주차장 크기와 가파른 도로 사정을 고려해 통제를 하는 것 같다. 기다리는 것을 질색하는 나로서는 돌아갈까도 생각했지만 단독으로 결정할 일이 아니어서 기다리기로 했다. 3km 넘는 가파른 산길을 올랐다. 자동차 진은 거친 소리를 냈지만 RPM은 2000 언저리였고 디젤엔진의 힘은 충분했다. 산 정상에 다다를 즈음 경사가 완만해져 속도를 내 볼 요량으로 액셀을 밟았지만 차는 앞으로 나가지 않았다. 무언가 잘못된 것이다.  주차를 하고 내리려는데 네트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보네트를 열자 고무 타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보네트 안의 기계장치들은 어떤 액체로 범벅이 되어있었다. 무언가 터져버린 것이다.


   견인차는 한 시간 후 도착한다. 일행과 함께 보리암으로 향했다. 나는 행선지도 모른 체 내비게이션에 찍힌 곳으로 왔을 뿐이어서 금산과 보리암이 어떤 곳인지 알지 못했다. 잘 정비된 완만한 능선길을 따라 오르니 왼쪽으로 남해바다의 풍경이 펼쳐졌다. 아름답군. 한참 아래로는 바닷가 마을이 작은 만을 따라 초승달 모양을 하고 있다. 보리암으로 가려면 해안방향으로 계단을 조금 내려와야 한다. 옛 승려들은 왜 이런 곳에 암자를 지었을까? 사람이 번뇌의 원인이라 여겨 멀리 숨어든 것인가? 방해 없이 선정에 들기 위한 방편이었을까? 법당 안에서 한 비구니가 옷깃에 마이크를 꽂아 놓고 구성지게 염불하고 있다. 스피커로 흘러나오는 운율은 이 욕계에서 벗어나라고 속삭인다. 사이렌의 노랫소리.


   전화벨이 울린다. 견인차 기사는 산 입구에 왔으니 15분 후에 도착하리라고 알린다. 108개로 맞췄을 것 같은 계단을 다시 올라 정상에서부터 주차장으로 터벅터벅 걸어 내려간다. 견인차 기사는 일요일에는 정비소가 문을 열지 않으니 차를 놓아두고 가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서울에서 남해까지 다시 내려오기보다 탁송서비스를 이용하라고 한다. 유류비와 통행료를 제외하고 20만 원 정도의 비용이 나올 것이라 한다. 일행은 차에서 짐을 챙겨 셔틀버스로 산을 내려와 각자 서울로 향했다. 견인기사는 남해읍 정비소로 가다가 삼천포방향의 삼거리에서 나와 일정을 주관했던 성대표를 내려주었다. 성대표는 택시에서 삼천포발 서울행 시외버스를 예매하기 위해 스마트폰을 보고 있다.


   다시 내려올 바에 남해에 며칠 머무는 게 낮겠군. 며칠 일정도 비어있고 전부터 생각하고 있던 남해안을 걸어보기로 했다. 남해안 걷기를 남해에서 시작하는군. 삼천포 버스터미널은 차분하다. 오래된 버스터미널을 치장한다고 색유리와 구조물을 덧대놓은 여느 지역과 달라 마음이 편해진다. 도시 또는 촌락은 시간 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색조와 질감, 용도를 축적한 구조들로 고유한 지방색을 간직한다. 남발하는 리모델링과 벽화사업은 이런 시공간의 채취를 철제 구조물과 타일, 페인트의 냄새로 지워버린다. 사람 사는 곳이 가상의 테마파크가 돼 가는 것이다. 성대표는 버스시간에 맞춰 자리를 떴다. 낭랑한 빵집 점원의 목소리가 간간이 들려올 뿐, 고즈넉하다. 계획되지 않은 여행에서 두 개의 가방을 가지고 다녀야 한다. 옷가지등을 넣은 것과 카메라가방.


   삼천포는 남해로 진입하는 관문이다. 서울에서 오려면 여기에서 환승해야 한다. 위로는 사천이 있다. 숙소를 잡기 전에 걷기로 한다. 일단 해안가 포구로 향한다. 게스트하우스 하나와 모텔을 지난다. 좀 더 걷기로 한다. 항구에는 어선들이 빼곡히 접안되어 있고 바로 인접하여 수산물시장이 길게 늘어서 있다. 접안시설과 시장 건물 사이의 긴 복도를 따라 걷는다. 상인 몇몇이 담배를 피거나 무언가를 다듬고 있다. 누군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앞쪽에서 다가와 지나간다. 항구의 끝자락까지 다다르니 해가 뉘엿뉘엿 지고 다리는 퍽퍽해 피곤하다. 인근에 숙소는 보이지 않는다. 지도에 표시된 숙소들은 걸어가기에는 멀리 있다. 번화가 쪽으로 방향을 튼다. 간판불빛을 등대 삼아 더욱 밝은 곳으로 빨려 들어간다. 세련된 호텔 옆 노래방을 겸한 허름한 모텔의 입구를 찾기 위해 더듬거리다가 좁은 계단을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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