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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짝반짝사진방 Oct 03. 2023

왜 걷고 있을까?

갑작스런 남해기행 #2

   모텔에서 나와 남해로 향했다. 어제 석양에 걸쳐있던 삼천포대교를 건널 것이었다. 동쪽 바다가 반대편 보다 넓게 드러나 있어 다리의 오른편으로 가기로 했다. 교차로를 건너 인도를 따라 걷자 한 사람 간신히 지날 만한 울타리로 분리된 인도가 이어졌다. 일단 다리에 들어서면 건너편으로 너머 갈 수 없다. 건너편 풍경이 더 근사해 보였다면 아쉬워했을 것이다. 나는 아름다운 장면을 보고 싶어 한다. 더 보고 싶어 한다. 아름다움은 내게 생기를 느끼게 한다.


   다리 오른쪽 옆을 따라 케이블카가 오간다. 케이블카를 타고 보는 풍경은 더 아름다운 것 아닌가? 쇠줄에 매달린 사각형의 통속에서 창을 통해 보는 풍경은 TV스크린을 통해 보는 풍경과 다르지 않다. 내가 집착하는 풍경은 아마도 내가 디딘 땅에 연장된 그리고 내가 밀어내고 당기고 지나가는 그런 풍경이다. 내가 있는 풍경. 나는 몸으로 내 삶을 목격하고 싶은 것이다. 내가 케이블카를 탄다면 그것이 유일한(설산을 등반하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동수단이거나 누군가가 원해서 일 것이다.


   남해에 도달하려면 네 개의 다리와 세 개의 섬을 지나가야 한다. 삼천포대교를 통해 모개도를 지나 초양대교에 들어서고 바로 초양도에 이른다. 초양도는 삼천포에서 시작된 케이블카의 종착지이다. 길 건너 휴게소가 있지만 바로 건너기에는 위험하다. 도로는 늑도대교로 이어져 횡단보도 따위는 없다. 늑도대교 밑으로 돌아서 올라와야 한다. 다리 밑으로 내려가기 위해서 오른쪽 갈림길로 들어서자 할머니 두 분이 언덕 위 바위에 걸터앉아 있다. 그 앞에는 두대의 보행기가 마주 보고 있다. 언덕아래로 초양마을 작은 포구가 그들의 배경이 되어준다.

 "안녕하세요 어르신 보기 좋은데 사진을 찍어도 될까요?"  

 "다 늙어 빠졌는데 뭐더러 찍어. 찍지 마요." 

 "하하, 안녕히 계세요."

 "허허, 고마워요."


   사진을 찍지 않았다. 두 할머니는 내게 무엇이 고마웠던 것일까? 인사를 한 것이? 보기 좋다고 한 것이? 아님 말을 건넨 것이? 이런 생각을 하며 휴게소옆 흔들의자에 주저앉았다. 서울로 올라가는 차편에서 동료들과 같이 먹으려고 사두었던 오징어포를 꺼내 질겅질겅 씹었다. 화장실 건물 옥상이 전망대처럼 꾸며져 있다. 얄궂은 원형테이블 주위로 동그랗게 벤치가 놓여있다. 잠시 누워서 하늘을 본다. 홀로 남해에 남아 있는 것이 안쓰러웠는지 동료들의 메시지가 여러 통 도착해 있었다. 어제 차량을 가져다 두었던 정비소에서는 정비사들이 오늘 모두 교육을 받으러 가서 점검할 수 없다는 연락이 왔다. 언제 수리가 끝날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도로의 왼쪽 편에 있는 휴게소에서 바로 늑도대교에 들어서자 후회가 몰려왔다. 뒤쪽의 아담한 초양마을 포구가 오른편에 있기 때문이었다. 다리 밑으로 다시 돌아 오른편으로 가기에는 수고로워 포기했다. 다리에서 내려다본 포구의 모습을 머리에 연거푸 그리며 뒤돌아봤다. 앞쪽 늑도마을의 포구 또한 다리 오른편에 자리했다. 후회가 한 번 더 몰려왔다. 나는 도로의 왼편 인도를 따라 걷고 있다. 길 건너 저 앞쪽 늑도 포구에 횟집 하나가 보였다. 마을로 내려가기에는 길에서 좀 떨어져 있고 식당이 문을 열었는지도 가늠이 되지 않아 계속 걸어 창선대교를 넘기로 했다.


   창선대교를 넘어 창선도에 들어섰다. 여기서부터 행정구역상 남해군이다. 왼쪽에 해변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다. 좁은 갖길로 계속 걷기에는 위험해 보여 아무도 사용하지 않을 것 같은 계단으로 내려갔다. 밭을 돌아 오솔길을 통해 펜션 앞마당까지 지나야 길을 만날 수 있었다. 저만치 앞쪽에 회센터가 보였다. 횟집에서 유일하게 혼자 먹을 수 있는 음식은 물회뿐이었다. 해가 지기 전 까지는 숙소를 찾을 수 있는 삼동까지 가야 한다. 에둘러 돌아야 하는 오른쪽 해안도로를 포기하고 왼쪽 국도를 따라가기로 했다. 왼쪽으로 바다가 있는 것을 제외하면 여느 농촌과 다르지 않은 풍경이다.

   국도를 벗어나 마을로 가로지르는 길로 들어섰다. 번듯한 2차선 도로지만 지나는 차량은 보이지 않았다. 창선면사무소 옆으로 고등학생 몇몇이 지나갔다. 교복 입은 학생을 보는 것이 생경하다고 느껴진다. 미용실 앞에서 꼬마 아이가 강아지를 쫓는다.  마을의 크기에 비해 주점 간판이 눈에 많이 띈다. 영업 중인지는 알 수없다. 다리가 놓이기 전까지는 활력 있는 마을이었을 것이다. 도서지역에 다리가 놓여 육지와 연결되면 관광지 이외에는 쇠락하게 되는 것은 상식이 되었다. 차 한 잔을 마셔도 삼천포나 남해읍내로 가게 된다.


   야트막한 언덕을 하나 넘으면 창선교에 다다른다. 어깨에 통증이 느껴져 작은 배낭을 왼쪽 어깨로 옮겨 가슴팍에 걸쳐놓는다.  올해의 마지막 더위라도 되는 양 볕이 따갑다. 다리를 건너면 남해도 삼동면이다. 눈에 띄는 첫 번째 숙소로 들어가 짐을 풀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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