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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병의 로션이 가르쳐 준 것

현명한 소비와 신선한 호기심 사이의 균형잡기

by 오렌지

나는 늘 새롭고 신선한 것을 좋아한다. 특히 먹는 일에 있어서 더 그렇다. 갓 도착한 택배 상자의 과일들을 유심히 살피다가 가장 탐스럽고 잘 익은 것을 가장 먼저 손에 든다. 오래된 무의식적인 습관이다. 어렸을 적 엄마가 딸기를 접시에 내주시면, 나는 언제나 가장 빨갛고 먹음직스러운 딸기를 골라 먹곤 했다.


언젠가 친구와 함께 음식을 먹던 날이었다. 친구는 나와 달리 가장 맛있는 음식을 맨 마지막까지 아껴 두고 있었다. 그 이유를 묻자 좋은 것을 나중에 먹어야 더 맛있게 느껴진다고 했다. 나는 솔직히 이해하기 어려웠다. 맛없는 것부터 먹다가 정작 맛있는 걸 제대로 못 먹으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물론 이건 옳고 그름이 아닌 각자의 선택과 습관일 뿐이다.


이런 습관은 먹는 일에만 머무르지 않고 일상의 물건 사용으로 이어졌다. 이미 사용하던 화장품이 있는데도 새 제품을 구매하면 기다리지 않고 개봉해 쓰는 버릇이 생겼다. 덕분에 화장대 위에는 비슷한 화장품 여러 병이 나란히 줄지어 있게 되었다. 먹는 것은 금세 소진되지만, 화장품은 사용되는 데 시간이 걸리다 보니 왠지 모를 부담감이 쌓였다.


얼마 전이었다. 로션이 떨어졌다고 생각해 급히 인터넷 쇼핑몰에 접속했다. 로션 하나만 주문하면 될 것을 또 새로운 브랜드의 스킨이며 에센스까지 이것저것 추가로 담게 되었다. 택배가 도착한 뒤 화장대 위에 정리하다 뜻밖의 발견을 했다. 내가 새로 주문한 로션과 똑같은 것이 이미 화장대 위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순간 ‘아, 왜 이걸 못 봤을까?’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이미 전에 사둔 로션이 있었음에도 새로운 브랜드에 대한 호기심에 바로 개봉해 사용하다 보니, 이전 로션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지금 내 앞엔 똑같은 로션이 두 병이나 놓여 있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꼭 나쁜 일만은 아니었다. 과일이나 채소가 가장 신선할 때 바로 먹는 게 몸에 좋듯, 화장품이나 생활용품 역시 신선한 상태일 때 먼저 사용하는 것이 오히려 피부나 건강에 더 좋은 경우도 있다. 오래된 제품을 무조건 먼저 쓰는 것보다, 새로운 제품의 더 나은 성능이나 신선한 상태로부터 혜택을 누릴 수도 있는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나의 습관 자체가 아니라, 지금 내가 정말 필요한 것과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잘 확인하고 현명하게 선택하는 일이다. 순간적인 호기심이나 욕구에 빠져 낭비하는 소비가 아닌, 내 일상에 진정으로 필요한 소비를 해 나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새로운 것을 먼저 쓰는 기쁨과 신선함을 누리되, 내가 사용하는 모든 자원이 어디선가 뚝 떨어지는 게 아니라는 것도 함께 기억할 필요가 있다. 오늘도 화장대 위 두 병의 로션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나를 돌아본다. 적절한 신선함과 현명한 절약 사이에서 나만의 건강한 균형을 찾고 싶다.


#로션 #현명한소비 #균형 #신선함 #호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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