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책임한 말들의 진심

괜찮습니다. 어떻게든 될 거예요.

by 콩작가

어렸을 때는 듣기 싫었던 말 중에 마음을 열고 음미해 보면 이처럼 좋은 말은 없다고 느끼는 말들이 있다. 그때는 힘든데 위로 같지도 않은 말이라고 생각해 함부로 누군가에게 말해주지도 못했고, 스스로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그런 말 들 중 하나는 '괜찮다'는 말이다.


이 말에는 '그럴 수도 있다'는 말이 함의되어 있다. 최근에 나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괜찮다는 말을 자주 해주는데 괜찮다는 말이 식상할 때면 '그럴 수도 있다는 말', '그런 때도 있다'는 말을 해준다. 동류의 말들이기 때문이다.


별 것도 아닌 이 말을 마음을 열고 깊게 음미하면 가슴이 따뜻해진다. 정말로 위로가 된다. 괜찮다는 말을 해주는 이유는 상대가 이런 말들로 입을 열기 때문이다.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요즘따라 미친 사람처럼 정신을 빼놓고 산다.


이런 말을 들을 때 나는 가슴이 아프다. 자책의 말들이 살갗을 찌른다. 세상에 많은 일들이 완벽하지 않다. 왜냐하면 완벽함 자체에 모순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말이 무슨 말인고 하니, 완벽을 자세히 뜯어보면 완벽함이란 내가 만든 '기대'의 덩어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경우가 많다. 이렇게 되어야만 한다는 기대, 흠잡을 데 없어야 한다는 기대, 그래야만 모든 것이 제 자리에 있는 것이라는 기대. 하지만 자연에 오차 없는 완벽한 직사각형이 존재하던가. 매사 많은 일들은 변수에 의해 좌지우지된다. 하다못해 사람의 컨디션도 날마다 다르고 매시간 다르고 매분이 다르다. 기대가 만들어내는 완벽함이 완벽할 수 없는 이유다. (결국 완벽이란 뜻 자체도 완벽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스스로에게 요구하는 완벽이란 애초에 100% 이루어질 수 없는 환상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은 이런 것이다. 그럴 수도 있다는 것, 그런 날도 있다는 것. 그럴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알아차리고 다시 자신을 찾는 일이다. 그러니 자책이란 필요가 없다.


이렇게 생각하면 괜찮다는 말은 관용의 언어다. 실수를 용납해 주는 마음이자 자신 또한 피곤할 때가 있고, 정신이 없을 때가 있고, 주의력을 잃을 때도 있다는 이해의 말이다.




두 번째는 '어떻게든 되게 되어 있다'는 말이다. 참으로 무책임한 말이 아닌가.


하지만 나 자신과 사랑하는 내 지인들에게 요즘 자주 해주는 말이다. 이 무책임한 말에는 겸허와 허용의 의미가 담겨있다. 삶의 변수를 허용하고, 삶이 내 뜻대로만 되어야 한다는 오만함을 내려놓는 의미가 있다.


또한 '중요한 것은 지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뿐'이라는 의미도 내포한다. 시간을 이길 장사는 없다고 했던가. 지금 이 순간 해야 할 일들을 묵묵히 해내는 것. 사실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뿐이다. 나머지는 신의 영역이다. 과정은 나의 것이지만 결과는 나의 것이 아닌 것처럼.


걱정은 불안한 마음이 읊조리는 시조 같은 것이다. 미소 띤 얼굴로 마주 보며 스스로에게 말해주면 된다. 괜찮다. 묵묵히 걷는 오늘이 내일의 무엇인가를 만들 것이다. 우리는 무엇이든 되게 되어 있다. 그러니 그냥 오늘을 살자라고.


'괜찮다'다는 말과 '어떻게든 되게 되어 있다'는 이 두 가지 말에는 내려놓는 지혜가 숨어있다. 질책과 책망을 하기 위해 들어 올린 손가락을 내려놓고 그런 날도 있음을 관용으로 지켜봐 주는 것, 그리고 삶이 내 통제 안에서 예측 가능하게 돌아가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불안을 내려놓고 상황이 흘러가게 놓아두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이 두 가지 말을 진심을 다해 나와 사랑하는 이들에게 해준다.


괜찮습니다.

그런 날도 있습니다.

그럴 수도 있습니다.

삶은 당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되어 갈 겁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아요.


2023년, 무책임한 말에 가슴을 열어내는 여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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