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는 즐거움
이사를 앞두고 짐 정리를 하고 있다. 어제는 가장 큰 쓰레기봉투를 사서 안 신는 신발과 잘 입지 않는 옷가지들을 버리는 정리 작업을 했다.
큰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행사 진행 요원처럼 며칠 전부터 마음을 다잡았다. 이것도 버릴 거고, 저것도 버릴 거고, 쓸데없는 것들을 다 줄일 거야! 내 몸만 한 쓰레기봉투를 이곳저곳 끌고 다니며 불필요한 물건을 정리하는데 묘한 기쁨이 있다.
올해 변화가 많은 건지 회사에서도 층 이동이 있었다. 자리에 앉아 있는 1년간 쌓인 불필요한 서류들, 자료, 책들이 한가득이었다. 이때에도 박스에 불필요한 것들을 담아서 버렸다.
불필요한 것들을 버리고 나면 개운함이 몰려든다. 생활과 삶에서 불필요한 것들을 제거하고 가벼워진 것 같은 마음과 기분을 느낀다. 그래서 때때로 이사하는 과정을 즐긴다. 변화를 위해 짐을 줄이고 가볍디 가벼워진 마음으로 새 삶을 시작하는 것처럼. 마치 몸과 마음의 정화 의식을 치르듯이 정리 정돈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이다. 그리고 말하자면 이것이 전세살이에 지친 화이트 칼라 노동자에게 주는 신의 특별 선물 같은 거다. 왜냐하면 2년에 한 번씩은 삶을 정리할 수 있고 새로운 환경에서 새 삶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긍정적인 뇌회로를 돌려보자면 말이다.
어렸을 때 항상 야근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새벽 2-3시에 가는 것은 일상이었고 자정을 넘기기 않으면 그날은 운 좋게 칼퇴했다고 생각했던 때에는 정리라는 것을 하려야 할 수 없었다. 일단 집에 들어오면 아무 데나 옷을 벗고 잠이 들었다가 눈을 뜨면 대충 걸쳐 입고 출근을 했다.
그러던 어느 주말, 정신없는 방을 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내 삶과, 내 머릿속이 꼭 내 방과 같구나." 한껏 슬픔과 냉소가 섞인 자조적인 말을 혼자 되뇌었다. 하지만 이때에 삶의 진실 하나를 본 것은 아닌가 싶다. 무의식적인 그 읊조림 속에는 직관적인 진실이 담겨 있었다.
요가에서 "사우차(Saucha)"라는 것이 있다. 사우차는 우리의 몸과 말, 마음, 정신의 순수함과 깨끗함, 정갈함을 의미한다. 요가에서는 삶을 살아가는 내외적 모든 활동에서 사우차를 실천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그 이유는 외적인 행위가 내적인 삶을 반영하고, 내면의 정결함은 외적인 삶에 반영되기 때문이라는 글을 읽었다.
사우차를 배우기 전에도 내 마음과 내 주변이 연결이 되어 있다고 느꼈던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얼마나 정신없게 살아가는지에 대한 척도를 나는 집이 어질러져 있는 상태로 본다. 내가 가장 우울했던 시기에는 내 방은 정신없는 쓰레기 통이었다. 그래서 정돈되어 있지 않은 방을 보면서 내 상태를 자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모순되게도 회사 환경은 그렇지 않다. 일을 하는 책상 정리는 하지 않는 이상한 습관을 가지고 있다. 이 문제는 나도 흥미롭게 생각해서 고찰해봐야 할 과제다. 여하튼 나는 집에 한정해 사우차를 실천 중이다. (쓰고 나니 참 변명 같다.)
주말 동안 정리된 집과 정리된 사무실 책상을 보면서 새로운 시작을 느낀다. 불필요한 것들, 내 삶에 있었을 찌꺼기들과는 작별을 하고, 다시 있을 새로운 인연들과 만남을 갖기를 고대한다.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삶을 정화하듯이 그렇게 정리 정돈을 한다. 마음이 개운하다. 그리고 마법 주문처럼 되뇐다.
매일 같이 새로워져라.
매일 같이 다시 태어나라.
삶은 매일 같이 더 좋아지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던지 상관없이.
2023년 정리정돈의 쾌감에 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