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력서에 담긴 인생 소설

나는 오늘도 일상을 산다

by 콩작가
37년의 인생을 이력서 2장에 담았다.
그 행간에 담긴 의미를 아는 독자는 나뿐이다.



“이 일을 한 뒤에 공백이 1년인데, 뭘 하셨죠?”

“경력이 너무 튑니다. 저희 회사 문화에 맞을지 걱정입니다.”

“해오신 일이... 주어진 정도만 걸어오신 건 아닌지, 좋고 큰 회사만 다니셔서 그게 우려되는군요.”


면접을 보고 나왔다. 거의 10년이 다 되는 세월 동안 이런저런 일을 해왔다. 지난 세월이 A4 2장으로 채워졌다. ‘팔랑팔랑’ 내 인생이 적힌 종이를 넘기며 면접관이 이것저것 묻는다. 때로는 경력이 과하고, 때로는 경력이 너무 없고, 때로는 이력이 튀고, 때로는 이력이 재미없다. 세상의 모든 상대적인 잣대를 나에게 드리우는 것 같은 시간. 필사적으로 나라는 사람은 참 괜찮으며, 능력 있는 사람임을 증명하고 또 증명한다.


면접을 보고 돌아오는 길은 언제나 혀 끝이 쓰다. 짧은 몇 줄 안에 담긴 인생이 공허하다. 최선을 다해 살아온 것 같은데 면접 자리에서 나는 언제나 무엇인가 부족하다. 정도를 걸어오면 도전적인 창의력이 부족하고, 다양한 경력을 쌓아오면 한 가지 일을 꾸준히 할 사람이 아니다. 공백이 있으면 놀아서 문제고, 일만 해왔으면 쉬지 않고 일해서 쌓아온 것이 무엇인지 증명하지 못해 아쉽다.


사회 초년생 때 텅 빈 사무실에서 홀로 운 적이 있었다. 계속되는 야근에 허리가 아프고 눈이 뻐근했다. 몸이 부서질 것 같은데 집에 갈 수가 없었다. 시간은 이미 새벽 3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몸이 아파서 울었고, 그렇게 지나가는 청춘에 울었다.


부모 중 한 분이 돌아가시고 바로 일을 했다. 애도할 시간도 없이 밀려오는 업무에 슬픔은 가슴에 쌓였다. 출근길 지하철에 아버지를 닮은 중년 남자의 뒷모습에 눈물을 뚝뚝 흘렸다. 하지만 일로 위로도 많이 받았다. 무기력했을 뻔했던 어느 시절의 나를 어쩌면 바빴기에 넘길 수 있었다.


미국에서는 적응하기 위해 발버둥 쳤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열심히 쌓아온 경력에 해가 되지 않도록 조금 더 나은 직장을 찾아 헤맸다. 마음이 맞지 않은 팀원, 상사를 만나도 참고 버텼다. 힘든 일은 많았지만 주어진 책임을 회피한 적은 없었다. 항상 바빴고 정신없었다.


이 모든 일들이 단 몇 줄에 담겼다. 이 프로젝트를 해왔고, 이 회사를 다녔고. 그뿐이다. 이것은 성공했고, 이것은 실패했고. 나의 삶에 대한 평가는 너무 쉽고 그래서 더 공허하다.


갑자기 박경리 선생님이 쓴 토지 서문이 생각이 난다.


“사람들은 수월하게 행과 불행을 얘기한다. 어떤 사람은 나를 불행하다 하고 어떤 사람은 나를 행복하다 한다. 전자의 경우는 여자의 운명을 두고 한 말이겠고 후자의 경우는 명리를 두고 한 말이 아니었나 싶다. 혹은 잡사에서 손을 떼고 일에 전념하는 것을 두고 한 말인지 모르겠다. 그들 각도에서 본 행, 불행에는 각기 타당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때론 노여움을, 때론 모멸감을 느끼며 그런 말을 듣곤 한다. 애매모호하기 때문이다. 무궁무진한 인생의 심층을 상식으로 가려버리는 짓이 비겁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분류되는 불행, 그렇게 가치지어지는 행복이라면 실상 그 어느 것도 나와는 별 인연이 있을 성싶지 않았다. 분명 환난을 겪는 욥에게는 행복의 비밀이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깊이 없는 인생이지만 내 삶도 마찬가지가 아니었을지. 살아온 길을 상식적인 수준에서 가르기에는, 별 것도 없는 내 인생에도 행간이 있다. 실패와 성공, 행복과 불행으로 판단 짓기에는 그 한 줄이 나에게 남긴 것이 많다.


비록 아는 독자는 나뿐인 책이지만.


바깥 날씨가 참 맑다. 여름이 가는지 오늘은 날씨도 많이 덥지 않다.

면접을 보고 타인의 말로 너덜 해진 내 인생을 안고 37살의 내가 카페에 앉았다.

현재 ‘백수’라는 명함을 달고 앉아 있지만, 나는 그만큼 하찮지 않다. 그거면 됐다.


그 행간의 무게를 나만은 알고 있다.


2019년 8월, 늦은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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