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오랜 벗, 간절함을 버리려고 한다.
실은 나도 두려웠습니다.
미국에 있을 때 가끔 친구가 놀러 오면 데스밸리를 갔다. 삭막하고 황량한 아름다움이라는 것이 데스밸리에 있었다. 데스밸리에서 노을이 질 때쯤이면 우리는 마지막 코스로 단테스뷰(Dante’s View)에 간다. 가장 높은 꼭대기까지 차로 이동이 가능하기 때문에 석양이 질즈음에 서둘러 차를 타고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오른다.
단테스뷰에서는 데스밸리의 협곡이 한눈에 보인다. 높고 넓은 곳에 올라 지는 해를 보고 있으면 그 마음을 어떻게 말로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 우주의 한낯 조무래기인 내가, 여기 서 있다. 황량한 자연은 아주 거대한 사막과 산을 품고 웅장한 자태로 존재한다. 그 사이로 해가 진다. 나는 이 우주의 무엇이길래, 무엇 때문에 이토록 아픈가. 나는 그때 힘이 들었던 것 같다. 실은 이 괴로움이 아주 오래된 것 같았다. 이 마음이 참 우습다. 나는 이렇게 여기, 이 자연 속에 서 있는데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에 아픈 것만 같았다.
해는 지고 온 세상이 붉게 물들면 이상하게 울고 싶어졌다. 그 감정이 무엇인지 나는 모른다. 경이롭기도 하며, 슬프기도 하다. 마음은 커질 대로 커지고 황야를 질러나가고 협곡을 헤맨다. 거대해진 마음은 장대한 이 사막을 꼭 품을 수 있을 것만 같다. 나는 생각했다. 이 사막보다 더 너른 가슴으로 살아가고 싶다. 보잘것없고, 하찮은 일들은 마음에서 날려버리고 나도 담대함과 웅장함을 마음에 담고 살아가고 싶다.
데스밸리에서 석양을 볼 때에 우리는 언제나 말이 없었다. 각자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고, 지나온 인생을 생각하고, 삶과 우주와 생명과 자연을 생각하고 그 앞에 겸허해질 수밖에 없는 우리를 생각한다. 해가 지면 데스밸리는 암흑이다. 가로등 하나 없는 길을 음악을 들으며 운전을 해서 우리는 라스베가스로 향했다. 상향등을 켜고 구불구불한 도로를 달린다. 낯선 길이 두렵고, 어두운 밤이 두렵다. 이 두려움을 흘러나오는 음악에 다독인다. 잠시 차를 옆에 세워보자는 친구의 말에 나는 차를 갓길에 세운다. 라이트를 끄고 하늘을 바라본다.
수많은 별들이, 은하수가 머리 위로 쏟아지고 있었다. 밝은 빛 속에 그 무엇도 보이지 않았건만 실은 함께 있었다. 이 수많은 빛들이 우리와 함께 있었다. 나와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고개가 아플 정도로 쏟아지는 별들을 보고 또 본다. 한 곳만 비추는 헤드라이트가 가린 건 저 수많은 별들이다. 갑자기 이 어둠이 따뜻한 기분이 들었다. 우리는 이 어둠 속을 뚫고 가는 외로운 방랑자들이 아니다. 언제나 세상은, 자연은 우리와 함께 있다. 그것을 잊어버리고 사는 건 우리다.
나는 이제껏 여러 갈래의 길을 따라 걸어왔다. 지방에서 서울로 대학을 오고, 학습지도 팔아보고, 라디오를 기부하겠다며 태국 난민촌을 가고, 번듯한 일을 하겠다며 다시 취업시장에 뛰어들고, 미국을 가고, 미국에서 또 세계 곳곳에 출장을 다니고, 한국에 와서는 글로벌 회사를 다니겠다고 애를 쓰고.
그리고 그 길 끝에 만난 건 나의 두려움, 너였다. 나는 두려움을 간절함의 포장지로 쌌다. 그 위에 철갑을 둘렀다. 간절함을 무기로 해야겠다는 것이 정해지면 무르는 법이 없었다. 하지만 결국 마주한 것은 특별할 것도 없는 번아웃. 그렇게 찾아온 번아웃은 쉽사리 나를 떠나지 않았다. 4년의 시간이 걸렸다.
주저앉아 있는 시간 동안 무엇인가를 한다는 것이 언제나 힘들었다. 언제까지 앉아 있어야 할지도 몰랐다. 일어날 수는 있는 건가. 그리고 일어나지 않아도 좋았다. 그 4년의 시간 동안 다행히 참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좋은 상사이자 선배, 좋은 후배이자 동생, 나의 좋은 도반들, 선생님들을 만났다. 휘청이던 나를 잡아주고 품어주고, 가르쳐주고, 기다려 주는 이들을 만났다. 아껴주는 사람들을 만났다. 따뜻함 속에서 나는 점차 길을 찾았다. 이제 다른 방식의 삶을, 다른 방식의 성장을, 열정을 가지고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이제 나의 오랜 벗, 간절함을 버리려고 한다.
실은 나도 두려웠다. 새로운 일을 한다는 것은 언제나 두려웠고, 수많은 반대를 뚫고 간다는 것은 더 두려웠다. 만약 도전의 끝에 아무것도 없으면 어쩌나 두려웠다. 그래서 더 강해져야 했다. 더 간절해져야 했다. 하지만 그렇게 택한 간절함 때문에 괴로웠다. 손에 꼭 쥐고 놔주지 않는 삶의 방식이 힘들었다. 더 많은 노력을 하고, 더 많은 에너지를 써야만 했다.
그렇게 돌아와 이제야 두려움, 너를 만난다. 그때, 나 또한 두렵다는 것을 알아줄 것을 그랬다. 실은 나 또한 어려운 결정을 한 것이라고 알아줄 걸 그랬다. 그랬다면 그 뒤에 했던 그 수많은 노력들이, 애타는 시간들이, 당연한 것처럼 취급하지 않았을 것이다. 노력하며 느끼는 괴로움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거다. 그걸 나만이라도 알아줄 걸 그랬다.
나의 오랜 벗, 간절함아, 고맙다. 내 삶을 여기까지 이끌어줘서 고맙다. 덕분에 나는 참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생전 처음 가본 곳들을 다녀보고, 아무런 인연도 없을 것 같던 사람들을 만나고, 너무도 즐거웠다. 나에게 기회를 줘서 고맙다. 네가 만들어준 기회들이었다.
하지만 이제, 너와 작별을 하려 한다. 너는 나에게 큰 힘이 되었지만, 너의 빛은 너무 강해 삶의 가득한 별빛들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이제 수많은 우연과 함께 하고 싶다. 간절함, 너를 헤드라이트 삼아 직진으로 달리지 않으려고 한다. 나는 의도를 벗 삼아 삶과 함께 하려고 한다. 그러니 빠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방향을 향해 가고 있을 것이다. 나의 걸음은 느리지만 분명하고 확실할 것이다. 또한 나는 내 사랑하는 이들의 손을 잡고 이 길을 천천히 걸을 것이다. 우연이 우연을 만들고 그 우연이 또 다른 기회를 만드는 생생한 삶의 현장을 기꺼운 마음으로 목격하며 갈 것이다. 데스밸리의 수많은 경이로운 자연을 보듯 나의 삶이 그리는 경이로운 연출을 나는 보고 또 볼 것이다. 생은 한 번뿐이다. 그렇기에 너와 함께했지만, 또한 그렇기에 너를 버린다.
2023년 4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