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 같은 20분의 점심시간
혼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요사이 약속이 많았다. 모든 약속이 다 즐거웠지만 어젯밤부터 강렬하게 혼자 있고 싶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혼자가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옆에 누군가 있어도 상관없었다. 다만 고요한 시간이 필요했다. 조용히 내면을 살필 수 있는 시간, 차분하게 책을 읽고 사유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시간들이.
이런 시간이 없자 극심한 피로감이 밀려왔다. 쉬지 않는 느낌, 너무 많은 일들을 벌린 느낌, 정신이 없는 느낌, 혼란스러운 느낌 등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오늘 점심시간에 싸둔 도시락을 먹으면서 책을 펼쳐 들었다. 딱 20분 정도의 집중의 시간. 책을 읽으면서 정리하고 싶은 내용을 적고 있는데 갑자기 행복감이 밀려왔다. 그래, 이런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또 한 번 느낀다. 나는 참 이런 인간이었다.
혼자 있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사람.
왜 그런지 생각을 해봤다.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게 힘든 것도 아니고 불편한 것도 아니다. 다만 때때로 나는 나와 만나줘야만 한다. 방해받지 않은 고요한 시간이 필요하다. 이럴 때 나는 보통 책을 읽거나 글을 쓴다. 아니면 그저 멍하니 앉아만 있다. 그리고 그 시간이 있으면 쉼을 얻는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인간이라니 처음에는 문제가 있는 줄 알았다. 그래서 회피성 애착에 대한 책도 읽어보고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눈을 안으로 돌리는 시간은 나에게 있어 하루하루의 정신없는 시간을 정리하는 시간이자 성장을 위한 발판을 얻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 시간에 나는 내가 하는 행동들, 사유에 대해 되돌아보고 경험했던 것들을 정리한다. 그 가운데 발견되는 것들이 많다. 더 솔직해지고 더 진솔해진다.
이런 시간이 없을 때 나는 보통 시선이 밖으로 향해 있다. 함께 하는 사람의 기분을 생각하고, 무엇을 할지 생각하고, 정신없게 웃고 떠들다 보면 텅 빈다. 즐거운 경험들이 생겼지만 이런 경험들을 음미할 시간도 없이 지나쳐버린다. 그러고 나면 그냥 정신없는 하루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나는 지금 차분한 마음으로 혼자 있다. 오늘 오후에는 직업에 대해 심각한 회의감이 왔었다. 또, 고요한 시간이 없는 요즘에 잡힌 내일의 약속이 부담스러워 하루 종일 가슴이 답답했었다.
하지만 조용히 앉아 있는 이 시간, 귓가에는 재즈 음악이 흐르고 나의 손가락은 글을 쓰느라 여념이 없다. 답답한 속내, 오늘 하루의 스트레스, 그걸 겪고 있는 나의 신체적 반응들과 함께 있다. 그리고 차분하고 행복하다.
이런 시간들이 있어야지만 감사함을 알 수 있다. 잠시 떨어져 있는 시간, 고요히 주변을 정리하는 시간이 있어야 나의 삶에 무엇이 있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이런 시간을 지나치며 나는 성장한다.
때로 삶에는 공간이 필요하다.
삶에는 때때로 공간이 필요하다. 이 공간은 물리적 공간이 아니다. 어떤 일을 경험하는 동안 그 경험과 나와의 분리가 필요하다. 감정과 생각도 마찬가지다.
‘생각과 감정도 우리는 경험한다’고들 하지 않나. 내가 어떤 생각을 할 때 나는 그 생각을 경험한다. 그러므로 부정적인 생각을 하면 부정적인 것을 경험한다.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살아야 하는 이유는 그 생각은 생각으로 멈추지 않고, 삶의 경험으로 남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더라도 말이다.
그래서 잠시 멈추고 바라볼 때 생기는 심리적 ‘공간’은 필수적이다. 명상을 하는 이유 중 하나다. 생각과 감정, 삶의 경험들과 잠시 떨어져 있을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야지만 볼 수 없던 것들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쉴 새 없이 돌아가는 공장처럼 나의 몸과 마음도 돌아간다. 컨베이너 벨트가 돌듯이 자동적으로 생각과 감정은 일어나고 평소와 같은 모습으로 행동하고 산다. 휙휙 공장 노동자가 물건을 기계적으로 조립하고 만지고 해치우듯 하루를 살아간다.
그때의 삶은 언제나 공허하다. 하지만 그 모든 경험과 떨어져 있는 시간에 나는 나와 존재하는 것들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내 안에서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사라진 사람들과 경험들을 떠올리며 그것들에 다시 삶을 부여한다. 지난 몇 주 함께한 사람들을 생각하고, 오늘 하루 살아간 나를 생각하고 느낀다.
그러면 나의 내면에는 커다란 공간이 생기고 그제야 바람이 불고 움직인다. 이제야 사랑받았던 경험, 즐거웠던 경험들이 더 고맙고 감사하다.
그러니 혼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수밖에.
혼자가 되기 위한 나의 노력은 함께하기 위한 노력이다. 나를 지키면서도 누군가와 함께 하기 위한 노력들이다. 또한 지나칠 수 있는 오늘 하루 내가 받은 격려의 말들, 다정함의 말들을 기억하려는 노력들이다.
그러니 사랑하는 사람들이여,
부디 혼자 있고자 하는 나에게 서운함 없이 이해의 다정함을 발휘해 주길.
싫어서, 혹은 재미없어서 혼자 있으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
2023년 6월, 해 질 녘 카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