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한없이 미워질 때에는

모든 생각이 진실은 아닙니다.

by 콩작가


매서운 태풍이 몰아치면
태풍을 피할 길이 없는 것처럼



매서운 태풍은 불현듯 찾아온다.


살다 보면 예보에도 없던 태풍이 불어오는 것 같은 그런 날이 있다. 그날따라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이 한없이 솟아나는 날. 갑자기 자신이 자꾸만 미워지는 날. 그래서 내 주위에 일어나는 많은 일들이 다 내 탓인 것만 같고, 주위 사람들의 상처도 모두 다 내 탓인 것만 같은 날 말이다.


그런 날에는 어김없이 비난과 질책, 채찍질의 목소리가 이어진다. '너는 왜 그 모양이냐, 왜 그렇게 이기적인지, 넌 정말 나쁘다.' 이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 가슴 한가운데가 꽉 막힌 것처럼 뭉쳐져 온다.


누군가는 그런 날이 왜 있지? 하고 어리둥절해할지도 모른다. 또 누군가는 이런 날이 본인에게도 있었음에도 누군가 '오늘 저는 제가 참으로 미운 날입니다.'라고 고백해 오면 충고와 조언을 쏟아부을지도 모른다. 자존감을 높이는 방법부터 그런 생각은 하지도 말라고 질책을 더해서.


인간의 뇌가 생존을 위해 부정 편향에 익숙하게 진화했다는 과학적 이야기는 차치하더라도 이런 조언은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어떤 누구도 이런 상황에 기쁨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목소리가 거세져 폭풍우처럼 쏟아질 때에는 어떻게 해야 이 비를 피할 수 있는지 알 길이 없다. 폭풍우 속에 우두커니 서서 비바람을 맞는 수밖에. 몰려드는 슬픔의 파도에 몸을 맡기고 자맥질하듯 그 자리에 떠 있는 수밖에. 태풍이 몰아치는 날에는 태풍을 피할 길이 없는 것처럼.


매서운 한 여름의 태풍이 몰아칠 때에 할 수 있는 일은 또다시 맑은 날이 올 거라고 믿는 것뿐이다. 이 태풍도 하루 이틀이면 지나가고 오늘 같이 가장 매서운 바람이 부는 시간도 있을 테지만 이 날만 견디면 비도 바람도 잦아들 것이라는 믿음에 몸을 온전히 기대는 것이다. 그것 하나에 마음을 잡고 단단히 옷깃을 여미는 것이다.


그렇다. 이 모든 것이 지나가리라는 것은 얼마나 큰 위로의 말인가. 삶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지혜인지 모른다. 언제나 태풍만 있지 않고, 언제나 흐린 날만 있지 않는 것처럼 내 마음도 오늘만 같지는 않을 것이다.





모든 생각이 진실은 아닙니다.


작년 여름에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저자: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라는 책을 오디오북으로 들었다. 막히는 도로에서 차 안에서 오디오북을 듣는 동안에 나는 진솔하게 쓰인 그의 책에 푹 빠져버렸다. 도로에 2시간을 서 있어도 힘든 줄도 모르고 울고 웃으며 이 책과 함께했다. 그 뒤 장호항을 휴가로 놀러 갈 때 또 들었다.


처음에 이 책을 접했을 때에는 그저 그런 이야기로만 여겼다. 성공가도를 달리던 백인 남성이 태국의 불교를 접하면서 겪는 에피소드를 담은 책은 흔하다고 생각했다. 한때 서양인들이 동양의 불교문화에 빠져 하버드 같은 명문대를 중퇴하고 수행자가 된 스토리가 화제였기에 그런 류의 책 중 하나라고 여겼다. 하지만 이 책 속에 녹여져 있는 삶을 향한 그의 진솔한 고백은 종교를 떠나 마음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그는 종교인 아무개로 살아간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자신의 삶을 진솔하게 살았다.


17년 동안 깨달음을 얻고자 수행에 매진한 결과,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다 믿지는 않게 되었습니다. 그게 제가 얻은 초능력입니다.

-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


이 책의 프롤로그에서 저자가 하는 말이다. 스웨덴의 기자가 17년간 승려 생활을 하면서 배운 가장 중요한 가르침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나티코는 이렇게 답한다.


스치듯 지나칠 수 있는 말이 오늘 많은 위로가 되었다.


주말에 나는 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조금 냉정한 결정을 해야 했는데 그 결정은 죄책감을 불러일으켰다. 습관적인 자책과 질책이었다. 살아오며 내가 모든 것을 맞춰줄 수 없고 때로 나 자신을 버리고 타인을 맞춰주는 것이 오히려 그 누구도 위한 일이 아님을 절실히 깨달았지만 습관적으로 죄책감이 몰려오고 불편한 감정을 겪었다.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말은 '사회와 세상과 조직을 위해 내 뜻대로 따라주세요'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가족을 위해, 집단을 위해, 조직을 위해, 회사를 위해, 국가를 위한 선량함을 너무 무의식적으로 배워온 탓에 함께하는 것에 따르지 않고 나의 감정을 가장 우선시한 결정을 따랐을 때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남긴다.


또 그런 결정에는 반사적으로 상대 또한 불편할 수밖에 없다. 돌아오는 질책의 눈빛과 말에는 또다시 죄책감과 자책을 자극한다. '내가 나쁜 것은 아닐까? 내가 속이 좁고 이기적이라 그런 것은 아닐까?' 의심하고, 후회하고, 비난한다.


그리고 나는 이 과정을 지켜만 보고 있다. 왜냐하면 나티코의 말처럼 나 또한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다 믿지 않기 때문이다. 이 결정에는 나를 보호하고자 하는 의도가 같이 숨겨져 있었다. 나는 누군가의 의견에 따라주고 싶지만 나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것은 나뿐이었다. 아직 극복하지 못한 두려움도 있었겠지만 나는 나를 위해 영웅이 되어 줘야 했다. 지키고 보호하는 보호자가 되어 줘야 했다.


마음이 놀라고 불편할 때 우리는 욕을 한다. 나는 최근에 무의식적으로 욕을 할 때 마음이 불편함을 겪고 있다는 것을 관찰했었다. 비난의 목소리도 같은 경우다. 나의 죄책감, 의심, 슬픔의 마음이 갈 길을 잃고 이런저런 탓을 하고 비난을 하며 편해지고 싶은 것이다. 실은 마음의 나약한 부분을 보호하고 싶은 것이다.


그렇기에 아무 말이나 쏟아내고 있을 뿐 그 생각이 진실은 아니다.


그러니 지켜만 보는 것이다. 폭풍우가 잦아지길 바라며, 내가 오늘 힘들다는 것을 알아주면서.






깊은 두려움 끝에는
결국 사랑만이 존재한다.



어젯밤에 나는 명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생각으로 빠지려는 것을 지속적으로 호흡으로 돌리고 돌아오는 연습만 하면서 오랜 시간 동안 생각과 감정을 관찰했다.


내가 쏟아내는 말들 끝에는 두려움이 있었다.


거절의 말은 나에게도 익숙하지가 않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마음은 모두 그들의 뜻대로 하게끔 내버려 두고 싶다. 그들이 그래서 즐거울 수만 있다면, 그래서 그들이 행복할 수만 있다면. 그리고 그들이 내 결정이 그들을 위한 것임을 알아주고, 나도 그들에게 사랑받을 수만 있다면.


자책과 죄책감이 일어난 이유는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미워할까 봐 두려웠다. 그래서 혹시나 냉정한 나의 결정이 내 잘못은 아닌가 다시 의심했다. 그리고 그 마음 한가운데에는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다.


사랑하기에 사랑받고 싶었다. 그래서 거절이 두려웠다. 내가 온전한 나로 있지 못하고 끌려다녔던 이유는 사랑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들이 네가 이런 걸 해주지 않아 힘들다고 하면 나는 나를 버리고 맞춰주고 싶었다.


하지만 사랑은 맞춰주는 데 있지 않았다. 그것은 두려움 끝에 마치 근원처럼 존재했다. 맞춰주기에 사랑이 오고 가는 것이 아니었다. 사랑은 배경처럼 우두커니 버티고 있었다. 나는 사랑해서 두려웠을 뿐이다. 그리고 충분히 사랑을 주고 충분한 사랑을 받기를 원했다.


괜찮다.


이런 이유라면 괜찮다. 나는 여전히 충분히 내가 사랑하는 이들을 사랑한다. 그러니 두려울 이유가 없다. 또한 나는 나를 충분하게 사랑한다. 나를 사랑하기에 나로 있을 수 있게 나는 나를 전사처럼, 유능한 리더처럼 보호할 것이다. 그러니 이 또한 괜찮다.


나는 오늘도 의도를 세워본다. 나의 사랑이 충분히 왜곡 없이 전해지기를. 복잡한 생각과 감정의 틀에서 자유로워져 사랑하는 마음과 사랑받고자 하는 마음이 충분한 통합을 이루기를. 사랑하고자 하는 마음과 사랑받고자 하는 마음이 맑고 투명해져 단순하고 더 단순한 행위가 될 수 있기를. 이것만이 복잡한 현재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이다.


2023년 6월, 생각은 생각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