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한 이별
아침 수영을 하다가 문득 술이 내 삶에서 서서히 퇴장할 때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술, 참 좋은 친구였다. 술을 처음부터 꽤나 좋아했던 것은 아니다. 대학교 1학년 때 처음으로 술을 접하고 종종 마시기는 했지만 즐기는 순간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젊음이 주는 불안 때문이었던 것 같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는 부서 회식이 없는 회사를 다녔기에 많이 마신 기억이 없다. 종종 힘들 때 혼자 술을 마시기도 했고, 때로는 누군가와 박장대소하며 마시는 순간도 있었지만 횟수로는 많지는 않았다. 1-2달에 한 번 마실까 말까 할 때도 있었고 어떨 때는 연중행사로 마시기도 했다.
어릴 때에는 술을 마시면 사람이 달라진다는 소리를 종종 들었다. 그때에는 보이는 모습을 중요하게 생각했고, 타인에게는 보여주고 싶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었다. 실수로 숨겨진 나의 어두운 면들이 함부로 분출될까 두려웠던 것도 같다. 마음에 철갑을 두르고도 그것이 허술하게 벗겨질까 긴장하고 불안했다.
하지만 그랬던 나라도 술을 마셔 알딸딸하고 기분 좋은 상태가 되면 내면의 긴장의 끈이 살짝 놓아졌다. 손발에 따뜻한 기운이 돌고 얼굴에도 붉은 기운이 올라오고 머리도 조금씩 멍해지면 갑자기 '에라이~ 만사 될 되로 돼라!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떻나' 하는, 이상한 무책임함이 샘솟았다.
그럴 때 나는 마음껏 웃고 마음껏 친구를 만들고 농담을 했다. 사람들과 금방 친해지고 재미있고 재치 있다는 말을 들었다. 술을 마시니 사람이 달라진다고도 했다. 하지만 하룻밤의 꿈처럼, 술 기운이 사라지면 마법에서 깨어나 허름한 옷을 입은 동화 속 주인공처럼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것이다. 밤새 친해진 친구에게 두 손 모아 공손히 인사하고 처음 만난 사이처럼 미소에는 어색함이 흘렀다.
그때 나는 술을 마신 나의 모습을 더 좋아했던 것 같다. 마음의 문을 열고 세상을 향해 편안하게 다가가고 싶은데 술 없이는 어쩐지 힘들었다. 그게 조금은 서글프고 씁쓸했다.
술을 좋아하게 된 계기는 30대 후반이 되어서였다. 5년 정도 된 것 같다. 번아웃을 겪고 삶을 다른 방식으로 살기로 결심한 순간부터였다. 그 거창한 결심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무엇이 되려고도 하지 말자, 무엇을 애써서 이루려고도 하지 말자, 그저 나로 살아가자는 말 한마디만 가슴에 품었다.
계산적이던 사회적 자아를 없애고 그냥 그 자리를 즐겼다. 술을 마시고 동료들과 대화가 오고 가고, 어느 순간부터는 내 내면에서 터부시 했던 어떤 면들이 없어지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없어지고 있었다기보다 통합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면들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나는 그것 또한 나 자신의 일부임을 소중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종종 하지 않았던 사적인 이야기도 했고, 내밀한 감정을 이야기할 때도 많았다. 보여주면 보여줄수록 내가 타인과 세상으로부터 그토록 감추고 싶어 했던 면면들이 더 사라졌고, 내가 불완전한 인간이며 때로 실수를 하고 상처를 받는다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나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 깊어질수록 가슴은 더 열렸고, 더 많은 것들을 세상과 타인에게 보여주고 표현했다.
우습게도 내가 마음을 열면 열 수록 술과 함께하는 대화는 매력적이 되어 갔고 나는 사람들과의 만남에 몰입했다. 솔직히 너무나도 즐거웠다. 친구, 동료, 지인들과 술 한잔 하며 원 없이 웃는 날들이 늘었다. 그렇게 즐겁게 몇 년을 산 것 같다.
요사이 나는 이런 말을 종종 듣는다.
"혹시 술 마셨니?"
그럴 때마다 나는 '아니야'하고 부정하며 크게 웃는다. 이제 술을 마시지 않아도 나는 나로 존재한다. 그렇기에 평소에도 술 마셨냐는 이야기를 듣는다. 술이 없어도 여전히 나 자신을 괜찮다고 여기는 것이 제법 만족스럽다.
그리고 그 사이 다른 많은 것들도 변했다. 아, 삶이란 얼마나 총체적이고 미묘한가. 바꾼 생각 하나가 모든 변화를 이끈다. 그러니 작은 것이 그토록 소중한 것이다. 작은 시도, 작은 변화, 작은 생각이 연쇄 작용을 일으키는 순간이 오고, 그것이 전반적인 삶을 다른 방향으로 이끈다. 작은 시도, 의도, 변화가 주는 마법 같은 힘이다.
다른 방식으로 삶을 살겠다는 생각은 5년의 시간 동안 의도가 되었던 모양이다. 삶은 그 의도에 맞춰 많은 것들을 선물했다. 요가와 명상을 알게 되고 이제까지는 몰랐던 세상의 수많은 영적 스승들의 책과 가르침을 조금씩 읽게 되었고, 삶의 진실에 한 발짝 더 나아가려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이전과는 다른 깊이의 대화를 하고 변화를 추구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마음의 짐을 조금씩 벗을수록 내가 더 잘 보였다. 그리고 그렇게 이해한 진솔한 모습 그대로 행했다. 지금의 나는 꿈꾸던 대로 자연과 더불어 살 수 있는 곳으로 이사를 하고, 정갈한 천연 식품들로 -되도록 이면- 밥상을 차린다. 아침이 되면 뛰고 수영을 하며 몸의 열기를 느끼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앞 산이 보이는 거실에서 뒹굴거리며 놀고 책을 읽다가 잠을 잔다.
그리고 이렇게 글을 쓴다. 감사하고 또 감사할 일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내가 원하던 삶의 방향과 일치함에 감사하다. 가치관에 맞는 삶을 꾸린다는 영혼의 충만감은 술의 기쁨을 넘어섰다. 도파민이 터지듯이 짜릿하고 중독적이지는 않지만 잔잔한 물결처럼 그렇게, 밀물이 되어 가슴을 적신다. 그리고 그 여운은 오래토록 깊게 남아 영혼을 채운다. 아, 좋다. 행복하다. 따사로운 햇살 아래 노곤하게 누운 고양이처럼 그렇게 나른하다. 편안하다. 행복하다.
그러니 술, 자네가 필요 없게 되었다네. 그간 고마웠네. 잘 가게.
2024년 1월, 술과의 잔잔한 이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