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동상이몽은 곧 깨졌다.
서른 즈음, 나는 무작정 미국으로 떠났다.
그건, 서른 즈음이면 다들 한다는 결혼으로부터의 조용한 탈주였다. 결혼도 해보려 했다. 하지만 도무지 마음 가는 인연을 찾지 못했다.
그때 나는 일종의 좌절감을 느낀 것 같다. 결혼 적령기의 남녀는 거래 조건을 재보는 영업 상무 같았다. 누가 더 손해인지 꼼꼼히 살펴보는 눈, 은근슬쩍 무례하게 물어오는 스펙들.
그때 처음으로 내가 결혼이라는 시장에 좋은 매물이 아님을 알았다. 그래서 떠났다. 차라리, 나한테 돈을 써보자는 심정으로.
그렇게 미국에서 3년을 살았다. 우여곡절 끝에 취업도 했다. 늘 해외 출장을 다니는 일을 해보고 싶었던 나는, 그곳에서 한을 풀었다. 한 달에 두세 번은 출장을 다녔으니까.
미국 생활이 2년 반이 지나갈 무렵, 비자를 받기 위해 한국에 잠시 머물렀다. 큰 이민 가방 하나만 들고 집으로 향했다.
늘 보면 익숙한 대문을 열고 들어가자 엄마가 버선발로 뛰어나왔다. 고기를 굽고, 국을 끓이고, 따뜻한 밥이 나왔다. 밥 한 그릇을 다 비워 갈 때쯤 엄마의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아, 또 왜 울어?”
“기가 막혀서 운다! 짐 두 짝 지고 떠도는 네 인생이 기가 막혀서.”
“비자받으러 온 거야. 뭐가 기가 막혀. 남들은 하고 싶어도 못 해.”
엄마의 눈엔 내가 한 많은 장돌뱅이 인생 같아 보였을까. 그게 억울해 나도 부루퉁하게 말했다. 적어도 나만큼은 내 인생을 방어해야 했다.
그날 밤, 엄마는 내게 말했다.
“돈 백만 원도 없을 때 서울로 유학을 가더니, 집에 천만 원도 없는데 미국을 다 가고…
나는 그냥, 너도 나처럼 살 줄 알았지...”
마치 그날처음 딸이 낯설게 느껴진 것처럼 엄마는 말했다.
“엄마처럼? 엄마는 꿈이 뭐였는데?”
엄마는 잠시 침묵했다.
“우리 때는 그런 거, 없었다. 여자는 재수 없다고 동짓날에 나가지도 못했는데.”
나는 엄마의 인생을 다시 떠올렸다. 내가 알지도 못했던 그 시절, 엄마의 삶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우리는 닮은 것 같지만, 결국 다른 사람이었다.
엄마는 나를 낳았지만, 앞에 놓인 삶은 달랐다. 그 복잡하고 오묘한 세상의 이치를 우린 그날 밤 조용히 깨우쳤다.
그리고 그날 이후 엄마는 더 이상 내게 무슨 일을 하냐고 묻지 않았다.
대신 이렇게 말했다.
“미국까지 갔다 온 년을 내가 뭔 걱정을 하겠냐.”
엄마는 나로부터 독립했다. 엄마가 상상하던 딸의 인생은, 그날 이후 사라졌다. 내가 엄마에 대해 그런 것처럼.
신기루가 걷히면 그 자리에 뭐가 남을까.
그건 누구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