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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긍정윤 May 03. 2023

나의 차 경배를 소개합니다.

오늘도 내일도 잘 부탁한다.

2년 전쯤이었나 그랬던 것 같다. 마흔이 넘어가도록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는 내가 한없이 한심해서 집 아니면 차를 사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네이버 부동산을 뒤지고 뒤져서, 영끌을 해서라도! 내 한 몸 살 곳을 사보겠노라! 다짐하며 찾아봤지만 집 값은 터무니없이 높았다.


그렇다면 차라도 사자하고 SK엔카를 며칠간 뒤져서 차를 한대 샀다. 이마트에 장 보러 가듯이 가서 사버렸다. 어느 날 갑자기 수원으로 중고차를 보러 가야겠다고 가서 그날 저녁에 사들고 올라왔다.


사람들이 연비는 얼마인지 연식인지 뭔지 다양한 걸 물었지만 아무 대답도 못했다.


“저.. 그냥 마음에 들어 샀어요..”


그렇게 내 첫 차 경배를 맞아들였다. 차 이름이 왜 경배인가 하면 차가 미니 쿠퍼인데 뒤에 GB라는 스티커가 붙여져 있다. 그걸 보더니 한 사람이,


“GB? ㅋㅋ 전 주인 이름이 경배 아니에요?”


라고 했고, 그 뒤로 경배가 되었다. 알고 보니 GB는 Great Britain의 약자였다. ㅋㅋㅋ 어쨌든 그 뒤로 경배는 내 차 이름이 되었고, 경배와 나는 좋은 추억을 쌓아 올리고 있다.


나는 나의 삶에 경배가 있어 참 고맙다. 내가 감사함을 떠올릴 때 언제나 떠올리는 몇 가지 생각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경배다. 차에 대해 뭐가 그렇게 감상적이냐 할 수도 있지만. 어쨌든. 우선 나는 나의 삶에 안전한 집이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비록 전셋집이라 할지라도, 평수가 크지 않아도 지친 하루 일과를 마치고 돌아올 곳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안전함과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이 큰 위안이 된다.


그래도 40 평생 살아가면서 길바닥에 나앉지 않고 서울 한 구석에 전셋집이라도 얻을 수 있는 능력이 있어 감사하다. 작은 것이지만, 이것이 당연하지 않음을 나는 안다. 그래도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오고, 죽지 않을 만큼 벌고, 따뜻한 곳에 내 한 몸 뉘일 수 있을 만큼의 여건을 갖췄음에 감사하다.


그리고 요가를 하고 명상을 하는 여유가 있는 지금의 여건에 감사하다. 비록 최근에는 여러 사정이 있어서 잘 못하고 있지만.. 열심히 할 시절에는 이것이 참 고마웠다. 새벽까지 일을 하고 몸과 마음이 피로에 지쳐 울면서 잠들던 시절도 있었다. 일요일이 되면 또 한 주를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 불안에 떨며 잠을 이루지 못하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요새는 퇴근을 하면 좋아하는 요가를 하고, 저녁이면 명상 수업을 듣는다. 경제적 조건처럼 시간의 여유도 당연한 것이 아님을 안다. 그렇기에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이 시간이, 삶의 조건이 참으로 고맙다. 하루를 편안한 마음으로 마무리하고 내일을 기대할 수 있어 감사하다.


마지막으로 경배가 있어 참 고맙다. 경배를 끌고 여러 곳을 다녔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때에 마음이 복잡한 날이 있었다. 예정에도 없이 경배를 끌고 양양으로 훌쩍 떠났다. 비가 오는 가을이었다. 차에 앉아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한참을 앉아 있었다.


월요일 아침이면 아침 명상 수업을 들었다. 그럴 때면 출근 시간보다 1시간 전에 회사 근처 주차장에 경배를 대고, 고요히 명상에 빠져들었다. 퇴근 후에는 경배를 이끌고 동호대교를 넘어갈 적에 빨갛게 타들어 가는 노을을 보며 하루가 마무리되는 감사함을 느꼈다.  


주말이면 남양주 물의 정원이나 북한강을 찾았다. 경배를 타고 동이 터오는 새벽 아침을 맞이하며 올림픽대로를 달리고, 강변북로를 달렸다. 그리고 가장 경치가 좋은 곳에서 주차한 후 나는 원 없이 바람을 맞으며 러닝을 하는 것이다.


지방이나 먼 곳을 갈 때면 경배를 운전하며 오디오북을 듣는다. 작년 장호항을 여름휴가로 갈 적에는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라는 책을 들었다. 저자의 진솔한 삶의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나는 함께 울고 웃었다.


내 차 경배는 이 모든 순간과 함께 했다. 참으로 고맙다. 경배가 있어 내 일상이 풍요로워졌다. 자유롭게 달리고 어디든 찾아가고,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태우고 여러 곳을 다녔다. 때로 아무 이유도 없이 사랑하는 이들을 집까지 데려다 주기도 하고, 차 안에서는 즐겁고 진솔한 이야기들을 나눴다. 차가 있어 달라진 일상의 풍경이다. 앞으로도 경배에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싣고 서울이든 경기도든 어디든 달릴 것이다.


경배야, 내일도 모레도 언제나 잘 부탁한다.


2023년, 차에 이렇게까지 진심이었나 싶은 글을 쓴 5월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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