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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긍정윤 May 09. 2023

가볍게 더 가볍게

작가의 서랍 대방출 글들 - 19년의 글

퇴사를 했다. 당연히 첫 퇴사도 아니고 감상적으로 소회를 쓸 만큼, 또 그럴듯하게 포장할 만큼 대단한 일도 아니었다. 한 마디로 이야기하자면 그냥 한 번쯤 이때 멈춰 서고 싶었을 뿐이다. 그게 이직을 한 지 5개월 만에 일어날 거란 건 몰랐지만. 뭐 인생사 어떻게 미리 알 수 있겠나. 


퇴사 첫날, 아침 느즈막에 일어나서 요가를 하고 깔끔하게 방을 정리하고 차분해진 마음으로 카페를 나왔다. 갑자기 이상하게 마음이 울렁울렁거린다. 사람 안에 본질 된 모습이 있다면, 스스로도 속일 수도 없고 남들이 알아주지도, 알아챌 수도 없는 그런 알짜배기 호두알 같은 영혼이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다면, 왠지 그 모습 그대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무거운 중압감을 벗어버리고, 그저 나라는 한 사람으로. 가볍디 가볍게. 사회생활을 하는 나란 남이 바라는 대로 나도 모르게 행동하고 만다. 버거웠지만 버겁지 않았던 것처럼 마음 상했지만 이런 건 거뜬하다는 듯이 하하 웃어버리기도 하고, 실은 내 마음 한 구석도 데워지지 않는 일들뿐이지만 열정적인 척하면서. 두꺼워진 허물만큼 울고 있을 저 안의 호두알에게 미안하다 말하면서 쭉 커피를 들이켠다. 살짝 울컥하지만 뭐, 나이 값이나 하자. 




힘주고 살지 말아야지


짧았던 5개월의 이직 생활 그리고 그것보다 길었던 근 10년 간의 사회생활을 돌이켜 보면서 드는 딱 한 가지 생각은 '힘주고 열심히 살지 말아야지'라는 것뿐이다. 우습게도 세상일은 가볍디 가벼운 마음으로 했던 것들은 잘될 때가 많고 힘주어 간절해지면 망할 때가 많은 것 같을까. 기대가 없었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했던 건 기억에 남지 않은 것일까. 


그런데 이런 건 기대감만으로 설명하긴 어렵다. 뭘 배울 때도 마찬가지다. 나는 요가를 유튜브 영상을 보면서 가끔 따라 하는데 어려운 동작이 나오면 무의식적으로 잔뜩 긴장하고 만다. 어깨에는 힘이 들어가고 몸은 경직되어 있다. 어느 순간 동작을 하다 내가 힘을 주고 있다고 느낄 때가 있는데 그럴 때 의식적으로 턱과 어깨에 들어간 힘을 빼고 느슨해지면 그 보다 쉽게 동작이 될 때가 있다. 부드러움은 강함을 이긴다더니 뭐든 릴랙스 할 때 더 잘 되는 것인가? 이래서 취권에서 성룡은 술만 먹으면 절대 강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인가?! 별 시답잖은 감탄을 하면서 또 커피를 한 모금 쭉 들이켠다. 


대학생 때인가, 기억도 가물가물한데 어렸을 적에 지인의 친구 하나가 교통사고를 당한 적이 있었다. 차에 치여 크게 뛰어올랐고 큰 사고였지만 다행히 치명적인 부상은 피했다고 했다. 그게 만취해서 몸에 힘이 안 들어갔기 때문이란 소릴 들은 적이 있다. 물론 뇌진탕을 면한 건 운이었겠지만. 그때도 긴장을 하고 경직이 되면 더 다치는구나 했었다. 


살다 보니 경직된 것이 좋지 않은 건 비단 몸뿐만이 아니었다. 일을 할 때도 사람을 대할 때도 편안할 때 가볍고 즐거울 때 세상만사 원활히 돌아가는 것 같다. 그게 내 맘대로 되진 않겠지만.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내가 조금 더 막무가내 같았고 강심장이었다면 이렇게 잠시 멈출 일도 없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사소한 것에도 크게 심각해져 버리는 나는 어쩌면 너무 힘을 줘서 더 지쳐버리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힘이 들어가 파열되기 쉬운 근육처럼 쉽게 무너져 버리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한 은사가 내게 했던 욕(?)이 생각이 난다. 마음의 열이 가라앉지도 않았고 생각도 많았던 20대 시절 술 먹고 헤어지는 길에 나를 불러 세운 적이 있다. 


"야! 인생 ㅈ도 아냐!"


그땐 공손하게 인사하고 돌아가는 나한테 웬 막말인가 싶었는데 지금에 와서 돌아보니 경직되게 살아가는 나에게 인생 별거 없으니 힘 빼고 살라는 말을 한 건 아닌가 싶다. 


그래, 인생은 별 게 없고 시간은 흐르며 무엇이 되든 언젠가 우리는 무언가는 되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말은 이제 내 좌우명이 될지도 모르겠다. 조금 경박할지도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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