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포트라이트: 이토록 성숙한 차가움

전전두엽이 살아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by 콩작가

총 다섯 번은 넘게 이 영화를 본 것 같다. 영화 스포트라이트(감독: 토마스 맥카시, 2016) 이야기다. 연차를 낸 오늘 약속 시간까지 애매하게 시간이 남았다. 드라마를 보긴 그렇고 딱 영화 한 편 보면 제격이다. 넷플릭스에서 이런저런 신작 영화 목록을 보다가 또다시 스포트라이트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또 똑같은 부분에서 몰입하며 감탄하고, 기가 막히게 잘 만든 영화에 무릎을 탁 친다.


** 아래부터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직장인들이여 들어라.
자율권을 준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영화 스포트라이트는 보스턴글로브지의 ‘스포트라이트’라는 탐사 취재 팀의 이야기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보스턴은 미국에서 보수적인 지역으로 가톨릭 교회를 중심으로 커뮤니티가 형성되어 있다. 보스턴 사람들은 대다수 어렸을 때부터 모태 신앙으로 가톨릭을 받아들이며 성장한다.


그런 보스턴의 대표적인 신문은 보스턴글로브 지다. 영화의 시작은 이 보스턴글로브 신문사에 새로운 편집장인 마티 배런이 오면서부터다. 마티 배런은 외지인인 동시에 유대인이다. 지역도 종교도 다른 새로운 인물이 편집장으로 오면서, 다른 기자들이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영화가 시작된다.


보스턴글로브지에서 하는 첫 미팅에 배런은 신문에 아주 짧게 언급된 칼럼 이야기를 하며 후속 기사가 없냐고 묻는다. 기자들은 칼럼인데 있을 리 없는 후속 기사에 의문을 품는다. 언급된 사건은 게오건 신부의 성추행 사건이다. 배런은 이 사건이 한 번도 아니고 지속적으로 일어난 점, 15년 전에 추기경이 알고도 묵과한 점, 추기경이 알고 있던 걸 입증할 문서가 있다는데 신문사에서 이 이야기를 다루고 알아낸 건 6개월 간 2건의 스토리뿐이라고 말한다. 그는 독자가 알아야 할 스토리라고 전하며, 최소한 그 문서라도 확인하라고 지시한다.


그리고 스포트라이트 탐사 취재 팀에 가톨릭 교회의 성추행 은폐에 관한 이야기를 더 취재해 보라고 요청한다. 스포트라이트 팀장은 이 건을 취재한다는 것은 교회를 대상으로 소송을 거는 것과 마찬가지며 경영진은 싫어할 거라고 우려한다.


배런은 지시를 내려놓고 경영진을 찾아간다.


사장: 무슨 일로 왔나?

배런: 게오건 사건 보호 명령에 이의를 제기할까 합니다.

사장: 가톨릭교회에 소송을 거는 건가?

배런: 명령 취소만 신청하는 거지만.. 그렇습니다.

사장: 그 정도로 중요한 일인가?

배런: 그렇습니다.

사장: 교회의 반발이 심할 게 뻔한데 우리 구독자의 53%가 가톨릭 신자라 걸리는군.

배런: 그분들도 관심을 가질 겁니다.

사장: 좋아.


일단 나는 여기서부터 벙찌기 시작한다. 이토록 쿨내 진동하는 오케이 사인이라니. 보스턴 지역 주민의 대다수가 가톨릭 신자고, 보스턴 글로브지의 독자의 53%는 가톨릭 신자다. 경영자도 그걸 알고 우려를 표한다. 그런데 편집장이 중요한 건이란다. 그럼 오케이. 이게 대화의 끝이다. 사장은 여기에 대해 다시 이야기도 꺼내지 않고 배런은 사장실을 떠난다.


직장인들이여 들어라. 이것이 바로 자율권이란 거다. 권한을 줬으면 이 정도는 믿어줘야 신뢰라 할 수 있다. 편집권 보장이라는 것, 편집국의 독립성 보장이라는 것을 구구절절 기자 정신을 들여가며, 언론의 자유와 역사에 대해 들먹이지 않아도 된다. 이 정도 하면 그것이 무엇인지 세 살 어린아이도 아는 법이다. 편집권 보장이라는 것을 아주 단순 명쾌한 행동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관행과 정책.
개인의 문제보다 시스템의 문제다.


이제 스포트라이트 팀은 본격적인 탐사 취재에 들어간다. 교회를 변론하는 변호사도 만나고 피해자를 변호하는 변호사도 만난다. 피해 아동을 변호하는 변호사는 처음에는 굉장히 방어적으로 취재 기자를 대한다. 피해자에게는 엄청난 상처를 남긴 사건임에도 언론과 사회는 항상 차갑게 대했기 때문이다.


피해자들을 만나고 사건을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사건이 굉장히 심각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가톨릭 교회에서 아동성추행 사건은 게오건 신부만이 아니었다. 취재의 범위를 넓히고 넓혀 가다 보니 50여 명의 신부가 이런 건에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가톨릭 교회의 전체 신부의 6%가 미성년자와 성행위를 한다고 보고 있다는 연구를 한 사람과 통화를 한다. 보스턴의 전체에 신부가 1,500명이 있다고 가정하면 90명이나 된다는 소리다. 스포트라이트 팀은 생각했던 것보다 심각한 상황에 할 말을 잃는다.


이 과정에서 스포트라이트 팀은 50명의 아동성애자 신부가 있다는 사실과 피해 사실만 가지고도 기사를 내자고 편집장 마티 배런에게 이야기한다. 단호하게 안된다고 말하는 배런.


배런: 포터를 보도했을 때처럼 설전이 벌어지겠죠. 그럼 잡음만 커지고 하나도 바뀌지 않아요. 신부 개개인이 아니라 교회에 집중해야 합니다. 관행과 정책. 교회가 혐의를 피하려고 법을 악용한 정황, 교회가 문제 신부들을 계속해서 다른 교구로 전출 보낸 상황, 상부에서 체계적으로 은폐한 정황을 찾으라는 겁니다. 교회란 체계를 파헤치자는 거죠.


배런은 안다. 개인에 초점화 될수록 가십으로 끝날 것이라는 것을. 언론이면서 언론과 대중의 관심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장면이다. 개인의 잘못으로 비치면, 일회성으로 끝난다. 문제는 시스템이다. 이렇게 오랫동안 장기간 문제가 은폐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다루지 않으면 안 된다. 관행과 정책,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고, 어떤 체계가 이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야 건강한 문제제기가 가능하다.


하.. 이토록 차갑고 뜨거운 이성이라니. 이성적이라는 것은, 냉혈안의 자세가 아니다. 문제의 핵심을 철저히 파헤치는 것. 무엇이 중요한지를 아는 것이다.


우린 어둠 속에서 넘어지며 살아가요.


문제가 확대되고 90여 명 정도의 가톨릭 신부가 연계되어 있을 것이라 추정하며 스포트라이트 팀은 교회 시스템에도 주목한다. 취재는 심화되고 911 같은 사태로 취재가 지연도 되지만 결국 모든 사건을 파헤치며 기사화를 하게 된다. 대망의 기사 발행을 목전에 두고 팀은 모여 이야기한다.


모든 걸 파헤쳐 보니 모든 사람들이 한 통 속처럼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도 모른 척했고, 제대로 관심도 없었다. 잘잘못을 따지고 있는데 팀장이 말한다. 우리도 잘한 거 하나도 없다고. 이 사건이 한두 번도 아니었고, 변호사는 심지어 보스턴글로브 스포트라이트 팀에 예전에 제보까지 했다. 그 사건에 관심을 가지지 않고 쓰레기통에 처박은건 자신도 마찬가지다. 이런 대화 속에서 배런이 말한다.


배런: 한마디해도 될까요? 가끔 쉽게 잊지만.. 우린 어둠 속에서 넘어지며 살아가요. 갑자기 불을 켜면 탓할 것들이 너무 많이 보이죠. 제가 오기 전은 모르겠지만 모두 좋은 보도를 하고 계세요. 독자들에게 즉각적이고 큰 영향을 주는 보도. 제게 이런 기사가 이 일을 하는 이유죠. 아마로 추기경과 가톨릭 상회에서 반발이 거셀 겁니다. 그러니 필요하시면 한숨 돌리세요. 하지만 월요일 아침엔 돌아와서 집중하고 각오를 다져주세요.


이 대사가 나는 영화의 모든 것을 말해준다고 생각한다. 문제를 파헤치고 알리지만 그것이 단순히 누군가를 탓하는 것으로 끝나버리면 안 된다. 사실 우리는 어둠 속에서 넘어지며 살아간다. 많은 것들이 보이지 않을 때는 무엇이 잘못인지 조차도 모른다. 그리고 불이 켜져 모든 진상이 드러났을 때 너무 많은 것들이 보인다.


하지만 그럴 때 잠시 멈춰야 한다. 지금에서라도 내가 이 일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찾고 그것에 집중하는 것. 그것이 모든 불이 켜졌을 때 우리가 성숙하게 그 문제를 대하는 자세일지도 모른다.


심각한 사건을 다루면서 스포트라이트 영화에는 신파가 없다. 모든 등장인물들이 전전두엽을 환하게 밝힌 채 자신의 자리에서 가장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대화와 결정을 이어간다. 글의 진실성 보다도, 사건의 진실 보다도 조회수가 우선인 세상이다. 미디어도 인플루언서도 조금 더 자극적인 소재로 인기를 끌기 위해 혈안인 시대. 혐오와 갈라 치기가 언어가 된 세상에서 영화 스포트라이트는 묻는다. 혼란스러운 정보의 폭풍 속에서 우리의 이성은 어떤 식으로 성숙하게 쓰일 수 있을지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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