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곤한 밤에 쓰는 꿍얼대는 이야기들
내가 요새 읽고 또 읽고 있는 글이 있다. 바로 내 글이다. ㅎㅎ 갑자기 자기애 뿜뿜인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변명을 담아 글을 써본다.
최근에 몇 명의 지인들에게 이런 질문을 받았다. 어떻게 그렇게 글을 자주 쓰냐고. 소재를 참 잘 찾는 것 같다고. 그럴 때 내 대답은 ‘그냥 써서 그래’다. 정말 써보고 싶은 것들이 있을 때 주제를 정해서 기획안처럼 나열해 보기도 하지만 그냥 구시렁거리는 글들은 딱히 주제를 정하지 않는다.
그날 하루 생각한 것들 중에 내가 입 밖으로 탁 하고 꺼내서 표현하고 싶은 것들을 찾는다. 그리고 브런치 앱을 열면 그냥 손이 쓴다. 나의 마음에서 설익은 것들이 나올 때도 있고 어떨 때는 아주 오래 익혀 왔던 생각들이 나올 때도 있다.
그 무엇이든 내 안에서 나가기를 준비하는 말들인 것이다. 글이 되어 나오기 전에 그것은 어떤 느낌이었고, 감정이었고, 정서였다. 구체화되지 않은 상념들과 기억들이 언어와 조화를 이루고 글로 표현되어 나갈 때 나는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구체화되지 않았던 마음들이 객관화가 되고 나 또한 몰랐던 나의 마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글로 쓰인 나는 평소보다 좋은 사람이다. 좀 더 정제되고 깊다.
그래서 그런지 지인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내 글은 평소에 시답잖은 이야기로 웃고 떠들던 나와 좀 다르게 느껴진다고 했다. 나도 그런 면이 무엇인지 알 것 같다.
최근 1-2년 사이에 나는 내가 평소에 들어보지 못했던 나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말들을 타인에게서 듣는데 그것은 ‘깊어 보인다’라는 것이다. 예전에는 이런 평가가 내가 가진 이중성으로 느꼈는데 지금은 아니다.
나는 원래 깊은 사람이다. 원래 감정기복이 많은 나는 정서적으로 예민한 사람이다. 삶을 살아가는 많은 것들을 깊이 있게 느끼고 숙고하고 살아가는 것은 본래의 모습이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누군가와 하지는 않았다.
20-30대에는 의식적으로 하지 않았다. 그 누가 나의 내면의 이야기를, 거기다 깊은 곳에 숨겨진 마음 따위를 알고 싶어 하겠나. 그것은 실례라고 생각했다. 타인은 나의 모든 면을 알고 싶어 하지 않고, 모를 권리를 지닌다. 그들에게는 그들의 삶이 있고 누구나 타인과 일정 거리를 두고 싶어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나 또한 모든 것을 드러내야 할 이유도 없다고 여겼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선은 나의 감정기복은 단점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사회생활을 하기에 감수성이 예민하다고 느꼈던 나의 내면은 있는 그대로로 보아주니 삶을 깊게 느끼고 살 수 있게 돕는 나의 성향이며 특성이었다.
지금의 나는 어떤 자리에서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있으려고 한다. 가면을 쓰는 것을 멈추었고 척하는 것을 멈췄다. 불안과 동요와 슬픔과 어떤 꿈들이 나의 내면에 오고 가면 나는 그것 그대로 함께 느끼고 있어 주며, 존재한다. 생각의 통제를 해제시키고 마음이 흘러가는 대로 둔다.
이것은 인간관계의 어떤 화학작용을 가져왔는데, 그것은 내가 누군가에게는 하는 말들을 누군가에게는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명상과 요가, 삶의 철학에 대해 깊이 있게 말을 하면서도 누군가에게는 소재로 꺼내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 그대로 참 좋다. 나는 직장에서 사귄 사람들과는 좀 더 일상적인 이야기를 많이 한다. 그것은 이들과는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즐겁기 때문이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면서 때로는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면서, 때로는 웃기는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면서 재미있게 지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가나 동호회에서 만난 사람들과는 더 철학적이고 인문학적인 이야기를 한다. 이것은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정서적 파동에 대한 이야기일 뿐 관계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나는 이제 이해한다. 예전에는 나를 이해하는 사람들이 따로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무리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도 버렸다.
그냥 이것은 이것대로 저것은 저것대로 좋다. 때로 어떤 사람은 첫 만남에 깊이 있는 나의 내면이 드러나는 사람이 있고 또 어떤 이는 항상 나의 가장 재미있고 밝고 쾌활한 면만 자극하는 이가 있다. 이것은 가식이 아니다. 단지 그 사람과의 연결 작용에 대한 것일 뿐이다. 만나는 모든 사람이 나의 다른 모습을 꺼내준다. 그리고 나는 매번 낯설고 또 익숙한 나를 만나는 것이다.
이런 있는 그대로의 나의 느낌이 글로 표현되어 나올 때, 나는 내가 참 좋다. 글을 쓰는 내가 좋다. 또 글로 표현된 내가 좋다. 나의 글은 내 내면의 해석서 같아서 쉽고, 읽어도 읽어도 새롭기만 하다.
한 가지 더 작은 바람이 있다면 누군가 내 글을 읽고 작디작은 삶의 진실 한 톨이라도 발견할 수 있으면 좋겠다. 나는 그런 바람을 담아 언제나 소소한 이야기를 찾는다. 소소하게 스스로를 사랑하는 이야기, 소소한 일상에서 감사함을 찾는 이야기, 소소한 일상에서 상처를 안아주는 이야기들을. 쉽게 말하는 성공, 실패의 이야기 보다도, 당연하고 진부한 자본주의의 논리보다도, 혹시나 잊히고 있을지도 모를 삶의 이면을 잠시나마 떠올릴 수 있는 글들을 쓰고 싶다. 부디, 그 바람이 글에 담기기를.
이것이 아무 이야기나 구시렁거리면서도 내 마음 깊디깊은 곳에 숨겨둔 나의 작고 소중한, 글을 쓰는 의도다.
2023년 5월 피곤해서 눈이 감기는데 글을 쓰는 저녁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