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배달부 키키와 영웅의 여정 02
하루아침에 모든 일이 멈출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던 일을 다시 또 하고 또 하는 것
우르술라: 마법 하고 그림은 비슷하네. 나도 안 그려질 때가 종종 있어.
키키: 정말요? 그럴 땐 어떻게 해요? 사실 전에는 아무 생각을 안 해도 날았는데 어떻게 해야 날았는지 지금은 전혀 모르겠어요.
우르술라: 그럴 때는 미친 듯이 그릴 수밖에 없어. 계속 그리고 또 그려야지!
키키: 그래도 날 수 없으면 어떡하죠?
우르술라: 그리는 걸 포기해. 산책이나 경치 구경, 낮잠을 자거나 아무것도 하지 마. 그러다가 갑자기 그림이 그리고 싶어 지지.
키키: 정말이에요?
우르술라: 물론이야.
잘해왔던 일들이 하루아침에 할 수 없게 되는 날이 있다. 아무 생각을 안 해도 했던 일들이 어느 날 갑자기 시작하기조차 어려워지는 순간. 감독은 우르술라의 입을 통해 키키에게 조언을 해주고 있는 듯하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경험한 모든 일이 멈춰 버린 순간에 대해 13살 소녀에게 조언을 해주듯.
그림도 마법과 같다고. 사랑하고 좋아하던 일들이, 숨 쉬듯 자연스럽게 해 왔던 일들이 어느 날 아무것도 되지 않을 때가 있다고 말이다. 그럴 때는 그저 다시 그리고 그리는 것뿐 방법이 없었다고. 멈추지 않고 해 왔던 일들을 다시 꾸준히 하는 것만이 슬럼프를 극복할 수 있었다고.
키키는 다시 묻는다. 그것마저 안될 때 자신은 어떻게 해야 하냐고. 그럴 때는 잠시 멈추는 것이 답이라고 상냥하게 조언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산책이나 하고 낮잠을 자라고. 그러면 마법같이 그림이 그리고 싶어지는 순간이 찾아올 것이라고.
한 순간 마법이 멈춰버린 키키에게 숲 속 오두막집에 살면서 그림을 그리는 우르술라가 하는 조언이다. 세상의 모든 창작자, 혹은 자신의 일을 지치지 않고 꾸준히 해야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전하는 감독의 메시지다.
지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잘하는 것도, 얼마큼 성과를 내냐 하는 것보다도 지치지 않고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꾸준히 해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사람들만이 겪을 수 있는 것이 슬럼프일 테다.
인생에는 기복이 있기 마련이다. 예전에 JTBC <방구석 1열>에 김희애 배우가 나온 적이 있다. 그때 질문이 어떻게 슬럼프를 극복했냐고 묻자 김희애 배우가 말했다. ‘“왜 없었겠나. 다 있지만 그게 슬럼프라는 생각이 안 든다. 연애도 1년 다르고, 10년 다르지 않나. 계속 심장이 뛸 수 없듯이, 나도 한 명의 인간으로 세월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흐름이 있는 거다. 그 모든 게 하나의 과정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냥 그런가 보다 생각하면서 지낸 거다”라고 답한다.
기복은 과정의 일부다. 그 일부를 신화처럼 거대하게 키울 필요가 없다. 그렇기에 우르술라는 아니, 감독은 다시 그리고 또 그리는 것이다. 어차피 대단하게 여길만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에는 그것마저 안될 때도 있다. 그럴 때는 그 과정을 받아들이고 잠시 멈추고 일상을 사는 것이다. 그러면 기적처럼 그 일이 하고 싶어지는 순간이 온다.
진정한 힘은
자신의 내면에 있다.
우르술라와 하룻밤을 보내고 키키는 예전에 손녀딸을 위한 파이 배달을 의뢰했던 할머니를 찾는다. 할머니는 키키를 위해 직접 케이크를 구워서 선물한다. 키키는 할머니의 다정함과 친절함에 눈물을 보인다. 그 순간, 비행선이 떠오르고 사고가 일어난다.
톰보가 비행선에 매달려 위험해지고 TV로 사고 장면을 보고 있던 키키는 친구를 구하기 위해 달려 나간다. 톰보를 구하기 위해 키키는 뛰고, 친구를 위해 날아야 할 때다. 이 일은 오로지 키키만이 할 수 있다.
키키는 부러진 빗자루 대신 길거리에서 있는 아저씨에게서 청소솔(?)을 하나 뺏어 든다. 키키는 자신을 믿고 친구를 구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날기 위해 노력하고 청소솔은 키키의 새로운 빗자루가 되어 날아오른다.
마녀의 힘은 날 수 있는 빗자루가 아니다. 다 부러진 빗자루를 보고 시무룩했지만 진짜 힘은 키키의 내면 안에 있었다. 자신을 믿어 주는 순간,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을 찾는 순간, 소중한 친구를 위해 용기를 내는 순간 마법은 돌아오고 톰보를 구한다. 마법이 돌아오자 오랜 친구였던 지지 또한 곁으로 돌아온다.
다시 나 자신이 되는 순간 우리는 집으로 돌아온다. 모든 것이 제 자리로, 있어야 할 것들이 있을 곳으로 돌아온다.
아이는 순수의 세계가 깨지고, 지치고, 실망하고, 좌절하고, 아픔을 다시 극복하고 난 후에야 진정한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된다. 그리고 그때 다시 제 자리로 돌아온다. 키키가 다른 누군가가 되는 것도 아니고, 예전과 달라진 것도 아니다. 원래 가지고 있던 모습 그대로로 돌아온다. 더 깊은 이해를 가지고. 진짜 자신을 찾는 것, 자신에 대한 앎의 깊이를 넓혀 가는 것, 그때에서야 자신의 힘이, 마법이 발휘된다.
한 아이의 성장에는
좋은 어른들이 함께한다.
키키의 성장에는 좋은 어른들이 함께한다. 그리고 좋은 어른의 조건이란 이런 것이다. 힘이 필요할 때 힘이 되어 주지만 아이라는 이유로 함부로 도와주지 않는 것.
처음 빵집 아주머니와 만나고 그 집에서 살기로 했을 때 아주머니는 깨끗하게 정돈되고 좋은 방을 주지 않는다. 키키는 방을 얻게 되었지만 청소는 스스로 해야 했다. 자신의 방은 자신의 손으로 닦고 꾸며야 했다. 하지만 도움이 필요할 때 전화기를 쓰게 하고 간판을 달아주고 늦게 돌아오면 걱정을 해준다.
파이를 굽던 할머니는 오븐이 안되어 배달을 못하게 되자 사례비를 챙겨서 준다. 키키가 배달을 하기 위해 집을 찾은 노고를 무시하지 않는다. 그리고 키키의 재기 어린 아이디어로 화덕을 쓰고 배달을 무사히 마치지만 그 고생이 고마워 답례로 파이를 구워준다.
우르술라는 처음 키키를 만날 때 키키가 찾던 검은색 고양이 인형의 목이 떨어져 솜이 다 나오자 자신이 꿰매주겠다고 한다. 그리고 그 일을 하는 동안 키키는 방을 청소한다. 처음에 이 장면에서 나는 어색함을 느꼈다. 아이에게 도움을 주면서 대가를 요구한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체 영화에서 나오는 그 어떤 어른도 키키를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만 보지도 않고, 무시해야 할 존재로도 보지 않았다.
정당한 노동에 대해 대가를 주고, 도움이 필요할 때 상냥한 도움을, 하지만 전혀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도움을 준다. 모든 어른은 존중의 태도로 키키의 성장을 돕는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했던가. 어쩌면 이 말은 수많은 어른과 친구, 부모, 다양한 관계들이 아이를 키운다는 말일지도 모른다. 한 아이의 성장에는 이토록 많은 ‘좋은 어른‘이 필요하다.
키키가 하는 모든 일이 어설프다고 타박하는 어른도 없고, 키키를 한 없이 보호의 대상으로만 보지도 않지만 동시에 다정한 그런 어른이. 좋은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함부로 아이에게 월권을 행사하지 말 것, 완벽하지 않더라도 홀로 서기를 위해 하는 모든 노력에 존중을 표할 것, 아이가 하는 모든 일을 당연하거나 값어치 없는 일이라고 여기지 말 것과 같은 규칙이 따른다.
아이들에게 나는 좋은 어른인지 되돌아보게 되는 하루다. 그리고 검은 고양이 지지가 너무 귀엽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