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하지 않았는데, 말 문이 막히다니요.

: 지가 베르토프 <카메라를 든 사나이>를 보고

by 오렌지필름


1929년 만들어진 실험적인 다큐멘터리 지가 베르토프의 <카메라를 든 사나이>는 극장에서 카메라를 든 사나이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해 눈을 담은 카메라를 보여주며 끝이 난다. 본 영화 리뷰 역시 작품의 제목이며, 동시에 시작이기도 한 카메라를 든 사나이에서 출발해, Kino-eye(키노아이), 영화의 눈으로 글을 마무리 하고자 한다.


시작. 당신의 시선은 어디에 있나요?


제목을 그대로 직역한 바와 같이 카메라를 든 사나이는 이 영화 안에서 촬영 감독으로 존재한다. (실제로 이 영화 안에서 나오는 카메라를 든 사나이는 촬영기사인 미하일 카우프만 이라고 알려져 있다.) 관객은 영화에서 그가 실제로 어떻게 이 작품 안에서 촬영을 했는지를 볼 수 있다. 영화에서는 카메라를 든 사나이가 담은 장면, 그리고 그를 담은 장면이 이어진다. 이를 테면 달리는 자동차 안에 타고 있는 여인과 학생들을 담은 장면을 보여준 이후, 그 옆에 동일한 차에서 카메라를 설치하고 달리는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을 교차 편집으로 보여주는 것과 같이 말이다. 영화의 시작부터 반으로 쪼개진 화면으로 남다른 출발을 알렸듯, 이 영화는 일반 서사 영화와는 달리 연기하는 주인공도 없고, 세트도 없고, 대사도 없는 영화이다. 대사가 한 마디가 없어도 늘어지지 않고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을 정확하게 보여주는 이 영화는 카메라를 든 사나이가 어딘가를 향하면서 이야기가 시작 될 것을 관객에게 알려준다.


중간. 당신의 일상을 담아 봤어요.


본격적으로 영화에서는 카메라를 들고 도시 곳곳을 담은 모습을 보여준다. 기존 영화들이 일반 적인 서사 형식을 따라서 일상을 그대로 담았다면, 이 영화는 일상의 모습을 보여주되 몽타주 기법을 활용해 우리에게 일상을 다르게 보여주었다. 분류를 하자면 풍경은 모양이 비슷한 것을 이어 붙여서 만들었고, 인물이 나오는 일상은 닮은 듯 전혀 다른 모습을 붙여서 만들었다.

우선 풍경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동그라미(굴러가는 장면들) 그리고 네모(창문, 엘리베이터의 장면들)의 형태의 일상을 모아서 보여준다. 이를테면 달리는 기차의 바퀴를 클로즈업 해서 보여주고, 원의 형태를 띤 운동장을 달리는 차 모습을 교차로 보여주는 것과 같은 장면이 있다. 이 영화 전체에서 배경으로 깔리는 음악도 숏의 길이 못지 않게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숏의 길이가 점점 짧아지고 반복된 화면이 많아질수록 음악도 느린템포에서 더 빠른템포로 변하면서 영화의 리듬감과 긴장을 가져간다. 인물을 담은 장면들에서는 일하는 여성-꾸미는 여성을 보여주기도 하고 머리 감기-빨래 감기, 수염 다듬기-칼 다듬기처럼 다르지만 비슷한 일상의 모습을 반복과 교차로 보여준다. 특히 결혼-이혼, 출산-죽음과 함께 엘리베이터의 수직-하강, 거리를 오고-가며 걷는 모습을 담은 장면을 교차로 보여주면서 우리의 오고-가는 일상도 결혼과 죽음만큼 중요한 것이라는 것을 아무런 대사 없이 다르게 보여준 점이 인상적이었다.


끝. 당신도 다르게 볼 수 있어요.


영화가 거의 끝이 날 때쯤 사람의 눈이 아닌 카메라의 눈을 통해서 다른 세상 보기가 가능하다는가치관, ‘kino-eye(키노아이)’에 대해 보다 정확하게 보여주며 영화는 끝이 난다. 감독은 카메라가 가진 기술이 인간의 시선과는 다르기 때문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인데 이를 테면, 말에 타고 있는 모습, 바다에 뛰어드는 모습을 고속촬영을 통해서 연속된 촬영 장면을 슬로우 모션의 형태를 통해 보여 준다 던지, 장면들을 보여주다가 갑자기 화면에 인물들이 나타나는 장면과 같은 이중인화의 카메라 기술들을 이어서 보여준다. 특히 카메라가 스스로 설치가 되고 롤을 감고 촬영을 하고 가방으로 들어가는 장면을 에니메이션과 같은 형식으로 보여주며 카메라는 인간이 있어야만 하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움직이는 능동적인 존재라는 것을 은유로 보여줌과 동시에 이만큼 카메라의 기술이 발전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모든 장면들을 교차 편집 해서 처음에 나온 풍경, 기차, 사람들을 등을 빠른 템포로 이어서 보여주다가 다시 극장의 장면을 보여준다. 그리고 마지막에 카메라 렌즈에 겹친 인간의 눈을 보여주고 카메라 렌즈가 닫힐 때 영화는 끝이 난다. 형식상에서 전혀 다른 작법으로 접근한 이 영화가 끝나는 동시에 말문이 막혔다. 그리고 중요한 것을 말할 때 굳이 말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 역설 역시 감독이 의도한 바가 아니었을까? 하는 감탄과 함께 이 글을 마무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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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를 든 사나이 (1929)

다큐멘터리, 68분

감독 : 지가 베르토프


어깨에 카메라를 짊어지고 도시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의 일상생활과 다양한 도시의 모습을 촬영하는 카메라맨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이다.

베르토프는 이 영화를 '자막·시나리오·세트·배우의 도움 없이 시각적 현상을 전달하는 실험'이라고 불렀다. 그는 이 영화에서 구성주의와 몽타주 편집기법을 결합시켜 사물을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한편 혁명 이후 민중들의 삶을 활기차고 낙관적으로 묘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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