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 자무시 그리고 <커피와 담배>
"영화가 ‘육체적인 삶이란 우리가 매일 행하는 바로 이 여행’이라는 표면적으로 무척 단순한 이야기, 단순한 은유를 담고 있다는 사실에 무척 만족해 하고 있어요."
부끄럽지만 잔잔한 정서의 영화를 보면 잠이 왔었다. 당시에는 매번 블록버스터만 한창 보던 중이라서 더 그랬던 것 같다. 씨네 큐브 가서 매번 졸고, 또 졸고, 학교 선배들이 재밌고 작품성 있다고 하는 그 작품 나도 보고 이해하고 싶은데 어떻게 나는 매번 자는 거지? 광화문에서 집으로 가는 지하철에서 자책하던 날들이 마구 스쳐간다.
짐 자무시 작품 역시 나에게 그랬다. 그러다 정말 아주 우연히 학교 도서관에서 짐 자무시 인터뷰집을 보았다.
'어려운 영화 이론 서적을 읽다가 집중 안될 때 읽어야지.' 하고는 빌렸는데, 역시나 제일 열심히 읽었다.
책은 짐 자무시의 14번의 인터뷰를 시간 순으로 묶어서 정리한 구성이었고, 짐 자무시는 다른 방식으로 영화를 만드는 대표적인 감독이기에 작품을 만들 때마다 중복이 되는 질문들을 받았던 것 같다. 짐 자무시는 그에 대해 늘 같은 대답을 했고, 책을 다 읽고 나니 짐 자무시랑 대화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의 영화를 찾아서 보게 됐다.
오늘은 '커피와 담배'라는 주제로 총 11편의 단편을 이어서 만든 <커피와 담배>를 보았다. 첫 장면부터 보는 내내 캡처하고 싶은, 소위 말해 소장하고 싶은 이미지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그건 왜인지 계속 질문하고 또 생각해보았다. 그러니까, 나는 짐 자무시의 영화를 왜 컷 단위로 소장을 하고 싶었던 걸까?
이에 대한 글을 쓰기 위해서 혹시나 하고 이미지를 찾아봤더니 정말 컷 단위의 이미지가 네이버에 많이 있었다. 사람은 보통 비슷한 걸 느낀다고 믿는 편인데, 아마도 사람들도 대부분 컷 단위로 짐 자무시의 영화를 소장하고, 또 공유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 영화에는 이렇게 아름다운 컷이 있어요.'
오프닝 시퀀스부터 흥미롭다. 오프닝 시퀀스의 구성이 바로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을 함축적으로 가장 잘 설명한다. 오프닝 타이틀 역시 단순한 흑/백의 폰트의 나열이 아니다. Richard Berry의 Louie Louie를 백그라운드 뮤직으로 나오는 사람 모두의 이름이 리듬감 있게 등장한다.
그리고 첫 번째 에피소드가 시작한다. 'Strange to meet you' (만나서 어색합니다.)
카페에서 커피를 먼저 마시고 있던 남자(로베르토)가 다른 한 남자(스티븐)를 만나고, 그를 대신해서 치과로 가는 내용이다. 실소도 터지고 별 것 아닌 듯 보이는 이 이야기는 나머지 에피소드들과 한데 어우러지면서 하나의 무언가로 자리하게 된다. 이처럼 <커피와 담배>는 11편의 에피소드가 모두 '차이와 반복'으로 묘하게 이어져 있고 그래서 이 많은 에피소드 중 어떤 한 부분을 주목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전체로서 바라보게 된다.
<반복>
-커피와 담배(당연하게도)
-인물(묘하게 닮아있다.)
-말실수
-대화
-우주
모든 에피소드에서 인물들의 대사 중간에 부감 쇼트로 커피와 담배를 보여준다. 인물을 잡는 시선에서 우리는 탁자에 놓인 커피나 담배의 변화를 바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커피와 담배는 말할 수 없지만 하나의 인물로 자리한다. 에피소드에 나오는 모든 인물들이 대화를 하면서 약간씩 변했듯, 커피와 담배 역시 변해있다. 똑같이 주문한 커피도 사사로운 우연과 변수에 따라 남아 있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커피는 인물을 설명하는 데에도 효과적으로 활용된다. 특히 극명하게 드러난 에피소드는, 케이트 블란쳇이 1인 2역을 한 에피소드, 'Cousins'. (사촌)이다. 유명한 배우로 보이는 케이트는 큰 잔에 에스프레소 투 샷을 넣어마시고, 그녀의 사촌은 쉘리는 스트레이트의 에스프레소를 마신다. 다음에 중요한 인터뷰가 있는 케이트는 강렬한 에스프레소를 큰 그릇에 담아 흘리지 않게, 안전하게 마시고 지금이 전부인 쉘리는 그대로 마시는 것이다. 둘은 같은 인물이 연기한 만큼 얼굴이 닮아 있지만, 인생은 너무도 다르다. 재밌으면서도 씁쓸한 에피소드, 닮은 얼굴을 가진 가족이라는 미묘한 사이가 주는 공통점과 차이점. 차이와 반복.
인물 자신이 가진 커피의 취향이 온전히 드러나면서 동시에 가장 오래 기억되는 인물은 르네였다. 이건 아주 영리하게 배치한 차이였다. 대부분 2명 이상의 인물이 나와서 대화를 주고받지만 르네 프렌치는 거의 대부분 혼자 에피소드를 이끌어 간다. 르네라는 인물을 사랑하는 시선이 담긴 에피소드. 에피소드 제목 역시 <르네>이다. 그녀는 자신이 좋아하는 커피의 온도와 밀도가 있다. 우리는 그녀가 아닌 이상 알 수 없다. 혼자만 겨우 아는 그 미세한 온도와 밀도차라는 게 우리 모두에게도 존재하지 않나. 짐 자무시는 커피의 맛이라는, 우리는 절대 알 수 없는 그녀만의 세계를 영화에서 주고 있다.
11개의 에피소드에서 르네처럼 인물이 아닌 다른 변주도 나타난다. 바로 커피가 존재하지 않는 에피소드이다.
Cousins? (사촌이라고?) 되묻는 에피소드인데, 유일하게 홍차를 마신다. 그리고 둘은 비슷한 부분이 없이 전혀 다른 얼굴을 가진 인물들이기도 하다.
2명 이상의 인물이 대화로 이끌어 가는 에피소드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대화'역시 굉장히 중요하다. 묘하게 여기서 대화가 문어체로, 마치 영어를 갓 학습한 인물들이 대사를 읊는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시가 언어의 형식을 띄고 있지만 언어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서 자꾸 사고를 정지하는 것처럼, 대사들이 묘하게 돌고 돌아서 인물들을 감싸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커피와 담배>에서 설명하는 지구와 공명이라는 개념을 빌려와 설명하자면, 인물이라는 행성들의 관계에 따라 언어라는 에너지가 다르게 회전하고 있었다고 해야 하나.
"가장 단순한 것들이 가장 소중하게 느껴지죠. 예를 들어 대화라든가, 누군가와의 산책, 또는 구름 한 점이 지나가는 방식, 나무 이파리들에 떨어지는 빛, 또는 누군가와 함께 담배를 피우는 일. 이러한 것들이 온갖 유식한 잡동사니 헛소리들 보다 훨씬 더 가치가 있어요. 하지만 여전히 몇몇 작고 아름다운 것들이 우리 주변에 존재해요."
글의 처음에서 짐 자무시 인터뷰집을 다 읽고 대화를 나누고 싶다고 한 지점이 바로 이 대답이었다.
그리고 이 대답으로 이 글을 마치려고 한다. 곧 개봉할 다음 작품도 어서 보고 싶다.
너무 멋있다. 어떻게 이름도 짐 자무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