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이형 소설 <작은마음동호회>를 읽고
*북클럽문학동네를 통해 신청한 북클럽 회원과 먼저 읽는 모니터링, <작은마음동호회> 리뷰입니다.
*띄어쓰기 없이 <작은마음동호회>로 적힌 책의 표기를 그대로 따랐습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오늘 학교로 오는 길에 뜬금없이 아이유의 스물셋을 듣고 싶어서 찾아들었다.
나의 스물셋은 어땠더라. 그리고 차에서 내리면서 차 안에 있던 여러 책 중에서 윤이형 소설가의 <작은마음동호회>를 집었다. 꼭 오늘 같은 분위기에서 읽고 싶었던 책. 스물셋을 듣고도 마음이 밝아지지 않고 도리어 차분해진 나는 책상에 앉아서 순서대로 <작은마음동호회>를 읽기 시작했다.
여러 개의 단편 소설 중 <마흔셋>을 읽고 과하게 많이 울었다. 너무 피곤해서 앉아있기도 힘든 아침 10시에 이렇게 많이 울어버리다니. 오늘은 새로운 날이 아니라, 어제의 두 번째 쇼트 같다, 어제 2-1. 친한 지인의 부모님의 부고 연락을 받아 어제저녁 늦게 친구랑 장례식에 갔다 왔었다. 거리가 좀 있는 곳이어서 오가는데 꽤 시간이 많이 걸렸다. 무엇보다 갑작스러운 일이라서 많이 놀랐고, 너무 늦은 시간에 가서 또 한 번 더 경황이 없었는데 상주를 보고 되려 침착해져서 나왔다. 어떤 위로의 말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아무 말 없이 친구랑 물만 마시다가 왔다. 오는 길에 자연스럽게 친구랑 엄마에 대해서 이야기도 계속하고.. 그렇게 어제 나의 마음을 살짝 건드린 부분을 <마흔셋>이 무너뜨린 것 같다.
소설은 수영장에서 시작한다. 마흔셋인 주경의 이야기. 주경의 엄마는 얼마 전 암으로 돌아가셨고, 동생 재윤은 ftm (female-to-male) 수술을 마쳤다. 그래서 동생 재윤은 수영장에 가기 꺼려지는 상태인데, 주경 고아가 된 기념으로 동생에게 수영장에 가길 제안한다. 그리고 주경은 변해버린 자신의 몸과 함께 변해버린 동생의 몸을 바라보고 생각에 잠긴다. 내 주변의 사람들은 어디로 간 거지,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거지?
그렇게 주경은 현재의 자신이 되게 만든 대학교 2학년 때의 자신의 기억으로 생각을 옮겨간다. 처음으로 기차를 탔던 기억, 그것도 해외에서 탔었던 그 순간을 떠올린다. 주경은 아버지가 통 크게 선물해준 비행기 티켓으로 혼자 유럽으로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바라게 된다.
"어디에도 머무르거나 닻을 내리지 않고 살고 싶다고 생각한 건 아마 그 짧고 미친, 경제적으로는 아니더라도 문화적으로는 톡톡히 혜택 받은 이십 대 초반의 한 조각이 너무도 달콤해서였던 것 같다. 나는 내가 평생 어느 곳에도 고이지 않기를 바랐다."
아버지의 외환위기는 상관없다는 듯이 친구들과 팬케이크에서 팬케이크로, 음악에서 음악으로, 책에서 책으로 기민하게 새로움을 찾아다녔고 그렇게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를 다니고, 짧은 연애를 하고 헤어지고, 시간강사가 되고, 서른세 살이 되고 친구들은 하나둘씩 결혼을 했고, 자신의 이름으로 된 책을 갖게 되고, 라디오에도 나가고. 슥슥슥 항해하는 자신의 20대 30대의 순간들이 두 글자 앞에서 멈춘다. 엄마.
엄마가 암에 걸렸다. "엄마는 영민하고 선량한 사람이었지만 자식들의 삶을 위해 지나치게 헌신했고, 아버지와 결혼생활을 하는 동안 단호함과 생기와 자존감 대부분을 잃어버렸다." 주경은 엄마를 여러 겹의 감정으로 바라보고 동시에 피하면서 "복숭아씨처럼 단단하고 굳은, 죄책감의 주름이 깊게 새겨진 예감"을 달고 살았던 것이다. 그리고 옆에 있는 동생 재윤이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며 웃으면서 우는 순간을 보면서 다시 생각에 잠긴다.
"오직 자신에게만 들리는 아우성을 속에 품은 채, 진짜와는 다른 모습으로 자신을 보고 듣고 짐작하고 취급하는 세상 속을 계속 걸어가야 하는 괴리감과.
말하고 싶은데 입을 다물어야 하는 수두룩한 순간들과.
그런 고립 상태와.
엄마와 재윤은, 내내 싸워왔던 것이다.
나는 어떤 것과도 그런 식으로 싸워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나는 바로 이지점에서 <마흔셋>이 더 좋아지기 시작했다. 여기서 나오는 인물들은 연민에 빠지지도 않고, 자신의 삶을 살아내고 있다. 엄마도, 재윤도, 그렇게 살아갔고 살아가고 있다. 동시에 거대한 문제를 매일의 삶에서 안고 사는 사람들을 옆에서 바라보는 주경의 시선에 대해서도 밀도 있게 이야기한다.
"그렇게 거대하고 절박한 질문들은 아니어도,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어떤 막막한 심정은 내게도 있었다. 나는 매일 아침부터 밤까지 그것의 조각들이 내 몸속을 작은 반딧불들처럼 날아다니다 새벽이 되어서야 꺼지는 광경을 느리게 지켜보곤 했다."
주경은 수영장에서 동생 재윤의 "마지막 모습을 눈으로 찍고, 가슴속 바탕화면으로 깔아 두고 산다면 자신도 자살하지 않을 것 같다"라고 말한다. 한편으로는 늘 그랬듯 아무것도 없는 배경화면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하며, 엄마에게 속으로 말한다. "안녕, 우리 잘 살게. 걱정하지 말고 훨훨 날아가.. "
이 도시에는 매일매일 속으로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면서 밤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인물 속에 흐르는 잔잔한 그러나 깊은 밤을 마주하게 만드는 윤이형 작가의 문장들이 어제 잊어버린 눈물을 만나게 했다. 그러니까 이 글은, 울고난 후에 쓰는 거니 어제의 3-1 쇼트로 생각해야겠다.
그리고 미처 인사 못한 어제의 밤을 보낼 수 있게 만든 윤이형 작가의 다른 소설도 어서 찾아 읽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