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의 40을 자주 생각합니다.
1.
영화를 좋아하기 시작한 최초의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문학에서 영화로 옮겨진 그 변곡점에 대해서는 명확히 기억하게 됐다. 질문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계속 '그 순간'을 찾아가고, 떠올리게 되었고, 이제는 기계적으로 답하기도 한다. 그러나 질문한 이가 어떻게 받아들이는 가와는 상관없이 나에게는 여전히 그 순간 일어난 무언가는 있었던 것 같다.
수업시간에 정확히 배운 것은 영화가 아니라 '영화에 대해서 쓴 글'이다. 영화에 대해 쓴 글은 영화평론가도 있었지만, 대부분 문학평론가 혹은 소설가들이 쓴 글을 묶은 책이었고, 우리는 과제의 순번이 아니더라도 수업시간마다 영화를 보고 와야 했다. 그리고 한 학기 동안 1번은 영화를 정하고 그에 대한 글을 써야 했다. 이 수업이 시작이었다. 이 수업시간에 신형철 평론가가 올드보이를 쓴 글을 보고, 아. 했던 순간. 이런 글을 쓴 사람은 얼마나 행복할까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바로 '영화를 보고 이와 같은 글을 쓸 수 있구나.' 하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그 글을 만난 순간부터 영화는 나에게 다른 의미가 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 변곡점에서 시간이 쌓여 거의 10년이 되어가는 지금, 학교에서 영상이론을 공부하고 있다. 글이라는 산출물을 내는 일이 꽤 자연스럽고, 정말 원했던 일이다. 하지만 꽤 조심스럽기도 했다. 학부시절 글을 쓰는 것에 대한 어려움을 잘 알고 있었기도 했고, 또 뭔가 전문성을 갖는다는 것의 의미를 알았으니까. 하지만 정말 말 그대로 간절하게 많이 배우고 싶어서 왔다. 그럴 때 학교를 오고 싶었기 때문에, 지금이 그때인 것 같아서 행복하고, 감사하다.
2.
나는 자주 40살을 생각한다. 순간적인 만족을 주는 다양한 체험들을 하기보다는 지난하더라도, 깊어지는 일을 30에 만나 천천히 걸어가고 싶었다.
일상 자체가 좋아하는 것, 더 잘 알고 싶은 것으로 둘러싸여서 괴로움도 좋아하는 것을 잘하지 못해서 오고, 기쁨도 무언가 알게 되는 것에서 오는 사람. 그렇게 내가 좋아하는 것을 매만지고 들여다보면서 시간을 쌓다 보면 나 스스로 보기에 어딘가는 빛나고 있지 않을까 싶었다. 자기다움으로 빛나고 있는 사람들. 나도 그럴 수 있을까. 지금의 시기를 X라고 치자면, 미래의 나의 상태에 따라 지금의 순간들이 달리 해석될 것이다. 이것이 무섭기도 하고 신나기도 하다. 이를 테면 위의 언급한 신형철 평론가의 글이 지금 내가 이 자리에 있지 않다면, 그땐 그랬었는데... 했을 수도 있다는 점이 얼마나 무섭고 신기한 일인가 싶다. 그래서 지금의 나와 시간들을 X라고 치고, 시간을 차곡차곡 열심히 쌓아가야지. 어쩌면 더 치열하게 생각하고 있는 중 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나는 나의 40을 자주 생각하기 때문이다.
3.
그리고 오늘 만난 앤 카슨, 이전의 나라면 그저 넘길 페이지였지만 한동안 들여다보고 좋아서 사진까지 찍었다. 오늘 앤 카슨의 책을 읽을 예정이다!
'X라고 치자면' 이후의 빈칸을, 마무리 되지않은 연약한 문장을, 잘 살아내기를.
그리고 원하던 빛을 담은 얼굴을 어느날 마주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