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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모씨 Jul 12. 2022

6월 15일

구트오피스커피


 어제에서 이어지는 미팅. 시간을 채우기 위해 세 명의 예술인이 카페에서 몸부림을 치고 잇다. 북토크에 대한 어제의 이야기에 다들 분노해주니 나는 그저 고마울 뿐이다.


 곰곰이 생각해보게 되는 문장 중에,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라는 게 있다. 보통, 나의 것을 내가 얘기할 때의 경우라 생각을 하는데, 그렇지 않은 방식으로 이 말을 쓰는 경우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혐오의 논리가 적용되는 경우, 마치 내가 타인을 혐오할 자유가 있다는 얘기를 하듯이 말이다. ‘그렇다면 타인이 너를 혐오할 자유가 있는데 그래도 감수할 것이냐?’라는 말에 ‘물론.’이라고 답하면서.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은 단순히 마음 대 마음의 작용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마음 대 마음에도 기울어진 운동장은 존재한다. 통상적인 사회적 지위를 포함, 서로를 둘러싼 특수성 역시 고려되는 것이 당연하다. 당연하다? 아니다, 당연하지 않으니 서로의 마음을 이해 못 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겠지.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그래서인지 늘 어렵다. 비언어적인 표현을 익혀야 하고, 반언어적 표현도 물론 알아야 하고, 상대에 대한 배경지식도 기억해야 하고, 또 이것저것 알아야 하고 말이다. 뭐가 이리도 복잡하냐고? 사실 상대를 존중하고 이해하려 노력하는 마음만 있다면 된다. 그런데 요즘의 우리는 잘 그러려고 하지 않으니까.


 이렇게 공격적인 말을 적을 수 있고 읽을 수 있는 건, 이 글이 나 혼자 적는 말이고 그렇게 읽혀도 대체로 괜찮기 때문이라 믿는다. 그런 특수성이 존재한다는 건, 꽤나 고마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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