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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진 May 11. 2023

다시 찾은 내 이름, 에세이 출간과정

미진하지 않은 미진


미진이라는 이름의 미진함이 줄곧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늘이 뿌연 날이면 창틀에 앉은 미진(微塵)이 나일지 모른다는 청승맞은 생각에 잠기곤 했다.


시인 이병기는 시 <난초>에서 미진도 가까이하지 않는다고 썼고, 사람들은 누군가를 나무랄  때 ‘그렇게 성적이 미진해서 되겠니. 이번 달 실적이 미진하군요.’라고 말했다.


왜 하필 내가 미진이야!!!


영화 에린 브로크비치를 반복해서 보며 영어를 공부하던 때가 있었다. 주인공 에린 역을 맡은 줄리아 로버츠의 치열한 삶의 모습에 마음이 끌렸다. 황량한 벌판을 배경으로 한 팔로 작은 아이를 안고, 다른 손으로 조금 큰 아이의 손을 잡은 채 당당하게 걷는 그녀를 응원했다. 그녀의 찰진 욕이, 법정에서 판사와 배심원을 향해, 세상을 향해 내뱉은 항변이 시원했다. 에린의 이미지는 내게 그렇게 새겨졌다. 영어유치원 면접 중 원장님이 내게 영어 이름을 물어봤다. 주저 없이 새어 나온 이름이 "에린"이었다.  부족하고 미지근해 보이는 미진보다 나았다.


영어유치원에서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며 나는 말했다.

"Hello, everyone, You can call me Erin."


손에 쥔 것도, 변변한 커리어도 없었다. 강사로 원생이 줄어드는 것에 신경을 곤두세웠고, 늘어나는 것에 안도하며 30~40대를 보냈다.  두 아이를 힘들게 대학에 보내고 나니 40대 후반이 되었다. 마음은 지치고 갈 곳은 병원뿐인 우울한 때였다. 학원을 그만두고  남는 시간에 블로그를 시작했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잘 하는 게 뭐지 고민하던 중 익숙한 영어 콘텐츠를 올리기로 했다. 미드나 영어책에 나오는 주요 영어 표현을 소개했다. 그때 나는 "위드미"였다. 


블로그를 올리는 것도 어려워서 블로그 왕초보반에서 사진 올리는 법, 링크 거는 법을 배웠다. 멤버 중의 한 명이  글쓰기 모임을 만들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손을 번쩍 들었다. 그 시작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글을 왜 쓰는가?,라는 첫 물음에 대한 나의 생각을 쓰고 <쇼코의 미소>를 읽고 감상을 적었다. 여전히 위드미로 글을 썼다.



#내꿈소생 이라는 네이버 카페에서 필사를 하며 사비나 작가님을 만났고 #힐링스페이스 라는 작가 카페에서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를 드러내는 에세이의 벽은 견고했다. 우회의 길, 소설이라는 픽션의 세계에 발을 디뎠다. 소설이 무엇인지, 대설보다 작은 어떤 것인지 나는 몰랐다. 그저 덤볐다. 나에게 용기란, 진정 하늘이 내게 준 로또 1등의 숫자들처럼 찬란했다. 하지만 지독히 가볍고 턱 없이 무모했다. 마포에 있는 신문사 문화센터 소설반에 등록을 했다. 까짓 3개월 무지출을 실현하며 나를 위해 크게 한번 질러보자며 카드를 긁었다.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주부에게 세상 모든 건 왜 이리 비싼지.



과제로 단편소설 몇 편을 완성했다. 벽에 부딪히고 합평 시간마다 철저히 깨졌다. 수업 시간 내내 나의 낡고 지저분한 운동화 코끝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머리를 들 수 없는 실력이었다. 끙끙 앓았다. 코로나가 시작되며 줌으로 수업이 진행됐다. 현장에서 깨지는 것보다는 나을 거라고, 눈앞에서 겪는 창피함은 모면할 수 있을 거라고 안도했다. 



이번에는 구상 중인 소설의 나이에 맞는 청소년 소설반을 신청했다. 자신이 없다는 본심을 숨기고 기본기는 철저히 숙지해야 한다는 변명 같은 이유를 찾았다. 옆에서 가르침을 받아도 못 알아듣고 딴짓을 일삼는데... 그래, 내게는 조력자가 있어야 해.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배우는 데 열을 올렸다. 그곳은 지옥이었다. 적어도 기본반은 마쳤는데 완성한 단편이 몇 개나 있는데 남은 날들이 공포였다.


© darksouls1, 출처 Pixabay


줌 수업은 현장 수업보다 적나라했다. 화면 속 나의 흔들리는 눈동자는 굴욕적으로 잘 보였고 합평을 하는 문우들의 난감해 하는 표정 역시 그 어떤 것으로도 덮이지 않았다. 오프라인이라면 못 봤을 뒷사람 앞사람의 얼굴, 개개인의 감정들이 질 좋은 화면 안에서 또렷이 읽혔다. 개연성, 맥락, 모호함 등이라는 단어가 화살처럼 박혔다. 나의 목소리는 흔들렸고 주책없이 흐를지도 모를 눈물을 안으로 삼켰다.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오는 길, 나는 잘게 부서진 나를 주섬주섬 뭉쳤다. 다독이고 다독여 주머니에 넣었다. 괜찮아, 짜식 소심하긴. 문우들의 조언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네가 결정하는 거야. 약은 원래 쓴 거잖아. 이 정도는 껌이라고. 나는 생물이 되어 꾸물꾸물 흘러나오는 질척한 나를 주머니 속에 여러 번 밀어 넣었다. 그리고 꼭 밀봉했다.



집에 도착하면 쓰러졌다. 천장이 심장 박동을 따라 오르내렸다. 다시 일어나 글을 수정했다. 글이 조금씩 나아졌다. 발견하지 못한 구멍들이 하나둘씩 메워졌다. 쓰고 꺾이고 다시 고치고 하는 과정을 겪으며 작품을 완성했다


 

통장의 잔고처럼, 주식 계좌처럼 글들이 모였다. 글을 쓰고 투고를 함께 하는 #책애글애는 작업에 동력을 더해주었다. 매일 쓴 글을 인증하고 출간 기획서를 쓰고 투고를 하는 일련의 과정이 체계적으로 진행되었다. 철저한 실행력을 갖춘 멤버들이 차례로 투고를 했고 출판사와 계약을 했다.


투고의 과정은 롤러코스터의 맛이었다. 짜릿, 좌절, 급락, 상승 등 매 순간 다른 맛을 봤다.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고 값을 매길 수 없는 경험이었다. 시도했기에, 두드렸기에 볼 수 있는 세계였다.


 

드디어 계약서에 서명을 했다. 나는 부족해서 아쉽기만 했던 내 이름을 꾹꾹 눌러썼다. "미진"이라고. 며칠 후면 미진이라는 이름이 박힌 책 <집이라는 그리운 말>이 세상 밖으로 나온다. 작고 초라해서 자꾸 움츠러들었던 내가 기를 모아 꿈틀했다. 조금 더 일찍 나를 돌보고 사랑해 줄걸. 미안했다. 내가 너를 사랑하지 않으면 누가 너를 사랑해 주겠니. 부족해서 더 잘 살고 싶었던 네 마음을 이제 부끄러워하지 않고 사랑해 주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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