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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진 Apr 17. 2023

집이라는 그리운 말

친애하는 남의 집 

허허벌판에 벽돌을 켜켜이 쌓고 슬라브 지붕을 올렸다. 배수지를 일터로 삼은 가장들이 하나, 둘 모여 자신과 딸린 식구들이 살 집을 지었다. 비바람을 막고 성난 하늘을 가려줄 곳이며, 소반에 둘러앉아 갓 지은 밥을 먹을 곳이고, 모진 바깥세상에 지친 몸을 누일 엄마의 자궁 같은 곳이었다.      


어른들은 이곳을 수도국 관사라고 불렀고 동네 아이들은 펌프장을 들리는 대로 뽐뿌장이라고 말했다. 방 2개, 부엌 1개로 직사각형 집도 기역자집도 일자집도 있었다. 열두 집이 사는 마을에 화장실은 공용으로 군데군데 서너 개가 있었다.     

 

열두 집을 둘러싼 돌담을 타고 올라가면 정화된 물을 보관하고 배수하는 저수조가 두꺼운 철판에 덮혀 있었다. 그 주위로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마리아와 아이들이 도레미송을 불렀음직한 푸른 잔디가 펼쳐졌다. 계절 따라 노랗고 흙빛이었을 너른 들녘이 내 기억 속에서는 사시사철 푸르렀다. 세상은 눈부신 하늘로 반을, 초록 잔디로 반을 꽉 채웠다. 뽐뿌장에 사는 열두 집 아이들은 잔디 위에서 공중제비를 돌고 다방구를 하고 얼음땡을 했다. 단짝 친구 민희와 나는 밤늦도록 차가운 풀밭 위에 누워 금가루를 흩뿌려 놓은 까만 하늘을 올려다보며 끝이 나지 않을 이야기를 나누었다.    

  

뽀얗게 살이 오르고 연약한 뼈가 여물게 해준 곳, 내 추억의 8할은 바로 이곳에서 시작되었다. 지금도 가끔 그날이 떠오른다. 어느 날은 안방 아랫목에 엎드려 연두색 완두콩이 박힌 술빵을 먹으며 만화책 캔디를 읽었고, 어느 날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밖에서 놀다가 아빠의 매가 무서워 '엄마야 나 살려라', 하고 쏜살같이 엄마의 등 뒤로 숨었다.      


엄마는 검은 땟국물이 흐르는 얼굴에 배가 홀쭉해져 집에 들어온 나를 보며 말했다.     


”까마귀가 친구야, 친구야 하겠다. 어여, 씻자.”     


아궁이에서 펄펄 끓는 물을 바가지로 퍼서 부엌 한가운데 놓인 빨간 고무 다라이에 부었다. 엄마가 팔꿈치로 물 온도를 맞추면 나는 옷을 벗고 따뜻한 물속에 들어가 앉았다. 하얗게 모락모락 오르는 김과 다이얼비누의 강한 향에 스르르 눈이 감겼다. 별 5개 달린 고급호텔의 거품목욕 부럽지 않은 목욕이었다. 엄마는 비누칠을 하고 때수건으로 내 몸의 이곳저곳을 공들여 밀며 주문을 외우셨다.     


손을 밀어 주시며 ‘이 손으로 좋은 일 많이 하고, 푹푹 나눠주는 사람이 되어라.’, 발등을 밀어 주시며 ‘넓은 세상 마음껏 돌아다니고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는 사람이 되어라.’, 얼굴을 닦아 주시며, ‘이 눈으로 책 많이 읽고 원 없이 공부해라.’ 말씀하셨다. 주문의 내용은 조금씩 바뀌었지만 대체로 그런 내용이었다. 나는 엄마의 말을 신뢰했고 그렇게 될 줄 믿었다.   

  

온몸이 노곤해진 나는 배춧국 한 그릇을 배불리 먹고 숙제를 하다 꾸벅꾸벅 졸기 일쑤였다. 겨우 시늉을 마치고 방에 깔린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갓 풀을 먹여 사각대는 요에 몸을 누이면 공중에 붕 뜬 것처럼 몸이 가벼웠고 이내 몽롱해졌다. 어느 집에선가 들리는 9시 스포츠 뉴스 소리, 밤늦게 싸돌아다닌다고 다 큰 자식을 호통 치는 소리, 갓 태어난 아기의 울음소리가 꿈결처럼 잦아들었다.    

 

내 것 네 것 없는 동네 사람들이 지긋지긋하게 싫었지만 그곳을 떠날 수는 없었다. 내가 기억이라는 걸 할 수 있을 때부터 아버지가 직장을 옮겨 쫓겨날 때까지 무려 15년을 한 곳에서 살았다. 아버지가 사나이의 야망을 품고 일터를 옮기는 순간, 우리 가족은 무허가 불법 점유자가 됐다. 몇 월 며칠까지 퇴거하라고 명시된 독촉장이 날아왔다. 그 후 몇 차례 날짜가 바뀐 똑같은 독촉장이 날아왔고 마지막으로 받은 독촉장에는 최후통첩이라고 쓰여 있었다.      


노란 수선화가 흐드러지고 버드나무가 활개 치는 중학교의 교실 안, 식곤증으로 아이들의 눈꺼풀이 내려앉는 5교시였다. 열린 창으로 무엇인가를 부수는 망치 소리와 포클레인이 이리저리 몸을 비트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집이 무너지고 있는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학교를 마치고 한 시간 가까이 걸리는 집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엄마가 길바닥에서 울고 있고 내 책과 언니의 옷이 마당에 던져지는 상상을 했다. 가방은 무거웠고 두 발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고 자꾸 엉켰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달리는데 눈물이 자꾸 앞을 가렸다. 고개를 몇 번 넘고 구불구불한 골목을 돌자 우리 집이 보였다. 그대로였다. 아직은.     


당시에는 오래된 집을 헐고 3~4층 규모의 현대식 연립주택을 짓는 게 유행이었다. 학교 가는 길, 붉은 사루비아 꽃이 모퉁이에 소란스럽게 핀 판잣집도, 선녀 보살이 산다던 점집도, 뾰족한 유리병을 담벼락 위에 심고 가시 철망을 둘둘 감은 부잣집도 모두 헐렸다. 여러 집들이 동시에 사라졌다. 그 땅에는 굵은 쇠기둥이 여기저기 박혔고 회색 시멘트 가루가 등굣길을 회색으로 뿌옇게 물들였다. 인부들이 벽돌을 차곡차곡 올리고 틈새를 메우는 지리한 과정을 오래 구경했다. 최후통첩장을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가족은 마침내 새로 지은 연립주택 지하 방으로 이사하기로 했다.   

   

이사 가기 전날, 짐 꾸러미들 틈에서 식구들은 마지막 밤을 보냈다. 잠이나 제대로 잘 수 있었을까, 모르겠다. 이사 간 집에서 만날 해와 달, 밤하늘의 별이 내가 늘 보던 해와 달, 밤하늘의 별이 맞을까, 우주는 상상할 수도 없이 넓어서 제아무리 멀리 이사를 하더라도 길을 잃거나 어긋나지는 않을 터였다. 더군다나 가까운 아랫마을로 이사를 가니 달라질 건 없을 게 분명했다. 철거 업자들에 의해 살던 집이 철거되기 전, 우리가 살 곳을 찾아서 다행이었고, 난생처음 해보는 이사에 마음이 설렜을지도 몰랐다. 눈을 감고 그 집에서의 기억을 하나둘 떠올리며 설핏 잠이 들었던 것 같다.     


당시에는 오래된 집을 헐고 3~4층 규모의 현대식 연립주택을 짓는 게 유행이었다. 학교 가는 길, 붉은 사루비아 꽃이 모퉁이에 소란스럽게 핀 판잣집도, 선녀 보살이 산다던 점집도, 뾰족한 유리병을 담벼락 위에 심고 가시 철망을 둘둘 감은 부잣집도 모두 헐렸다. 여러 집들이 동시에 사라졌다. 그 땅에는 굵은 쇠기둥이 여기저기 박혔고 회색 시멘트 가루가 등굣길을 회색으로 뿌옇게 물들였다. 인부들이 벽돌을 차곡차곡 올리고 틈새를 메우는 지리한 과정을 오래 구경했다. 최후통첩장을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가족은 마침내 새로 지은 연립주택 지하 방으로 이사하기로 했다.   


이사 가기 전날, 짐 꾸러미들 틈에서 식구들이 마지막 밤을 보냈다. 잠이나 제대로 잘 수 있었을까, 모르겠다. 이사 간 집에서 만날 해와 달, 밤하늘의 별이 내가 늘 보던 해와 달, 밤하늘의 별이 맞을까, 우주는 상상할 수도 없이 넓어서 제아무리 멀리 이사를 하더라도 길을 잃거나 어긋나지는 않을 터였다. 더군다나 가까운 아랫마을로 이사를 가니 달라질 건 없을 게 분명했다. 철거 업자들에 의해 살던 집이 철거되기 전, 우리가 살 곳을 찾아서 다행이었고, 난생처음 해보는 이사에 마음이 설렜을지도 몰랐다. 눈을 감고 그 집에서의 기억을 하나둘 떠올리며 설핏 잠이 들었던 것 같다.     




<집이라는 그리운 말>을 출간한 미진입니다. 서랍 속에 쌓인 글을 모아 출간기획서를 쓰고 롤러코스터 같은 투고 과정을 거쳐 드디어 책을 출간했습니다. 


원고를 쓴다는 핑계로 깊은 칩거 후 오랜만에 브런치에 오니 문패가 브런치스토리로 바뀌었네요. 동네 한바퀴를 돌았습니다. 방치된 저희 집에 무성한 잡초는 보이는 대로 뽑고, 거미줄도 걷고, 뽀얗게 쌓인 먼지도 제거했습니다. 부지런히 쓸고 닦아 사람의 온기로 채우겠습니다.


"여러분에게 그리운 말은 무엇일까요."

엄마

아빠

사람

소풍 떠난 로리

김칫국 냄새

...


마음속 아릿한 집에 대한 그리움과 그곳에 살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집이라는 그리운 말>에 담았습니다. 위 글은 책에 실린 '친애하는 남의 집'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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