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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진 Jul 11. 2022

공간을 기억하다, 아현동 굴레방다리

상상 놀이


붉은색에 하늘 높이 빛나는 종근당 건물은 충정로의 랜드마크였다. 건물의 지하 아케이드를 통과해서 학교와 집을 오갔다. 허락 없이 이렇게 지나가도 되는 건지 의아했고 뺑글뺑글 도는 회전문이 부담스러워 그 옆문을 이용했다. 아케이드라니 근사하기도 해라, 이름마저 서양의 어떤 것을 닮아 우아하고 고급스러웠다. 이 부근에서 시작해 이대 입구 전철역까지를 잇는 굴레방다리가 주변 아현동, 북아현동, 중림동, 만리동을 가로질러 유유한 곡선을 그렸다. 높이 우러러봐야 하는 큰 형이 아닌 고만고만하고 만만한 둘째 형이 동생들과 놀아주듯 굴레방다리는 주변과 어울렸다. 


탤런트 김혜수가 졸업한 태권도로 유명한 미동 초등학교 앞에서 육교를 건너 충정로 2가 노라노 양재학원이 있는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굴레방다리를 건너 보자.


버스가 일차선으로 차선을 바꾸면 다리 위를 달릴 준비를 해야 한다. 버스 손잡이를 꽉 잡자. 굴레방다리 좌우로 세상 모든 가구들이 견고함의 자태를 드러낸다.  공주님의 핑크색 침대도 왕과 왕비가 허리를 꼿꼿이 하고 앉아 체리를 먹었을 금색 테두리를 두른 앤티크 소파도 잔잔한 크랙이 고급스러운 아이보리색 이태리 장식장도 있다. 레이디 가구, 삼익가구, 노송가구, 바로크 가구를 차례로 지나면 다시 한번 눈을 뗄 수 없는 환상의 세계가 기다리고 있다. 


© francisco_legarreta, 출처 Unsplash

아현동 웨딩드레스 거리다. 하얀색 망사와 반짝이는 비즈, 우아한 진주로 장식한 드레스, 인어를 연상시키는 머메이드  드레스, 패치코트를 한껏 부풀린 화려한 벨라인 드레스 그리고 그 옆을 지키는 새초롬한 보타이와 실크 화이트 셔츠, 검정 턱시도를 입은 마네킹크 수줍게 서있다.


© jsnbrsc, 출처 Unsplash

흥분이 절정에 이를 즈음, 블랙 앤 화이트의 예복들은 빨간색, 노란색, 보라색의 연주복으로 화려함의 정점을 찍는다. 인근 음대 생들의 연주복들이다. 원색의 드레스들이 아름다움을 발산하고 있다. 침이 꼴깍 넘어간다. 수없이 고개를 돌리며 미래에 입게 될 드레스를 고르느라 어지럼증에 걸릴 지경이다. 경험이 말해줬다. 갈 때는 왼쪽을, 올 때는 오른쪽을 집중 공략하라고. 욕심을 버리고 한 쪽만 감상하는 게 낫다고. 나는 방향이 겹치지 않도록 자리를 정하고 차분하고 여유 있게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을 즐겼다.


굴레방다리로 친숙한 아현고가도로는 내가 태어나기 몇 해 전인 1968년에 태어나 2014년 그 수명을 다했다. 철거 소식을 tv 뉴스와 신문을 보고 알았다. 오랜 지인의 부고를 접하듯 서운했고 먹먹했다. 언제고 정정할 줄 알았던 양반이었다. 사람이라면 한창 일할 중년이고 성장한 자식을 결혼시키고 노년을 준비할 나이다. 사람의 살고 죽음을 알 수 없듯 굴레방다리의 소멸도 예측하지 못했다. 굴레방다리는  순백의 신부를 꿈꾸게 했고  <행복이 가득한 집>의 한 페이지를 상상하게 했다. 그것은  미지의 세상에 대한 탐험이었고 달콤한 낮잠이었다.


어릴 적 나의 롤러코스터였던 굴레방다리, 고마워~

Good bye












#주간일기챌린지#공간에대한추억#그리운나의집#굴레방다리 태그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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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챌] 주간일기 챌린지



첫사랑 블로그, 초배지를 바르는 마음





위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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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7. 6.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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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일기 챌린지



오랫동안 블로그에게 무심했다. 사진을 올리고 하트를 누르는 쉬운 방식에 홀딱 마음이 빼앗겼다. 난 그렇게 쉽게 변하는 여자였다.ㅠㅠ  마음을 써서 글을 쓰고 고치고 다시 읽어야 하는 성실함을 꾸준히도 요구하는 블로그란 녀석이 부담스러웠다. 정직하게 써 내려가는  과정에서 나의 엉클어진 생각에 길이 나고 위아래가 생기고 크고 작음이 밝히 드러난다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게을렀다. 내 마음을 들여다봐야 하는데 그 안에 쌓인 것들이 너무 많았다,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라는 tv프로그램에서나 볼 수 있는 쓰레기를 집안 가득한 채우고 살아가는 사람처럼 마음이란 것이 그랬다.










© kronemberger, 출처 Unsplash







블로그에서 챌린지를 한다고 해도 그런 일에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았다. 그럼에도 너무도 텅 비어서 빈 집이 된, 조만간 폐허가 될 이곳에 묵은 곰팡이도 닦아내고 장마 통에 누렇게 비 샌 벽지도 벗겨내고 켜켜이 쌓인 먼지도 쓱쓱 빗질하고 비뚤어진 액자도 바로 건다.










© inja_jeki, 출처 Unsplash







예쁘고 고운 실크 벽지를 바르기엔 아직 이르다. 울퉁불퉁한 벽을 고르게 하고 새롭게 바를 벽지가 잘 붙도록 초배지부터 정성껏 발라야한다. 그러고 나서 사방 창문을 열어 초여름 저녁 바람이 솔솔 통하게 해야지. 



초배: 정식으로 도배를 하기 전에 허름한 종이로 애벌로 도배함


초배지: 초배하는 데에 쓰는 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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