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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진 Jul 06. 2022

내겐 너무 인간적인 신

태고의 시간들, 올가토카르추크


미래파 화가인 애인과 18세기 풍경화 같은 부인을 둔 상속자 포피엘스키는 우울에 빠졌다. 극도의 절망에서 벗어나 어디론가 달려가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어디로? 무엇을 위해? 그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나는 어디에서 온 걸까? 대체 뭔가를 안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획득한 지식은 얼마나 유용한 걸까? 뭔가를 끝까지 다 안다는 건 가능한 일일까? 무엇을 성취할 수 있을까?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시간의 목적은 무엇일까?



그는 늙은 랍비에게 오래된 책 한 권을 받았다. '이그니스 파투스(Ignis fatus)- 한 명의 게이머를 위한 유익한 게임'이다. 


게이머는 얼음판 위에 갈라져 있는 금을 보듯 자신의 길을 본다. 신을 믿는 게이머는 전능하고 위대한 창조주의 손끝이 여행자를 이끌어준다고 생각하고 신을 신봉하지 않는 자라면 '우발적 사고' 또는 '우연의 일치'라고 말할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태초에 신은 없었다. 빛과 어둠만이 있었다. 그곳에는 오래 빛을 받은 질료(質料)가 있었다. 의식이 명료하지 않은 자신만(질료)이 있었다. 자기 자신을 알기 원했고 문득 '신'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안다는 것은 이름을 붙이는 일이라고 신은 생각했다."


신의 입에서 말이 흘러나와 수천 개의 조각으로 부서져서 세상의 씨앗이  되었다. 신이 물었다. "나는 누구인가? 신인가, 인간인가? 혹은 신이면서 인간인가, 아니면 신도, 인간도 아닌가? 내가 인간을 창조했는가, 아니면 그들이 나를 만들어냈는가?"


"인간이 그를 유혹하자 그는 은밀히 연인의 침대로 들어간다. 거기서 사랑을 발견한다. 노인의 침대로 남몰래 들어가서 무상(無常)을 발견한다. 죽어가는 자의 침대로 숨어 들어가서 죽음을 발견한다."



창조


창조는 힘겨운 노동과 고난의 연속이었다. 신은 지쳤고 의욕을 상실했다. 동물들은 그의 조화를 이해하지 못했고 신을 칭송하거나 그의 업적에 감탄할 줄 몰랐다. 먹고 번식하는 게 다였디. 신은 동물을 인간으로 탈바꿈시켰고 인간이 되고 싶지 않은 동물들은 작당을 해서 신을 물에 빠뜨려 죽이기로 했다. 계획은 성공했다. 이 세계에 신도 인간도 없었다.



질투


자신을 숭배하는 욥을 시험한다.


신은 그에게서 자식들, 여자들 친척들과 친구들, 건강한 신체와 건강한 정신, 습관, 관심사 모든 것을 제거한다. 자신이 행한 업적을 바라보던 신은 당황한다. 신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광채와 똑같은 빛이 욥에게서 흘러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은 모든 것을 서둘러 되돌려주었다. 돈을, 화폐유통을, 금고와 은행을, 화려한 옷과 진기한 물품을, 희망과 욕망도, 끝없는 두려움도. 욥의 몸에서 광채가 사그라들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신은 깨달았다. 인간이 잃을 때 껍질을 벗을 때 가진 것이 없을 때 본질에 다가가며 명징해진다는 것을, 풍요하고 덧입을 때 가진 것이 많을 때 본질과 멀어지고 방만해진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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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신은 인간의 위대함을 발견했고, 자신에게 감추어진 질투와 불안을 드러냈다.


피조물


신의 피조물에는 실수나 허점이 많았다. 명백한 것도 영구적인 것도 없었다. 검은색은 흰색과 이어지고 악은 때로 선의 얼굴을 보였으며 선도 때로는 악처럼 보일 때가 있었다. 사람들은 창조하는 법을 배워 창조했다. 그리고 자신을 신이라 불렀다. 세상은 수백만의 신으로 가득 찼다. 의지는 충동에 예속되어 세계에 혼돈이 찾아왔다. 마침내 신이 돌아왔다. 혼돈의 세상을 한 번의 결심으로 파괴했다

영원


신은 자신이 세상 속에 가두어 놓고 시간의 굴레에 얽매어 놓은 인간들처럼 죽고 싶었다. 자신의 시야에서 사라지는 인간들을 볼 때, 자신을 넘어선 절대 불변의 질서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신은 고통스러웠다.


신조차 아우르는 그 질서 안에서 시간에 의해 흩어져 버리는 순간적인 모든 것들이 마침내 시간의 너머에서 일제히, 그리고 영원히 존재하기 시작한다.


이 이야기는 '이그니스 파투스(Ignis fatus)- 한 명의 게이머를 위한 유익한 게임'에 기록되어 있다. 우리는 성경이 명시한 창조와 별개로 나라마다, 지역마다 연년세세 전해지는 갖가지 설화나 민담을 듣곤 한다. 나이 지긋한 어른이라면 마을에서 내려오는 이야기와 후손들에게 남겨주고 싶은 교훈을 뒤섞어 그럴듯한 한 편의 이야기를 꾸며낼지도 모른다. 



올가 토카르추크는 <태고의 시간들>에서  창조론에 자신의 목소리를 대입했다. 그가 조명한 너무도 인간적인 신, 인간을 질투한 신, 경계를 넘보는 자들이 두려운 신, 그런 신이 아파 나도 아팠다. 절대적 신에 대한 실망이나 흠 없는 대상에 대한 어긋남은 아니다. 불완전한 신을 바라보는 불완전한 인간의 연민이자 짐작할 수 있는 통증이다. 그 너머의 영원을 바라보는 나를 지은 신과 지음 받은 내가 바라보는 한 곳이  뿌옇게 눈물로 어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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