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고집을 부리는 것일 뿐
미국 공립학교에 입학한 지 며칠이 지난 어느 날, 학교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당신의 아들이 귀가 들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병원에 데려가세요."
"이름을 불러도 쳐다보지 않습니다."
"뭐라고요?"
아이는 축구와 태권도를 좋아하고 활발한 성격에 아파트 놀이터를 시끌벅적하게 만드는 장본인이었다. 또 어려서부터 위씽 노래를 따라 부르고 디즈니 시리즈와 쥬라식 파크를 수없이 돌려 보며 자연스럽게 영어를 익혔기에 미국 생활을 준비하며 아이의 언어에 대한 부담은 큰 변수로 생각하지 않았다. ‘부모들이 문제지 아이들은 금방 적응한다’는 선배들의 조언도 마음을 놓는데 한몫을 했다. 다행히 입학한 첫 주부터 아이는 학교에서 있었던 일, 선생님과 반 친구들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해 주었고 학교 과제도 혼자서 뚝딱 해갔다.
그러나 이 한통의 전화는 모든 상황을 반전시켰다.
아이가 하루 종일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니.
참견하기 좋아하는 수다쟁이 아들이 학교에서 이런 생활을 하고 있다는데 나는 왜 몰랐을까? 내가 아이한테 무슨 짓을 한 걸까? 혼란스러웠다. 아이한테 왜 그랬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았다.
"무서웠어."
대답을 하면 말을 계속 시킬까 봐 두려웠다고 한다. 아이는 실패에 대한 불안으로 미국 아이들 앞에서 입을 떼기를 피했던 것이다. 미국 생활의 시작은 이렇듯 살얼음 판이었다. 7살 아이의 힘겨운 적응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남편과 나는 선생님과의 상담을 위해 며칠 뒤 학교로 향했다. 질문할 내용과 하고 싶은 말을 철저히 준비했다. 옷도 최대한 그럴싸하게 차려입었다. 학교에 도착하여 운동장을 지나칠 무렵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분명 아들의 웃음소리였다.
“이거 승현이 목소리 아니야?”
"맞는 거 같은데. 맞아."
어울려 놀고 있는 아이들 무리에서 유독 아들의 목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선생님과의 상담은 시작됐다. 며칠 전 전화기 속 아이를 진단하고 그것을 보고하던 선생님이 아니었다. 미드 프렌즈의 레이철처럼 나이스하고 친절한 분이셨다. 승현이가 텀블링을 하고 멋진 태권도 시범을 보여줬고 빨리 계속 달린다고 끝없이 칭찬하셨다. 계속 달리는 게 칭찬인가 싶어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아이가 적응할 때까지 조금 더 기다려주고 격려해주지 못했는지 따지고 싶은 마음이 올라오는 걸 누르며 "땡큐, 땡큐"만 천 번 하고 교실 문을 나섰다.
앞에서 달리고 있는 승현이와 뒤에서 승현이를 잡으려고 뛰고 있는 친구들이 눈에 들어왔다.'얘들아, 너희들 그렇게 뛰어서 승현이 잡겠니?'조만간 태권도로 다져진 뒤돌려 차기도 선보일 날이 오겠지,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왔다.
최근 TV 프로그램에서 오은영 선생님이 상담 아동에게 하신 말씀이 떠오른다. 금쪽이(상담의 대상이 되는 아이)는 관찰을 통해 자신이 안전하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자신이 결정한 일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아이다. 그러다 보니 변화에 적응하는 게 어려웠고, 자신이 안전하다고 여기는 경계선 안에서만 머무르려 한다. 당연히 그 범위도 좁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건 대체로 안전하지 않다고 여긴다. 제안, 권유, 충고 등을 쉽사리 받아들이지 않는다. 오은영 선생님은 이를 '마음의 고집'이라고 표현하셨다.
우리 아이는 TV 속 금쪽이 처럼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 앞서 그들이 노는 방식을 관찰하고 모방할 준비를 해왔던 것이다. 아이는 자신이 나서도 되겠다고 판단하기까지 시간이 걸렸던 것뿐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 한참을 우두커니 서서 기다리다 보면 점차 주위가 식별된다. 안 보이던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 우리의 눈과 마음은 그렇게 서서히 어둠에 적응하게 된다. 낯선 환경에 대한 두려움으로 몸을 한껏 웅크린 누군가에게 말해주고 싶다, 조금만 참고 기다려 보라고. 곧 익숙해지고 눈 앞이 환해질 거라고 말이다. 마음 졸였던 큰 아이의 학교 적응은 그렇게 한 고비를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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