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녁을 향해 쏴라

장강명, 팔과 다리의 가격

by 미진



1. 과녁을 향해 쏴라.


나는 독자들이 그저 눈을 감고 수많은 사람들이 아무 잘못 없이 굶어 죽은 비극에 대해 더 슬퍼해주기를 바란다. 그런 참사가 왜 일어났는지, 그게 누구의 책임이었는지 아는 것은 뒤로 미뤄도 된다.

나는 고난의 행군 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에 집중하려 한다. 굶는다는 것이 어떤 일인지, 한마을 사람들이 모두 굶주리며 어떤 사건들이 일어나는지, 인간의 존엄이 어디까지 추락할 수 있는지, 그런 가운데에서도 동시에 인간이 어떤 일을 하고 어떤 가치를 지킬 수 있는지에 대해 쓰려한다.

장강명 작가의 의도는 명쾌히 과녁을 맞혔다.

이 책을 읽은 나는 슬픔을 감출 수 없고 먹먹한 가슴을 쉬이 누를 수 없다. 고난의 행군 때 일어난 굶주림과 인권의 말살, 그리고 그 옆에서 아무것도 모른 체 살아온 무지가 당혹스럽기만 하다.


유럽 중세 시기에 알프스 산맥 근처의 산악마을은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가문의 직할지였다. 그들은 알프스 지역에 지배를 위해 과중한 세금을 물리고, 주민들을 억압했다. 압제자 헤르만 게슬러는 광장 보리수 밑에 창을 꽂아놓고, 자신의 모자를 걸어 지나가는 사람들이 모자에 절을 하도록 강요했다. 활쏘기의 명수였던 빌헬름 텔은 모자에 절하는 것을 거부해 게슬러의 노여움을 샀다. 그 벌로 아들의 머리 위에 사과를 좋고 그것을 활로 쏘라는 명령을 내렸다. 빌헬름 텔은 화살이 명중하지 않을 경우 게슬러의 심장을 쏘기 위해 준비해 둔 화살이 발각되어 체포됐다. 그 후 빌헬름 텔은 탈출했고 마침내 게슬러를 화살로 사살하며 국민들 사이에서 영웅이 되었다. - 위키디피디아 발췌

장강명.jpg

소년 지성호는 빌헬름 텔처럼 권력과 체제에 거부하는 거대한 뜻이 있지는 않았다. 다만 배고픔을 면할 수 있고 가족이 함께 살 수만 있으면 그만이었다. 그는 팔과 다리가 잘린 채 탈북하여 중국, 라오스, 태국을 거쳐 한국에 정착하였고 세계에 북한의 실상을 알리고 그들을 돕는 일의 최전선에 서있다. 그런 의미에서 지성호가 세상을 향해 쏜 화살은 과녁을 정확히 맞혔다.



2. 왜 조준을 해야 했나


작가는 굶을 때 생기는 일에 대하여 강도 1에서 시작하여 마지막 10까지 인간 몸의 반응을 통해 설명한다.

도미노처럼 무너지는 윤리 감각, 위생, 수치심, 인간의 존엄을 말이다.

탄광 마을에 사는 소년의 이야기의 초반은 70~80년대 남한의 사회상과 맞물려 그리 다르지 않았다. '순박함은 선량함만큼이나 무지와도 관계가 깊다. 깜짝 놀랄 정도의 무례함이나 잔인함으로 발현되기도 한다. 어린 소년은 친구들과 젊고 예쁜 여자, 가엾은 장애인들을 놀리고 괴롭힌다. 그저 보기에 이상하다는 게 이유였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인간에게 자리한 이 가학성이 불쑥 글의 한가운데서 길을 막는다.

지금이라고 다르지 않은 인간의 악한 이면을 보며 전쟁 통에서도 남을 동정하고 나보다 못한 남을 위해 양보했던 사람들과 대비된다. 인간의 이 양면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난감하다. 그러나 이 또한 고난의 행군이 있기 전에 볼 수 있던 인간의 부끄러운 민낯이다.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면서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무너지기 시작했으므로

"처음에 아사는 소문이었다.

어디서 누가 죽었다더라. 누구도 죽었다더라.

그러다 아는 사람 중에 죽는 사람이 생겼다.

얼마 뒤에는 이웃 중에 죽는 사람이 생겼다.

그렇게 죽음은 문지방 밖까지 왔다."

먹을 것을 얻으러 간 고모부가 사는 개천 수용소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집에 남겨진 동생들 생각에 소년은 집으로 뛰어간다. 열차를 위해 만든 터널이고, 보행자를 위한 길이나 조명 따위는 없었다. 손전등도 없었다.

앞을 집중해서 보면 터널 출구가 멀리서 바늘구멍처럼 작게 한 점으로 나타날 뿐이었다.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곳곳에서 났다. 이상하게 방향감각을 앗아가는 소리였다.

동생들이 굶어 죽었을지 모른다는 상상을 하며 계속 걸려 넘어지면서도 뛰었던 소년의 모습 속에 과거 우리 부모님의 모습이 보인다. 가족을 살려야 한다는 마음은 그들을 그렇게 수없이 일어서게 했다.


아버지를 대신해 소년은 화물차에서 몸을 던진 날, 마을 사람들은 소년을 보고, 비명을 듣고, 소년의 피를 밟고, 소년의 몸을 뛰어넘었다. 아무도 다친 소년을 도와주지 않았다. 잠시 지체하는 사람조차 없었다.

소년은 그들을 증오했지만 그 증오는 곧 이해로 바뀌었다.

그들은 굶주린 자식을 둔 아버지들이었고 말라죽어가는 자식을 울면서 지켜본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소년은 팔과 다리를 절단하는 수술을 했다.

"죽여! 제발! 그냥 죽여!"

의사는 다급한 목소리로 소년에게 질문을 던졌다.

"네 이름이 뭐냐."

"너는 왜 살아야 하느냐."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이냐"

의사는 그런 질문으로 어떻게든 소년의 의지를 끌어내려했다. 그게 그 순간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의사로서의 사명을 다한 그에게 경의를 표한다. 수술을 거부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그의 책임감과 생명을 살리려는 인간애는 아름답다.



3. 과녁을 향해 화살은 날아가고


그건 밤에 벌어진 일이라고. 낮이었다면 인간이 그토록 이기적이지는 않았을 거라고....

작가의 낮과 밤의 차이에 대한 해석은 놀라운 통찰이다.

인간의 본능에 가까운 이기심에 자포자기할 무렵 작가가 던진 낮과 밤의 차이는 위로가 된다.

탄광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는 소년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깜깜한 밤이었다.

할머니가 울고 있는 어머니와 동생을 본 것은 밝은 아침이었다.

그 표정을 보았다면 자기 석탄 자루를 찾는 일은 잠시 미룰 수 있는 사람이 내 주변에 얼마든지 있지 않을까.

지금은 그렇게 생각한다. 그렇게 믿고 싶다. 내가 이 글에서 한 일도 그 표정을 전달하는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작가 장강명은 이 책을 통해 북한 사람들의 얼굴을, 고통받는 자들의 얼굴을 마침내 햇빛 아래로 드러내 놓았다. 환한 빛 아래서 현실을 속속들이 밝히는 작업, 은둔 속에 시름하는 자의 사연을 들추어내고, 감출 수밖에 없었던 실체를 만천하에 열어 보이는 일은 힘들지만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가 아닐까?

고통스럽게 도려낸 환부에서 새살이 돋고 근육과 근육이 연결되고 그 부위는 이전보다 더 단단해질 거라는 믿음을 갖자.

저마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어둠을 밝히는 작업을 하자.

노래하는 사람들은 노래를 통해,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그림을 통해, 글을 쓰는 사람들을 글을 통해서 말이다. 그렇게 빛의 세계로 나오면 된다.


퇴원 후 방안에만 있던 성호는 5월 어느 날 창문 너머로 파란 하늘을 보았다. '세상이 참 아름답구나.'라고 생각했다. 다리 끝에서부터 가슴으로 어떤 의지가 서서히 차오르는 걸 느꼈다.

어느 맑은 봄날이 그런 의지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면,

풀과 나비와 제비가 그런 기적을 일으킬 수 있다면.....

이 책도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가 쏘아 올린 화살은 과녁을 맞혔다.

멀리서 눈을 감고 화살을 조준해야 하는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 기적처럼 그 일을 해냈다.

12월 겨울 한 날, 나의 의지를 불러일으킬 무언가를 찾아본다.

소년 성호가 방에 누워서 본 창문 너머의 파란 하늘이 내가 찾아 헤맨 하늘이기를 바란다.

저 밑바닥에서 차오르는 의지를 느끼고 싶다.

그리고 나의 글 또한 누군가의 삶에 힘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기적처럼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 과녁을 향해 화살을 당긴 그들처럼 쏘고, 쏘고 또 쏜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