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물 예찬

딱 보면 아는 나물 잘하는 사람 vs 나물 못하는 사람

by 미진

지방 우체국장을 지내셨던 시아버지가 정년퇴직을 하신지 20년이 되어간다. 주고받는 정이 당연했던 시절, 명절을 전후하여 곳곳의 농산물이 문 앞에 놓였었다. 대게 과일이나 젓갈 류, 멸치, 참기름 등 소박한 지역 특산물들이었다. 세월이 흘러 그때 지인들은 거의 돌아가시고, 그런 나눔의 문화는 부도덕한 청탁 비리와 한 묶음이 되어 사라진 지 오래다.

그런데 며칠 전 집배원이었던 김병국 씨에게 작은 소포 한 개가 왔다. 말린 고사리다. 오래전 배달 일을 그만두시고 농사일을 하신다는 김 씨 아저씨, 아저씨의 손길이 담긴 고사리를 보니 진주 살 때 느꼈던 살가운 정이 새삼 떠올랐다. 잠시 함께 일했던 직원인데 아직도 잊지 않고 있다니, 마음 씀이 참 고맙다.

정말 귀한 고사리이긴 한데 마음 한구석, 이 부담감은 뭘까? 한참을 쳐다보며 머리를 굴려본다.

'이걸 어쩐다......' 일단 눈에 안 띄는 베란다 선반 위에 밀어 놓았다.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내겐 막 덤빌 요리가 아니므로.

나물 요리에 자신 없는 내가 오랜 세월 나물과 씨름해본 결과 터득한 것은 요리법이 아닌 "딱 보면 아는 나물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 구별법"이다.

고사리를 물에 담가 불릴 생각은 안 하고 구별법이나 떠드는 내가 멋쩍지만 어쩌랴. 일단 시간이라도 벌면서 어찌할지 궁리해 봐야겠다. 다분히 주관적인 나만의 잡담임을 미리 말해둔다.



나물 잘하는 사람


그들은 잘 참는다. 인내심이 있고 오래 기다린다.

세월의 흐름에 맡긴다.

한참을 그렇게 정성을 쏟으면 보드랍고 맛난 나물이 접시에 담길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하루 전날부터 바짝 말린 나물을 물에 담그고 조금씩 불어 오르면 성긴 부분은 잘라낸다. 엄지손가락으로 눌러가며 충분히 불었다 싶으면 물에 헹구어 낸다. 잠길 정도의 물에 나물이 부드러워질 때까지 삶은 후 차가운 물에 여러 차례 헹구어 내면 큰일은 마친 거다. 그 후의 작업은 좀 더 섬세하다. 팬에 들기름을 두르고 밑간을 해놓은 나물을 볶는다. 다시마와 멸치로 미리 우려 놓은 육수를 조금씩 부어가며 고르게 뒤적여 준다. 마늘을 넣고 집간장과 왜간장을 적당히 섞어 간을 하고 들깨가루를 아낌없이 뿌린다. 쫑쫑 썬 파와 참기름 한 큰 술을 둘러 가며 최상의 나물을 탄생시킨다.


명절날 고기, 각종 전, 잡채에 주인공 자리를 다 내주고 존재감도 없이 배경으로 남을 나물, 이름이 거론되거나 칭찬 한번 받기 어려운 나물을 위해 그들은 온 과정을 묵묵히 지켜간다.

자칫 다른 반찬 없이 나물만 상에 오른 날엔 남편이나 아이들로부터 밥상에 먹을 게 없다는, 다른 건 뭐 없냐는 핀잔 어린 투정을 받기도 한다. 다른 어떤 음식보다 많은 수고와 정성이 담긴 음식인데 말이다. 분명 밑반찬 중의 하나지만 메인 요리 못지않은 영양 가득한 음식이기에 밥상에서의 서열이 아쉽기만 하다.



나물 못하는 사람


마음이 바쁘다. 손놀림이 빠르다.

향긋하고 맛있는 나물 요리 레시피를 검색하고 그 방법대로 시간을 재어 가며 심혈을 기울인다. 높은 성공률을 자랑하는 국민 요리사 B 선생이 전수하는 법이라면 안심이다. 최대 승부처인 ‘질긴 나물, 부드럽게 하기’도 문제없다. 베이킹 소다 한 스푼을 넣으면 단시간에 부드럽게 된다는 고급 정보도 미리 챙겨 두었으니까.

“됐어. 이 정도면 먹을 만해 남자들은 나물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아. 그래도 우리 명절엔 나물 한 접시는 있어야 구색을 갖출 수 있지. 이만하면 됐어.” 그럴듯한 합리화가 이루어진다. 인터넷 검색에서 얻은 유명 푸드 인플루언서의 레시피대로 나물을 불리고 삶고 삶은 물에 5시간을 담갔다. 황금비율을 찾아 정량의 양념을 순서대로 놓치지 않고 넣었다. 웬걸 기대한 맛이 나지 않는다. 이 맛이 아니었는데….. 환경이 오염되어 기본양념 맛이 변한 걸까 생각이 많다. 참 투자한 시간이 아깝고 주인 잘 못 만난 나물에게 미안하다.

명절, 차례상이나 제사상에 올리는 삼색나물의 하나로 우리네 밥상에 없으면 허전한 나물들, 명절 당일에는 그 힘을 발휘하지 못하지만 다음날쯤 되면 나름 비중 있는 역할을 맡기도 한다. 며칠간 상 차리느라 지친 주부들은 냉장고에 박혀있는 온갖 나물들을 소환한다. 애매한 날씨에 상하기도 잘하는 이것들을 처치해야 하기 때문이다. 비빔밥 타임이다. 커다란 양푼에 온갖 나물을 넣고 빨간 고추장에 쓱쓱 비빈다. 그리고 참기름 두 바퀴만 둘러주면 순삭~, 침샘 터지는 한 끼 식사가 완성된다. 천덕꾸러기 나물이 겨우 심폐 소생되는 순간이다.



나물 예찬


그렇다면 나는 어떤 유형일까?

분명 후자, 딱 보면 아는 나물 못하는 여자다.

힘들게 산에서 채취해서 몇 날 며칠 바람과 햇볕에 말려 나에게 온 나물들에게 미안할 정도의 솜씨이다.

나물을 잘하는 엄마를, 언니를 흉내 내서 하는데 그 맛이 안 난다.

그들의 여유, 정성, 느린 손놀림이 없기 때문일까?

그 이유가 미스터리라고 하기엔 찔리는 부분이 있는 걸 보니, 영 이유가 없는 건 아닌가 보다.

깊은 맛이 온전히 배인 부드러운 나물, 영양 가득한 나물을 갓 지은 따뜻한 밥 위에 올려 우리 아이들과 미래의 손자 손녀의 입에 쏙 먹이고 싶은데 맛있게 얻어먹기만 한 나의 세대에서 귀한 맛의 유산이 끝난다고 생각하니 죄책감마저 든다. 이 맛을 살려야 하는데.....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다음 명절엔 조금 더 엄마, 언니의 나물과 비슷한 맛을 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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