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친구들
1시간에 한 대가 운행되는 버스
미국 남부의 외딴 시골 마을
영화 <포레스트 검프> 속 벤치 하나가 있다.
그리고
포레스트 1, 2, 3
도시락을 겨드랑이에 끼고 같은 자리에서 버스를 기다린다. 버스가 멈추면 같은 보폭으로 버스에 올라타고 같은 자리에 앉는다. 바지를 허리춤 한참 위까지 끌어올려 입는다. 분명한 건 아무도 웃지 않는다는 것이다. 쇼핑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hello", "so sweet"을 연발하고 귀여운 아이를 보면 "adorable" 하며 눈을 찡긋하는 그런 미국인은 없다. 무표정하게 앞을 응시하다 목적지에 이르면 정확한 지점에서 하차한다. 영화 <레인맨> 속 더스틴 호프만의 그것과 비슷하다.
이곳은 고령 노인, 장애인 할 것 없이 거의 다 차를 운전한다. 차가 발인 셈이다.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느린 속도지만 어쨌든 스스로 차를 몬다. 한산한 거리, 사람들은 별로 할 일도 없어 보인다. 여유롭다. 이렇게 완벽한 환경에서도 내 답답한 운전 실력은 삶을 삐걱거리게 했다.
온 가족을 이끌고 유학길에 오른 가장으로서 불안정한 의료보험과 대책 없는 나의 운전 실력은 남편을 부담스럽게 만들었다. "한국에 가서 해라. 지금 사고 나면 공부를 중단할 수도 있다. 너 다치면 애는 누가 보냐. 공부에 집중할 수 있게 도와줘라." 불안에 찬 남편은 내가 운전하는 것을 진심으로 반대하고 있었다. 분란과 고집으로 남편 공부를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렇게 주저 않아 있을 수는 더더욱 없었다.
눈부신 숲 속의 아침, 새들 소리에 잠이 깨고야 마는 초원의 집에 4살 난 둘째와 나는 덩그러니 남겨졌다.
무슨 일이든 하자.
먼저 이 동네를 알아야 했다.
둘째 손을 잡고 집을 나섰다. 같이 걷다가 칭얼대면 안아주고 몸부림치면 걸렸다 다시 업어주었다. 그때까지 마주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차들만이 묵묵히 제 갈 길을 갔다. 내가 사는 단지를 벗어나 대로변을 따라 한참을 걸었다. 하늘은 푸르고 그 끝은 간데없었다. 그 순간 저 멀리 낡은 버스 정류장 표지판이 점처럼 보였다. 아니 이 동네에도 버스가 다니는구나.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가 엄청난 데시벨로 내 귀청을 울렸고 내 입에서는 감사의 기도가 새어 나왔다.
버스 시간표도 적혀있었다. 1시간에 한 대다. 절대 놓쳐서는 안 된다.
버스정류장에서 그들과의 만남은 계속되었다.
빨리 버스를 타고 안전지대인 학교로 들어가고 싶었다. 두려웠다.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걸까. 별일은 없겠지. 뉴스에서 보던 그런 사고가 일어나지는 않겠지.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변함없이 무표정한 그들 그러나 어느새 나도 그들 중 한 명이 되었다. 조금도 튀지 않았다. 완전히 하나였다. 그들에 대한 두려움은 편견이 만든 나의 그릇된 오만이었다. 나야말로 그들이 경계해야 할 이방인이었을 뿐이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우리는 서로 안심했다. 나는 그들의 일상 속에 조용히 물 흐르듯 스며들었다. 한마디 말도 주고받지 않았지만 그들은 분명 좋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선한 눈이 그렇게 말해주었다. 월마트 이름표를 단 직원들이 내리고 나면 거리 환경미화원 몇 분이 도시락 가방을 꼭 쥔 채 내렸다. 그렇게 동네 한 바퀴를 돌고 나면 학교에 도착한다. 차로 10분이면 족할 거리를 한 시간이 넘게 걸려 왔다. 이게 어디냐. 젊은이들로 활기 넘치는 캠퍼스다. 마음껏 놀아보자.
그리운 버스정류장 친구들, 흑백 화면 속 전우같은 이들, 그들은 오늘도 똑같은 모습으로 똑같은 자리에서 버스를 기다릴 것이다. 그때보다 조금 더 주름진 얼굴로 도시락을 꼭 쥔 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