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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진 Jun 28. 2021

장롱면허 탈출

그해 여름 소나기

장롱면허 10년 차이던 어느 날, 영어 유치원 동료인 클레어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에린 선생님, 혹시 제가 쓰던 차, 필요하시면 드려도 될까요?” “정말요? 저야 정말 감사하죠. 선생님, 새 차 사시는구나. 축하드려요.” 오랜 뚜벅이 생활을 끝낸다고 생각하니 홀가분하면서도 운전면허를 딴 후 한 번도 혼자서 차를 몰아본 적이 없어 내심 걱정이 앞섰다. 


서둘러 퇴근을 해도 유치원이 있는 용인 수지에서 구성으로 가는 버스는 단 한 대뿐이고 이것도 한번 놓치면 30~40분은 족히 기다려야 했다. 먼저 퇴근한 내가 여전히 정류장에 서있는 모습을 몇 차례 본 클레어 선생님은 차를 바꾸면서 내 생각이 났다고 했다. 


며칠 뒤 선생님은 남편분과 함께 내가 사는 아파트 주차장에 차를 놓고 가셨다. 다음날 출근해보니 책상 위에 자동차 키와 장문의 편지 몇 장이 놓여 있었다. 편지에는 이 차를 구입하게 된 계기에서부터 점검 날짜, 부품 교체일, 소소한 사용 팁 그리고 이 차를 내게 줄 수 있어 안심이라는 이야기 등이 적혀 있었다.


‘어쩌면 이렇게 자상할 수 있을까’ 사랑과 배려를 온몸으로 받는 느낌이었다. 남편은 운동신경 이 둔하고 덜렁대는 내가 운전하는 것을 못 미더워했다. 더군다나 개구쟁이 남자아이 둘을 태우고 운전하는 것은 상상하기도 싫어했다. 부부간에 운전 연수해 주는 거 아니라더니 딱 한 번 시내 연수를 해준 후로는 더 완고히 반대를 했다. ‘조금씩이라도 매일 연습하면 잘할 수 있다’라는 선생님의 격려에 힘입어 드디어, 마침내, 결국 핸들을 잡게 되었다.


pixabay

D-day이다.

목표는 전철역 근처 마트 지상 주차장까지 안전 운전하기이다.

그래, 가보는 거야. 까짓.

시동을 걸기 전 경건한 기도를 드렸다. 마음의 평화를 위해 그리고 “peace"를 외치며 출발했다. 버스를 타고 매일 다니던 익숙한 길이었지만 그날만은 새로웠다. 점차 안정감을 되찾았다. 불안감은 서서히 엷어지고 창밖에서 불어오는 바람마저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조만간 운전 중 음악을 틀 수도, 잘하면 에어컨 켜기를 시도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출퇴근 시간을 피한 건 신의 한 수였다. 


마트의 주차장엔 차들이 많지 않았다. 얼굴을 내밀고 여러 차례 왔다 갔다 하며 비교적 괜찮게 주차를 했다.(당시엔 후방 카메라가 없었음.^^) ‘처음엔 다 이렇게 하는 거잖아. 할 만한 걸.’ 자신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마트에서 필요한 물건을 사서 밖으로 나왔다. 그 순간 하늘이 어둑어둑해지더니 강한 소나기가 몰아쳤다. 둑이 무너진 듯 많은 양의 비가 한꺼번에 쏟아졌다. 아이들이 집에 올 시간이 되어 마냥 비가 그치기를 기다릴 수도 없었다.


차에 타서 시동을 걸고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선생님이 주신 노트의 내용을 떠올려 와이퍼를 작동했다. 웬걸, 몇 번 움직이더니 와이퍼가 멈춰버렸다. 다시 작동을 해봐도 꼼짝하지 않았다. 비는 사방에서 몰아쳤고 시야는 완전히 가려졌다. 마치 자동 기계식 세차장 속에 갇혀서 세차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도로 한복판에서 비상등을 켜고 멈춘 듯 기어가는 상황이었다. 일단 도로에서 나와 어떻게 도착했는지 모를 자동차 정비소 앞에 차를 멈췄다. 클레어 선생님께 전화를 하고 사용법을 들었다. 설명대로 해봐도 멈춰 선 와이퍼는 움직이지 않았다. ‘내가 잘 못 만진 건가.’ 전화를 끊고 정비소 직원의 도움을 받았다. 그렇게 꼼짝 않던 와이퍼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그사이 소나기는 수그러들었고 와이퍼 덕분에 시야는 확보되었다. 물 대포를 맞으며 목숨을 걸고 드라마 한 편을 찍은 주인공이 되었다. 운전을 한 게 아니라 전쟁터에서 살아난 거였다. ‘남편 말이 맞아. 난 안 돼. 운전을 하면 매번 이렇게 위험한 상황을 겪게 되는 건가. 과연 계속할 수 있을까.’ 오만가지 생각이 머리에 맴돌았다. 저 멀리 사라져 가는 자신감을 꼭 부여잡고 ‘겨우 첫날’이었음을 되뇌며 후들거리는 다리로 집에 돌아왔다.


운전 첫날, 난이도 ‘상’의 테스트를 통과해서인지 그 후로 나의 운전은 비교적 무난했다. 이건 나의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이다. 주변 사람들은 '무난'은 지나친 미화라고 절대 무난하지 않았다고 하니까.  암튼 폭우 속에서 보낸 짧지만 길었던 그 순간을 생각하면 픽하고 웃음이 난다. 도로 한복판에 멈춰 선 차를 알아서 피해 준 그때 그곳을 지난 모든 운전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다. 그리고 ‘살아야 한다.’는 강한 의지를 불태워준 나 자신에게도 ‘나름 애썼다.’라고 말하고 싶다. 


사람들이 초보운전 실수담을 말할 때 나는 첫 출산 이야기보다 더 할 말이 많다. 남자들이 군대 이야기를 그렇게 대하 전쟁 서사극으로 둔갑시킨다던데 나 또한 그에 못지않은 무용담을 펼친다.

“내가 말이야, 운전 첫날 소나기가 왔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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