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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진 Jun 30. 2021

양육의 궁극적인 목표는 독립이다.

여름방학이다. 그들이 돌아왔다.

파란 하늘

파란 바다

입자 고운 모래밭

플로리다의 어느 해변

오랜 추억은 불쑥 튀어나온 사진 한 장처럼 찰나의 기억으로 떠오른다. 간혹 아이의 웃음소리, 파도 소리, 튜브에 공기를 주입하기 위해 분주히 뛰어다니던 남편의 거친 숨소리가 어렴풋하게 들릴 듯하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당신은 언제로 돌아가고 싶어?”라는 나의 질문에 남편은 당연하다는 듯 20년 전 아이들과 함께 갔던 미국 플로리다에서 보낸 여름을 떠올렸다. 수십 번 생각해도 미소가 머금어지고 배시시 웃음이 나오는 그때, 30대 초반의 서툰 아빠였고 엄마였던 그때가 그렇게 좋다. 7살, 5살 아이들은 늘 눈 안에 있었고 바라보는 것만으로 충만한 기쁨이었다. 물을 무서워하던 큰애를 위해 침대형 튜브를 펌프하고 아이를 바다 위에 눕혔다. 두둥실 떠다니며 파도와 친해졌고 서서히 튜브 밖으로 손과 발을 내밀어 물장구를 치더니 아빠 손을 꼭 잡고 수영을 배웠다. 그렇게 다른 낯선 것들도 하나씩 익혀갔다. 호텔 조식에 강한 집착을 보이는 엄마를 따라 아침 일찍 일어나 밥을 챙겨 먹고 자연을 산책했다. 


pixabay

산책을 다녀와서는 온 가족이 종이 지도를 활짝 펴고 다음 목적지를 정했다. 카시트가 달린 뒷좌석을 살피며 보조석에 앉아 지도책을 펴고 남편의 운전을 도왔다. 햇살이 뜨거운 미국 플로리다 강변을 따라 끝이 있을까 싶게 광활한 지평선을 향해 이국땅에서 만난 중고 대우차를 타고 달렸다. 차만 타면 언제 도착하느냐고 묻던 아이들은 어느새 미국 여행에 완전히 적응했다. 아무튼 아직 멀었다는 것, 잊고 있는 편이 낫다는 것을 몸소 깨달았나 보다. 맥도널드에서 끼니를 때우고 아이들의 인내가 한계에 이를 쯤이면 달라 트리에서 1달러 하는 장난감을 사주고 또 몇 시간을 보냈다. 밤이 깊어지면 차를 세우고 아무 인(inn)에나 들어갔다. 간혹 시설이 낭패인 곳도 있었지만 대체로 우리 형편과 맞았다. 한방 두 개의 침대만 있으면 그런대로 온 가족이 하루의 여정을 마무리하고 내일을 위한 컨디션을 회복할 수 있었다. 행복은 함께 함이었다.


아이들이 중고등학교 다닐 때는 시간이 어디로 흐르는 건지 몰랐다. 위에서 아래인지, 동쪽에서 서쪽 어디로 인지, 매번 시급하고 중요한 무언가를 성취하기 바빴다. 대입 수학 능력 시험이 중요한 것처럼 계속되는 전 과목 수행평가도 단원평가도 봉사활동도 다 해내야 했다. 성실함의 기준이고 진학을 위한 근거이기도 했기에 발등의 불처럼 일단 껐다. 버티기 한판 같은 지리한 시간이 지나면 아이들은 어느새 불쑥 커져있다. 아이들이 고군분투하는 사이 부부는 여느 가정처럼 집을 넓히고 이사를 하고 나이 드신 부모님을 보살피고  사춘기 아이들의 변화무쌍을 가슴 쓸며 지켜봐야 했다. 


북적이며 좁게 느껴졌던 집은 어느새 조용하고 휑하기까지 하다. 20대가 된 두 아들은 그들의 삶을 살기에 바쁘다. 가난했지만 경제 호황기 시대를 살았던 우리 세대가 철학, 문학, 순수학문의 고귀함을 논했다면 지금 이십대들은 취업을 위해 학점에 매달리고 각종 공인 인증 점수를 준비하고 스펙 관리를 하고 틈틈이 아르바이트를 한다. 코로나로 치러지는 비대면 수업은 부족한 수업의 일정 부분을 과제로 대체하고 있는 듯하다. 그들은 잠잘 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바쁘다. 바쁘게 열심히 산 만큼 미래에 대한 불안이 줄어드는 건 또 아니다. 현재만 추구하고 큰 비전을 꿈꾸지 않는다고 말하기엔 그들의 현실이 안쓰럽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오은영 박사의 말에 절대적으로 동감한다.            

“양육의 궁극적인 목표는 독립이다.” 


오늘도 우리 부부는 오붓하게 앉아 저녁 식사를 한다. 식탁 위 대화는 주로 아이들에 관해서다. 아이들이 옆에 없는데도 아이들 이야기를 하며 웃는다. 남편도 나도 누구도 먼저 말을 꺼내지는 않지만 우리는 아이들을 마음으로 떠나보낼 준비를 하고 있다. 그 아이들은 부모의 탯줄에서 끊어지는 순간부터 타인이었고, 부모의 도움이 필요했던 시기에 부모가 평생 추억하고 간직할 행복과 기쁨을 넘치도록 선물해 주었다. 

얘들아, 엄마, 아빠는 너희들의 “독립만세”를 외쳐줄 준비가 되어있단다.

                           독립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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