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진 Jul 01. 2021

여름방학, 그들이 돌아왔다.

엄마의 보물섬이란

항해를 떠난다. 

보물섬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누구나 그곳에 갈 수 있지만 ‘볼 수 있는 자에게는 보이고,  볼 수 없는 자에게는 보이지 않는다.’라는 비밀이 있다. 내가 볼 수 있는 자인지, 볼 수 없는 자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볼 수 있다는 믿음으로 그 보물섬을 찾아 나설 뿐이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최대한 넓게 시선을 둔다. 온몸의 감각을 깨운다. 


나는 지금 보물섬의 한가운데 있다. 

주방이다.

“그들이 돌아왔다.”

영화 포스터 문구, 유명 그룹의 컴백 광고가 떠오른다.

방학이 되어 집으로 돌아온 아이들,

앞치마를 두르고 전투태세 준비 완료다.

곳간의 쌀, 냉동실의 각종 고기, 기본 식재료가 넉넉하다.

쉴 틈 없이 돌아갈 주방에서 나는 칼질을 하고 웍질을 할 것이다. 고객님들의 몸에 쌓인 인스턴트 음식의 잔해를 밀어내고 신선하고 좋은 것으로 가득 채우리라. 그리고 말끝마다 “사랑합니다. 고객님”을 외칠지도 모른다. 옛말에 "마른논에 물들어가는 소리와 자식들 목구멍으로 음식 넘어가는 소리가 가장 듣기 좋다."라던데 참 그렇다. 식구(食口)들이 맛있게 먹을 음식이 탄생하는 주방이 내겐 보물섬이다.


보물섬 정복을 위한 여정은 초등학교 2, 3학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교과서 말고는 굴러다니는 책 하나 없던 집에 동화책 전집 하나가 들어왔다. 친구들 집에서 책을 빌려 읽으며 갈증만 더 하던 차에 드디어 읽을 것이 생긴 것이다. 아버지가 얻어 오셨거나 주워왔을 책의 제목은 <타이거 소년>이었다. 정확히 왼쪽 면은 그림, 오른쪽 면은 글로 빼곡한 흑백 동화책이었다. 배경은 당연히 정글이었고 등장인물은 호피무늬 팬티로 주요 부위만 간신히 가린 소년과 호랑이였다. 흐릿한 기억 속 나는 무척이나 아쉬워했다. 나의 첫 동화책이 이렇게 야생스럽다니. 착한 공주가 마녀를 피해 성을 탈출하거나 위기의 순간에 나타난 왕자가 공주를 구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나누는 책이기를 바랐다.


호피무늬 팬티에 색칠하고 싶은 강한 열망을 누른 채 지루하게 책을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러던 내게 절호의 기회가 왔다. 일요일, 교회에 가는 날이었다. 교회 한쪽에는 외국에서 오신 선교사님들이 머무는 숙소가 있었다, 주일학교 선생님께서 “선교사님 사택이 비었으니 거기에 가서 성경공부를 하자”라고 하셨다. 그곳은 빨간 벽돌로 지어진 장미꽃 덩굴이 엉켜진 이층 집이었다. 철 계단을 올라, 사자 얼굴 모양의 문고리를 열면 영화에서나 보던 벽난로가 정면에, 반지르르한 붉은 벨벳 소파가 가운데 있다. 넓은 탁자가 있는 한쪽 서재에서 새삼 얌전한 모습으로 성경공부를 했다. 마지막 기도를 마치자 선생님은 우리들에게 선교사님이 책을 다 두고 가셨으니 마음껏 읽어도 된다고 하셨다.


온갖 주문에도 열리지 않던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 속 동굴 문이 드디어 열렸다. 내 마음을 단 박에 훔친 건 펼쳐도 펼쳐도 또 펴지는 입체 북이었다. 첫 페이지를 넘기면 얼굴이, 다음 장을 넘기면 몸이, 그다음엔 다리가 쭉, 마침내 책 한 권이 다 펼쳐지면 소인국에 누워있는 걸리버가 눈앞에 있었다. 노아의 방주도 신기 방기 했다. 좌우로 펼치고, 아래에서 위로, 위에서 아래로 펼치면 커다란 배가 되고 이곳저곳에 뚫린 창문을 열면 동물 암수 한 쌍이 툭하고 튀어나왔다. ‘세상에 이런 책이 있다니.’ 놀라움과 감동으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pixabay

그다음 발견한 나의 보물섬은 중학교 도서관이었다.

행정 오류인 게 분명한 학교 배정으로 한 시간 넘게 걸려 도착하는 학교, 그곳에서 나의 사춘기는 널을 뛰었고 감성지수는 최고점을 찍었다. 강렬한 아카시아 향기에 취해 정신을 잃고, 바람에 흔들리는 버드나무를 따라 춤을 췄다. 그때 나는 운명처럼 만난 도서관과 서툰 악수를 했다. 진득하게 먼지를 머금은 책들, 쾌쾌한 세월의 냄새. 그곳은 나의 방황을 잠재웠고 부유하던 영혼에 조금씩 질량을 실어주었다. 한 권을 읽을 때마다 새로운 세계를 방문한 여행객이 되었고 다른 나라로 떠날 때면 조금씩 달라진 내가 되었다. 이곳은 내게 이광수의 유정, 무정, 펄 벅의 대지, 미우라 아야코의 빙점을 안겨주었고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지와 사랑을 선물했다.


나는 안다.

내가 수많은 보물섬을 놓쳐왔다는 것을. 

불평불만, 게으름과 편견으로 못 보고 지나친 보물섬들이 저편에 있다는 것을.

남편이 아무리 클래식 음악의 감동을 설명해도 잘 공감하지 못하는 음알못, 음악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 음악에 집중하려 해도 자꾸 윙하는 기계음과 함께 괘도를 이탈한다. 

부디 소중한 무언가를 무딘 감각으로 지나치지 않기를 바라며 볼 수 있는 마음의 문을 더 더 활짝 열어본다. 

작가의 이전글 양육의 궁극적인 목표는 독립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