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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진 Jul 05. 2021

얘들아, 언니 공부 때려쳤다. 신나게 놀자.

공무원시험 도전기

공부를 시작했다.

결과는 실패였다.

우선 동기가 불손했다. 좀 극단적인 표현인가. ‘덜 순수했다’로 고쳐본다.


지극히 평범한 얼굴도 싱그러운 '나이의 세례'를 받으면 일생에 한번쯤은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맞는다. 그렇게 내 인생의 꽃이 활짝 핀 어느 날, 떠나가는 버스를 잡으려 달리다 그만 넘어졌다. 백미러로 길바닥에 엎어져 있는 나를 본 기사님은 버스를 멈췄고 나는 가까스로 그 버스에 올라탔다. 너무 아팠다. 걸을 수가 없었다. 그 후 허리 디스크라는 병명이 생겼고 퇴원 후 매일 병원과 용하다는 한의원에 다녔고 그 당시에는 생소했던 카이로프랙틱 치료를 받았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크다는 한방병원에서는 “앞으로 아이 낳는 것도 힘들겠다.”라고 24살 내게 말했다. 인생은 더 이상 짙을 수 없는 짙고 짙은 회색이었다. 길을 걷다가 문이 열린 교회에 들어가 울면서 기도했다. 


시간은 흘렀고 더 이상 무력하게 그렇게 살 수는 없었다. 공무원 시험 준비를 시작했다. 등껍질이 타도록 찜질을 하다 공부를 하고 침을 맞고 와서 또 공부를 했다. 매일 납작한 갈색 단화를 끌고 누가 봐도 아픈 이의 행색으로 할머니들 틈에서 순서를 기다리며 물리치료와 침을 맞았다. 그해 공무원 시험을 보고 다음 해에 공무원이 되었고 그 다음 해 남편을 만나 결혼을 했고 또 그다음 해 큰애를 낳았다. 아이를 자연 출산하면서 몸이 로봇처럼 재조립되는 느낌을 받았다. 늘 달고 다니던 무거운 통증이 사라졌다. 새로 태어난 듯 몸이 가벼워졌다. 아아가, 힘겨운 출산이 내게 큰 선물을 줬다. 


출산 전  하던 공무원 일이 나와 잘 맞지 않았다. 정확한 계산을 요구하는 일이 버거웠다. 계산기를 두들길 때마다 매번 달라지는 금액은 할 말을 잃게 했다. 검토가 내게는 검토가 아니었다. 늘 두통에 시달렸고 일은 손에 붙지 않고 따로 놀았다. 지옥의 출근길이었고 우울한 퇴근길이었다. 출산 휴가 3개월을 마치고 복직을 포기했다. 


그렇게 30,40대를 지나 50대를 맞았다. 솔솔바람이 귀를 간질였다. 팔랑거렸다. '10년만 다니면 연금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데. 60세 정년을 앞두고 마지막 기회, 절호의 찬스가 이닐까' 홈쇼핑 마감을 눈 앞에 둔 성급함과 비슷한 감정이 밀려왔다. '워라벨이 좋은 직종을 골라 도전해보자. 27년 전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르지. 잘 할 수 있을 거야.'라고 자신을 설득했다. 얇디얇아 반겹도 안 되는 잔머리를 굴리며 공부를 시작했다. 생각은 짧고 일 저지르기는 빛의 속도였다. 어리석은 자여. 그대의 이름은 ……. 


아침 8시부터 6시까지 동네 구립 도서관에서 승부를 보기로 했다. 세련된 스터디 카페가 아닌 칙칙한 열람실, 그곳에는 취업을 불태우는 20대 전사들부터 60대까지 세무사, 회계사, 변리사. 공인중개사. 주택관리사 등을 목표로 세상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의 눈빛은 때로는 이글거리는 열정으로 뜨거웠고 때로는 한없는 피로감으로 지쳐있었다. 나도 그들의 대열에 끼였다. 우리들은 모두 내적 친구였다. 매일 보던 친구가 보이지 않으면 몸이 아픈 건 아닌지 걱정이 됐고 편의점 1+1 커피 중 하나를 몰래 책상 위에 올려놓기도 했다.


이 구역엔 우리들만의 룰이 있다. 신발을 끌어서도 안 되고 페이지는 조용히 넘겨야 하고 볼펜을 떨어뜨리는 것도 삼가야 했다. 커피나 음료를 마실 수는 있지만 얼음 소리를 달가닥 거리거나 소리를 내고 마시는 건 예의가 아니었다. 아무도 창밖의 나무를 꽃을 보지 않았다. 아름다운 하늘을, 홍시 빛 노을을 보지 않았다. 그들은 책 속에 얼굴을 묻고 시간 안에 풀어야 하는 문제에 집중했다. 그렇게 시간이 갔다. 염색도 하지 않고 수험생의 상징인 똑같은 추리닝 매일 입기를 하며 한 계절을 버텼다.  




이런 수험생들에게도 숨 쉴 시간이 있으니 토막처럼 짧은 점심시간이었다. 모두들 거북목을 펴고 일어났다. 암암리에 순서가 정해졌다. 도시락 팀, 구내식당 팀, 외부 식당 팀 등이 기지개를 켜며 열람실을 나간다. 밥을 먹으며 단어장 앱이나 요약노트를 보기도 하고 재밌는 동영상을 보며 머리를 식히기도 했다.


나는 도시락 팀에 끼여 준비해 간 영양떡을 빛의 속도로 먹고 일광욕 겸 커피를 사러 갔다. 근처 단골 카페에 가서 뜨거운 카페라테를 주문했다. 에너지를 충전하고 점심시간 이후의 식곤증을 몰아내고 최소 2시간은 강력한 에너지를 끌어내주는 녀석이었다. 하루의 위로고 휴식이고 친구였다. 도서관 뒤 잘생긴 나무가 드리워진 벤치에 앉아 도서관의 에어컨과 선풍기 바람이 아닌 자연의 미풍을 쐬며 마시는 따뜻한 라테 한 잔은 고용량 영양제이자 보약이었다. 온몸의 세포가 생기를 얻고 불협화음을 내던 몸에 조용한 질서가 생겼다. 비껴간 시력마저 제 도수를 찾았다. 마지막 한 방울까지 거룩하게 털어 넣은 후 남은 오후 공부를 했다. 

pixabay

벽돌 두께의 법을 공부하고 고려 시대 왕의 업적을 외웠다. 후회는 진작했다. ‘아차’ 발을 잘 못 디뎠구나. ‘이건 아니지.’ 그 엄청난 세월의 간극을 고무줄 넘듯 홀짝 넘을 줄 알았다. 하루만 더 생각했더라면 누가 나를 말려줬더라면 눈도 침침한데 허리도 아픈데 빨리 링 위에 수건을 던지고 싶었다. ‘하늘은 왜 이리 높은 거니. 공부하러 산에 들어간다고 동네방네 공표하지 말걸. 저녁 6시까지 전화 못 받는다고 알리지 말걸.’ 


심하게 갱년기를 앓은 걸까. 어이없는 해프닝은 6개월 버티기로 막을 내렸다. 수험생들의 마의 계절인 여름, 그 힘겹다는 고개를 넘기엔 의지가 약했다. 앞날 창창한 젊은이들의 미래를 축복하며 사물함의 짐을 쌌다. 남편은 상식 퀴즈대회 준비했다고 생각하라고 헛된 공부는 없다며 위로했다. “그렇지? 그 사이에 좀 유식해진 거 같아. 책값이 좀 아깝지만 중고시장에 팔면 괜찮아.”라고 말하며 멋쩍게 웃었다. 어쩌랴, 웃어야지. 그리고 핸드폰을 붙잡고 톡을 날렸다.

얘들아. 언니 공부 때려치웠다. 신나게 놀자.





뜨거운 여름 야외 카페에서 따뜻한 카페라테를 마시며 나는 수다 삼매경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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