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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진 Jul 06. 2021

한 여름밤의 꿈,
​마이클 칼로스 미술관에서 강연하다

꿈이라도 좋아

빨래하기 좋은 날,

주말 내내 비가 오더니 오늘은 맑음이다. 방마다 사내아이들의 외마디 비명이 새어나온다. 다들 몸만들기 한창이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하나둘 사서 모은 벤치 프레스, 실내 철봉, 풀업밴드, 헬스스트랩, 마스터그립 악력기 등으로 방이고 거실이고 발 디딜 틈이 없다. 빨래 바구니에는 땀에 찌든 운동복이 또 한 가득이다. 형제끼리 돈을 모아 기구를 사서 홈트를 하는 게 헬스장에 가는 것보다 훨씬 경제적이라는 게 그들의 설명이다. 


음식도 보통 신경 쓰는 게 아니다. 점심에만 닭가슴살 같은 건강식이 아닌 제대로 된 일반식을 먹는다. 그래서 하루에 한 번 먹는 집밥에 나름 정성을 쏟고 있다. 두 녀석들 맛있게 잘도 먹는다. 설거지는 둘이 번갈아 한다. ‘먹었으면 밥값을 해야 한다.’라는 것이 우리 집 가정교육헌장 1장 1절이다. 그 사이 옥상에 올라가 보송보송 마른 빨래를 걷는다. 주말 내린 비로 마을은 갓 씻긴 아이마냥 뽀얗다. 거실 반을 덮는 햇살 속에 몸을 깊숙이 담그고 허브차를 마시며 Ted talk을 시청한다. 

여기는 에모리대학 부속 마이클 칼로스 미술관이다. 수천 번의 연습 때문일까? 무의식 상태에서도 얼마든지 말할 수 있고 관객과 감정을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며칠 잠을 통으로 못자서인지 시차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나이에 비해 낯선 환경에 잘 적응하고 회복도 빠른 편이다.글을 오래 쓰면서 글쓰기 못지않게 체력을 기르는 데 공을 들인 덕분이다. 글을 한 줄도 못쓰는 날도 운동 시간은 지키려고 애를 썼다.    

         

pixabay

소설의 배경이 된 미술관에서 독자들과 만남의 시간을 갖는 나의 모습은 10년 동안 그려온 시뮬레이션의 한 장면이었다. 익숙한 무대와 배경, 친숙한 관객들이다. 오른쪽에 놓인 계단을 내려가 크게 서너 발자국만 걸으면 무대 앞 관객들과 악수를 나눌 수 있는 정도의 규모다. 

동생의 성화에 새 옷을 사서 입은 내가 어색하다. 다행히 크고 작은 도전을 함께 해온 낡은 갈색 구두가 나를 꼿꼿이 지탱시키고 있다. 여러 번 수선을 거친 지금은 더 이상 품절이 되어 구할 수 도 없다, 신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밑바닥에서부터 힘이 끌어올려진다.


만감이 교차한다는 진부한 표현, 아직 그 이상의 것을 찾지 못했다, 참 적절하고 요긴한 표현인가 보다. 눈앞에 엄마가 있다. 고운 엄마, 딸의 책이 출간이 돼도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지 모르는 엄마, 뉴스의 문학코너 한 꼭지를 차지해도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는 엄마가 딸이 유명해져서 미국을 간다는 말에 “비행기 타고 미국 간다고? 네가 드디어 출세했구나.”라고 기뻐하셨다. ”맞아요. 엄마 딸이 출세했어요. 나랑 같이 미국에 가요. 엄마가 있어야 내가 잘 할 수 있어요.“ ”그래? 그럼 내가 가야지.“ 그렇게 우리는 비행기를 탔다.


“엄마, 사랑해요.”손을 흔들며 한국말로 엄마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는 건 오래전부터 계획된 퍼포먼스였다. 내가 글을 쓸 수 있었던 건, 수많은 위기의 순간에 포기해야 마땅한 순간에 버틸 수 있었던 건 엄마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보다 강력한 힘이 있을까. 땅과 하늘을 뒤흔들 동력을 엄마는 내게 주셨다. 

pixabay

자연스럽게 이야기는 나의 첫 소설 < The Sad Delivery>로 흘러간다. 한국에서는 <슬픈 만두 배달>이라는 정겹지만 흡족하지 않은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엄마와 나의 이야기, 가족의 이야기다. <엄마의 주문>이라는 에세이로 시작한 나의 글쓰기는 <슬픈 딜리버리>로 세상에 알려졌다. 그렇게 엄마의 삶은 내가 글을 쓰는데 씨앗이 되어주었고 매번 씨알 굵은 열매를 맺게 해주었다. 글속에서마저 엄마의 씨앗은 강했고 그 생명력이 왕성했나보다. 내 삶의 이야기 그리고 지금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이며 세계10개국에서 번역 출판된 <The woman who eats the pictures(그림을 먹는 여자)>에 대한 이야기와 간단한 질의응답으로 마이클 칼로스 미술관에서의 강연은 막을 내렸다. 청중들은 일어나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밀봉된 나의 감정들이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다. 


초청을 수락하기 전 망설였다. 작가는 말이 아닌 글로 세상과 대화하는 사람이 아닌가. ‘그냥 책을 읽으라고, 전하고 싶은 모든 말이 거기 다 들어있다고, 사람의 입으로 표현할 수 없는 수많은 감정들이 거기 박혀있다.’라고 말하고 싶었다. 어설픈 입술이 글의 이유를 가릴까 왜곡할까 두려웠다. 그 순간 엄마 앞에서 동요를 부르던 7살 꼬마와 박수를 치며 웃고 있는 엄마가 보였다. ‘그래 해보자. ’말로 전할 수 없는 모든 것을 목소리, 숨소리 그리고 눈빛이 대신해주기를 기도했다.


“엄마 일어나.” “엄마 수박 드세요.” 둘째 승민이가 나를 깨운다. “수박 드세요.” 해가 여전히 거실의 반을 차지하고 있고 소파 위에는 개다 만 빨래더미가 산처럼 쌓여있다. 

“박수가 아니라 수박이구나.” 

“박수가 뭐라고요?”

“그런 게 있어.” 


‘한 여름 낮의 꿈’에 나는 작가가 되었고 speaker가 되었고 15년 전 돌아가신 엄마를 만났다. 이렇게 좋은 날, 꿈이라도 좋은 날 마음 한 벽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기쁨의 눈물인지 회한의 눈물인지 알 수 없는 눈물이 시리게 스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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