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가벼운가, 무거운가
일정한 몸무게를 유지하는 다이어터들은 조금만 과식을 해도 몸이 무겁고 기분마저 언짢다고 한다. 나에게 육체의 무거움은 반은 익숙해졌고 반은 포기 상태지만 영혼의 지나친 가벼움은 때로는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부끄럽다. 반백년을 넘게 살며 어쩜 그리 가벼울 수 있을까. 누군가는 나의 가벼움을 부러워하고 그 단순함에 경의를 표한다. 전략적으로 선택했을지 모를 나의 가벼움은 이제 불치에 가까워 뒤늦게 자각과 각성으로 고쳐보려 해도 쉽지 않다.
힘든 일은 머릿속 필터를 거치는 즉시 잊는다. 오래 고민하기에는 지구력이 떨어진다. 중요했던 결정의 순간, 나는 고민을 했던가, 얼마나 절실히 올바른 선택을 위해 불면의 밤을 보냈을까. 입맛이 없던 적은 있던가. 아프리카의 치타처럼 먹이를 보면 뛰었고 배부르면 나무 그늘 밑에서 잠을 잤다. 무리 주변을 어슬렁거렸고 햇볕이 따뜻한 바위 위에서 널브러져 시간을 보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나를 보고 생각하라고 한다.
'밀란 쿤데라, 당신. 너무 해요. 유혹적인 제목으로 사람을 붙들어 놓고 시련에 빠지게 하는군요. 나는 가벼운 사람이라고요. 바람결에 나비처럼 날고, 소프트아이스크림처럼 순식간에 녹을 거라고요.’
짐이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우리 삶이 지상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우리 삶은 보다 생생하고 진실해진다. 반면에 짐이 완전히 없다면 인간 존재는 공기보다 가벼워지고 날아가버려, 지상적 존재로부터 멀어진 인간은 기껏해야 반쯤만 생생하고 그의 움직임은 자유롭다 못해 무의미해지고 만다. P11
내게도 다른 감정들이 있다. 비극의 순간, 절망의 순간, 눈물 콧물이 흥건하게 흐를 때 불현듯 나와 한 발자국 떨어져 나를 바라보는 나를 발견한다. 초극, 뭐 그런 감정은 아니다. 더 이상 무겁지 않을 거라는 기대나 해방감과 유사할까. 직선으로 달리는 인생이기에 한 번뿐인 시간의 트랙을 달린다. 돌이킬 수 없기에 주어진 선택지 중 최선의 선택을 한다.
영원히 반복되어 과거와 비교되고 미래에 영향을 주는 회기란 끔찍하다. 흐릿한 초벌이건 몇 층에서 내려야 할지 몰라 일단 아무 층 버튼을 눌렀건 인생은 일단 굴러가는 것 아닐까.
가벼운 사랑을 추구하며 정치적 무거움을 추구하는 토마시, 우연히 맺어준 토마시와의 사랑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그에게 유일한 육체가 되고 싶은 테레자, 공산주의의 획일성을 거부하고 배신을 추앙하며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사비나, 일상의 삶은 비현실적이고 시위 행렬은 현실적이라고 하는 프란츠가 등장한다.
토마시는 메타포의 여자이자, 동정(con-sentiment)의 감정을 느끼게 하는 여자를 떠나지 않는다. 돈 후안의 가면을 쓴 트리스탄의 모습으로 기억된다. 육체의 획일성을 괴로워하고 육체로부터 영혼을 보기 원했던 테레자는 변화한다. 기껏 매력적인 목소리만 있다면 사랑도 가능할 법하다.
어머니를 닮았다고 생각한 아내와 헤어지고 사비나와 사랑을 나누는 프란츠, 그는 혁명의 도시에서 온 사비나에게 매력을 느꼈다. 눈을 감는 남자와 그 남자가 눈을 감는 것이 보기 싫어 눈을 감는 여자 사비나는 오래갈 수 없다. 묘지에서 평화를 느끼는 여자와 묘지란 추악한 하치장에 불과하다는 남자, 은밀한 내밀성을 가진 여자와 모든 시선에 열려있는 유리 집에서 살고 싶은 남자는 이별했다.
역사도 정치도 다르지 않다.
인류의 치명적 미체험이 그려낸 두 개의 초벌 그림이다. 역사란 개인의 삶만큼이나 가벼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가벼운, 깃털처럼 가벼운, 바람에 날리는 먼지처럼 가벼운, 내일이면 사라질 그 무엇처럼 가벼운
1928년 체코인들은 전쟁을 했다. 용기보다는 신중함이 필요했던 걸까? 1938년 그들은 타협을 했다. 신중함보다 용기가 필요했을까? 모든 추론은 가설에 불과하다. 이미 끝났다. 돌이킬 수 없다. 우리네 삶처럼.
대중을 이끄는 데는 키치가 제일 유효했다. 감정적 동의를 유발하는 키치는 사람들을 하나로 유대하게 만들며 통치를 용이하게 만들고 진실을 은폐한다. 그들이 가장 경계하는 것은 질문이다. 질문이란 진실을 감추는 사람에겐 들키기 직전의 위험 신호이므로.
이들의 사랑은 고독과 고통 속에서 끝까지 가기도 하고 각자의 길을 선택하기도 한다. 가벼움은 무거움으로 무거움은 가벼움으로 변해갔고 보이는 현상 너머에서 다른 모습을 보기도 했다. 내게 사랑의 문제, 존재의 문제가 이렇게 어려운 건 그 가운데 회색 지점, 무벼운 상태에 놓여있기 때문일까. 내게 산다는 건 밸런스 게임이다.
슬픔은 형식이었고, 행복이 내용이었다. 행복은 슬픔의 공간을 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