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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진 Jun 22. 2022

그래도 사는 게 낫더라

할아버지 삼총사

  "Almost paradise 아침보다 더 눈부신~" 꽃보다 남자에 금잔디, 구준표, 그리고 F4가 있다면 전원일기에는 껌딱지처럼 붙어 다니시는 G3, 할아버지 3인방이 있다. 박 노인, 이 노인, 김 노인이다. 보통 "박가야, 이가야, 김가야" 라고 부르고 불린다. 모든 에피소드에 감초처럼 등장하는 마을 노인들이다. 너른 야외 풍경을 줌 아웃하면 오래된 나무 그늘 아래 장기를 두고 볏짚을 엮고 계시는 모습이 화면에 들어온다.   

  

  새해 첫 주 즈음 방영되었을 법한 토정비결 이야기를 풀어본다. 마을회관에 모인 총각들은 겨울철 일거리가 없어 무료하기만 하다. 마음씨 착한 응삼이는 토정비결 책을 빌려와 모인 동네 사람들의 한 해 운수를 봐준다. 사람들이 생년, 생일, 생시를 대면 나름 진지하게 책을 찾아가며 한 해의 운수를 말해준다. 때마침 그곳을 지나가던 박 노인은 당신의 운세를 봐달라며 사주를 알려주고 간다. 


응삼이는 박 노인의 올해 운세가 너무 나쁘다며 한 걱정이다. 옆에 있던 친구들도 나이든 노인한테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고, 그러다 충격 받아 병나신다며 사실대로 말하지 말라고 한다. 고심하던 응삼이는 박 노인을 기쁘게 하려는 마음에 책에 쓰여 있는 문구 중 괜찮은 것을 골라 거짓으로 알려드린다. 


"할아버지, 올해 운수가 아주 좋으세요. 고운 옷을 입고 멀리 여행을 가신대요." 젊은 응삼이에게는 형편이 좋아 해외여행을 가는 게 최고 좋은 운세라고 생각되었는지 그 문구를 할아버지에게 드릴 종이에 써서 드렸다. 이 문구를 받은 할아버지는 하얗게 질려 시름시름 앓으신다. '내가 곧 죽나 보다. 올해를 못 넘기겠구먼. 멀리라면 저승인 게지.'라며 기운을 못 차리신다.    

  

소식을 들은 응삼이는 할아버지에게 사실대로 자백한다. 할아버지 올해 운세가 너무 안좋아서 책에서 괜찮은 거 베꼈다고. 그러고는 진짜 운세를 알려 준다.     


"사기를 당하신대요."     

"아이쿠, 괜찮다. 사기야 당할 수도 있지."     

"올 여름에 다치신대요."     

"뭘 그걸 같고 그러냐. 다치면 고치면 되지."     

어떤 나쁜 문구를 읽어 줘도 박 노인은 다시 살았다는 기쁨에 싱글벙글하신다. 

"괜찮다. 죽지 않고 살아 있기만 하면 다 견딜 수 있는 거다."     

나이 지긋한 박 노인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죽음이었고 살아있기만 한다면 어떠한 어려움도 괜찮은 거였다.   

  

정기검진 때마다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내내 나는 콩처럼 점처럼 쪼그라들고 일주일 후 아무 이상이 없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서야 가쁜 숨을 내쉬고 여름철 튜브처럼 부풀어 새로운 삶을 꿈꾼다. 살 수 있음에 깊은 안도의 숨을 몰아쉬는 박 노인의 함박웃음에 나도 기뻐 웃는다. 산다는 건 그렇게 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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