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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지나무 Mar 30. 2018

농업치료: 도시농부학교(1)

지금은 감자 심는 계절

(침대에서 일어날 수 있을 때)


준비물: 텃밭, 감자, 칼



인간이 본래 살았던 방식


  국립중앙박물관에 다녀온 이후 인간이 본래 살았던 방식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인간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의식주를 자신의 힘으로 마련해야 하는 생활말이다.  회사에 다닐 때 나는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서 생각하고 글을 쓰는 일을 했다.  그 대가로 월급을 받았고, 그 돈으로 먹을 것과 입을 것, 취미생활할 것들을 구입했다.  거의 매일 야근했기 때문에 요리할 시간같은 건 없어서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거나 식당에서 파는 밥을 사먹었다.  나는 의식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동을 해서 돈을 벌었지만, 그 노동은 나의 의식주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일이 아니었고 그 대가로 받은 돈도 나의 의식주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물건은 아니었다.  


  물론 사회가 복잡해졌고 직업도 다양해졌으니 사람들이 하는 모든 노동이 자신의 의식주와 직접 관련된 것일 수는 없을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매일 벼농사를 짓고 옷을 만들면서 살아가는 세상은 그 나름대로의 단점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사람들이 주말농장을 하거나 사무실에서도 식물을 키우거나 하는 이유는 뭘까?  하루의 피곤함을 달래기 위해 하는 게임에서도 농사를 짓고 동물을 키우고 요리를 하고 싶어하는 건 어떤 이유일까?  (예를 들면 '듀랑고'같은 게임.  유저들 중에는 원시사회에서의 생활 자체가 재미있다는 사람들도 많다.)


  나의 필요가 아닌, 돈을 주겠다는 사람들의 수요에 따라 생긴 일에서 보람을 느끼기 어려워서일수도 있고, 머리를 쓰기보다는 직접 손으로 뭔가를 만들고 땀을 흘리는 일 자체가 하고 싶어져서일수도 있을 것 같다.  아니면 인간이 오랜시간 살아왔던 방식에 대한 향수일까.




  아무튼 국립중앙박물관에 다녀와서 그동안 내 삶이 원래 사람들이 살던 방식과 다른, 주위 환경과 계절, 이 땅, 지구, 나의 몸과 유리되어있는 삶이었다는 생각을 좀 하게 되었다.  그런게 우울증의 한 원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뭐랄까, 나 자신을 위해서 먹을 것을 마련하고 요리하고 옷을 만드는 삶에서 '나'는 굉장히 중요해진다.  나의 몸이 실제 노동을 행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또 그 모든 힘든 노동은 나를 유지하기 위해서 하는 일이니까.  


  그런데 돈을 벌기 위한 노동에서 '나'는 별로 중요한 존재는 아니었다.  어떤 서비스가 필요한데 그것을 직접 할 수는 없는 사람들이 돈을 제공하고 그 일을 할 사람을 구한다.  나는 돈을 받고 일을 해줄 수많은 사람들 중 하나였다.  '너 아니라도 일할 사람 많아' 이런 느낌이랄까.  더군다나 신입이었으니 나는 그 정도 싼값에 그 일을 해줄 사람들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었다.  


  일의 완성도를 평가하는 것도, 일의 결과를 누리는 것도 모두 돈을 지불한 '그 사람'이지, 나는 아니었다.  나는 일의 결과물이 아니라 돈을 받을 뿐이었다.  일하면서 나도 배움을 얻고 전문가가 되는 건 분명하지만 그 배움이라는 것 역시 수많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그 일을 해줄 때 더 능숙해지고, 더 많은 돈을 받을 수 있게 된다는 의미이지 진정한 의미에서 나를 위한 배움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일이었기 때문에 나는 항상 나 자신을 미워하고 혹사시켰다.  나는 내 노동을 일을 처음 시작해서 아무것도 제대로 못하는 나의 기준이 아닌, 돈 값어치로 평가했다.  '이따위로 일해놓고 너가 월급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니?  너가 지금 돈값을 한다고 생각해?'  상사들이 신입을 갈구는 말이었고, 내가 나 자신을 다그치는 말이기도 했다.  돈을 버는 것도 결국 나를 위한건데, 정작 대부분의 시간을 차지하는 노동 과정에서 '나'는 언제든지 더 일 잘하는 사람으로 대체될 수 있는 소모품 취급을 받고 있었다.  


  가끔 진짜 보람을 느끼는 일이 들어올 때도 있었고,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나 자신이 완벽하게 일을 처리하고 싶어서 밤을 샐 때도 있었다.  이런 직원이 유능하다고 평가받을까?  사회는 그렇지만도 않았다.  상사들은 그런 걸 원하지도 않았다.  '그 일은 얼마짜리밖에 안돼.  왜 거기에 시간을 그렇게 많이 써?  빨리 끝내고 돈 더 되는 이 일에 집중해!'  이게 내가 들은 말이었다.  결국 내가 뭘 원하는지, 내가 뭘 하고싶은지는 나의 노동에서 중요한게 아니었던 거다.


  그런 것들이 노동을 재미없게 만들고, 돈을 벌기 위해 감내해야 하는 고통스러운 대가라고 생각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돈을 많이 벌어서 주말에 취미생활을 하거나 맛있는 걸 먹으러 가거나 여행을 다니면 되는 거라고 생각했지만, 주중에 계속되는 야근과 스트레스로 피곤해진 나는 정작 주말에는 잠을 잘 수밖에 없었다.  일요일 즈음에는 상사의 카톡이 오기도 했다.  월요일 아침에는 무슨 일을 하게 될 테니 미리 좀 읽어보고 오라거나 하는.  그런 상황속에서는 여행조차도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기계에게 다시 힘들고 불쾌한 노동을 시키기 위한 배터리 충전 정도로만 느껴졌다.  평생 이런 일을 반복하면서 살게 될 테니 '아직 살지 않은 찬란한 미래'라는 것도 별로 기대되지 않았다.


  그래서 돈과 결부되지 않은 노동, 나 자신을 위해서 내가 주도하는 일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농업도 그중 하나였다.  휴식기가 끝나면 어차피 다시 돈과 결부된 노동으로 돌아가게 되겠지만, 그 전에는 나 자신을 치유하면서 나를 위한 노동을 한번 해보고 싶었다.   



        

도시농부학교 신청하기


  구청 홈페이지에서 자치센터 교육 프로그램을 알아보다가 우연히 발견한 것이 도시농부학교였다.  기초 이론을 배우고 실제로 텃밭에서 농작물을 가꾸어보는 수업이었다.  수강료는 무료.  다행히 정원이 남아있어서 바로 신청했다.  이번 기회에 배워두면 나중에 상자 텃밭이라도 꾸준히 가꾸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식물을 키워보고 싶다는 생각은 항상 했는데 그동안 미니 선인장, 난초, 완두콩을 모조리 말라죽게 만든 식포자(식물 포기자?)라 자신감 회복의 계기와 올바른 배움이 간절한 상황이었다.ㅠ   


*검색하다보니 도시농부학교를 운영하는 구청이 꽤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수업료는 무료이거나 5만원 이내 정도.  텃밭을 분양하는 곳도 있고 이론 교육을 같이 하는 곳도 있는 등 다양하게 운영되고 있다.  집에서 키우고 싶다면 상자텃밭도 추천.  구청에서 1만원 이내의 가격으로 분양해주는 곳도 많으니 일단 구청 홈페이지 방문.


*텃밭상자 만드는 방법은 https://brunch.co.kr/@jodosu63/33 에도 간단하게 나와있다.



(차랑 사탕은 간식...♡)

  이런 교재를 주는데, 교재에는 작물별 재배법, 날짜별 해야할 일들 등이 잘 설명되어있다.  교재 앞쪽에는 '서울특별시 도시텃밭지도'가 있는데, 서울 시내에 공영 79개소, 민영 70개소, 총합 149개소의 도시텃밭이 있다고 한다.  규모가 어떻게 되는지는 모르지만 생각보다 굉장히 많은 숫자였다.  


  식물을 키울 때 사용하는 단어들도 정리되어 있다.  '리틀 포레스트'에 나왔던 '아주심기'도 나와 있다.  아주심기: 모종이나 묘목을 일생동안 기르는 곳에 심는 것.   




  

  심기 전 준비과정


  텃밭의 잡초, 돌을 제거하고 복합비료, 석회, 유기농 퇴비를 밭 전면에 고르게 뿌린 다음, 삽이나 괭이를 이용해 비료 등이 흙과 잘 섞이도록 해줘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랑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랑이란 물이 잘 빠질 수 있도록 고랑을 파고 두둑을 만드는 작업이다.


  고랑과 두둑을 합한 것을 이랑이라고 한다.  위의 빨간 부분의 식물 사이의 간격을 '줄간격'이라고 하고, 그 너머의 옆쪽 식물과의 간격을 '포기 간격'이라고 한다고 한다.  상추, 쑥갓, 아욱 등 잎채소는 평이랑을, 고추, 토마토, 가지, 감자, 고구마는 골이랑을 만드는게 편리하다.


  이 작업들은 도시농부학교의 담당자 분들이 이미 해놓으셨다고.......


  사랑합니다!

      


첫번째 작물은 감자



파종 시기: 3월 하순 ~ 4월 초순

수확 시기: 6월 중순 ~ 6월 하순


감자 심는 방법


  (1) 씨감자 준비


  씨감자는 주먹만한 크기가 좋다고 한다.  감자의 움푹 들어간 곳(기부)의 반대편(정아부)이 싹이 나는 곳이라고 한다.  정아부를 중심으로 씨눈이 주변에 집중되어 있다.  정아부 둘레에 약간 파인 곳은 싹이 날 부분인데, 이런 부분이 1개 이상씩 되도록 유의하며 정아부에서 기부 방향으로 4등분한다.  4등분한 감자는 1주일~10일 가량 그늘에서 말린다.


  


  (2) 감자 심기


  감자는 고랑 부분에 심어야 한다고 한다.  왜냐하면 감자는 자랄수록 땅 위로 올라오는데 햇빛을 받으면 안 된다.  그래서 옆의 흙을 모아서 올라올 때마다 덮어줘야 한다.  깊이는 9~12cm 정도로, 절단면이 아래로 가게 묻어야 한다.  



  (3) 감자 관리


  씨감자의 눈이 많을 때는 감자 싹이 많이 돋아나는데, 실한 감자 싹 한두 개만 남기고 나머지는 제거해주는 것이 좋다고 한다.  그리고 감자꽃이 피면 꽃을 따주어야 한다.  감자꽃을 놔두면 나중에 감자열매가 달리는데 감자열매는 먹지 않는다.  그러니 감자꽃을 제때 따서 영양분이 우리가 먹을 감자들에게만 가도록 해주어야 한다.



  여기까지가 첫번째 시간에 배운 내용이다.  다음 실습 때는 이번주에 잘라서 말린 감자를 심으러 텃밭으로 간다.  처음에는 수강생 대부분이 나이가 많으신 분들이라 그런지 나 혼자 거기 앉아있는 것도 뭔가 어색하고 쑥스러웠다.  그런데 수업을 들으면서 그런 기분이 많이 사라졌다.  강사님이 도시농부학교를 왜 신청했냐고 질문하자 어떤 분들은 텃밭 농사를 지어보고 싶어서, 또 어떤 분들은 심심해서 라고 하시는데 다들 나랑 비슷한 생각에서 오신 것 같은 느낌이다.  PPT를 스마트폰으로 찍으려고 여기저기서 자세를 잡으시는 모습도 대학 다닐 때 우리가 강의 듣던 것과 똑같았다.  나이는 다르지만 우리는 그냥 다같이 학생인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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