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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지나무 Mar 25. 2018

우울증 환자를 위한 실전 매뉴얼(4)

우울증 치료의 목표 정하기

(침대에서 일어날 수 있거나 없을 때)


준비물: 한달 이상의 꾸준하고 느린 생각


그렇게 바쁘게 산다고 문제가 해결이 돼?



  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나에게는 하나의 스릴러였다.  진짜 살인범을 찾는 것은 영화를 보는 단 2시간만 중요한 일이지만, 남자친구와 함께 준비하던 시험에 남자친구만 합격하고 자신은 불합격해서 고향으로 내려와 무작정 농사를 짓기 시작한 한 여자의 결말이 어떻게 되는지는 내 인생과도 관련된 일이기 때문이다.  주인공이 결국 어떤 선택을 할지가 그렇게 미치도록 궁금했던 영화는 '리틀 포레스트'가 처음이었다. 


  영화를 보다가 재하의 말에 마음 한 구석이 묵직해졌던 것도 그때문일 것이다.  재하는 시험에 실패하고 내려와 여기저기 농사일을 도우러 다니고 음식을 하느라 바쁜 혜원이에게 이 말을 던진다.  "그렇게 바쁘게 산다고 문제가 해결이 돼?"


  이 장면에서 나도 너무 심하게 팩폭당해서 하마터면 울 뻔했다.-_-  혜원이도 표정이 어두워진다.  사실 이 영화에서 답을 아직 찾지 못한 것은 혜원이밖에 없다.  재하는 직업으로 농사를 짓기로 결심하고 회사에 사표를 내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은숙은 도시로 가고 싶어하긴 하지만 자기 고향에서 농협의 직원으로 일하면서 재하를 짝사랑하고 잘 살고 있다.  문제는 혜원이다.  혜원이는 과연 다시 시험을 준비하러 서울로 돌아갈까, 아니면 고향에 정착해서 재하처럼 농사를 지으며 살게 될까.  혜원이가 바쁘고 나름 재미있게 살고 있었지만 이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던 것이다.


  영화는 결국 답을 알려주지 않았다.  답을 알려줬다면 그건 그것대로 불만스러웠을까.  영화는 끝났는데 그 질문은 내 머릿속에 계속 남았다.  영화를 본 이후에 나는 매일 걷고 취미생활을 찾고 나름 바쁘고 재미있게 살았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내 머릿속 한편에서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작업대가 돌아가고 있었다.   


  내가 우울증을 치료하고 싶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들이 바로 우울증을 치료하면서 이뤄나가야 할 목표가 된다.      




우울증을 치료하고 싶은 이유 1:
정신과 육체의 고통 및 자살 충동에서 벗어나는 것


  일단 최우선의 이유는 우울증으로 인해 정신과 육체가 극도로 피폐해지고 끝내는 죽음외에 다른 건 바랄 수도 없는 지경에 이르는 과정이 너무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실제로 나는 이 브런치에 쓴 내용들을 실천하면서 심한 우울감에서는 벗어났다.  이제는 하루중에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시간이 거의 없다.  신기한 일이지만, 낮의 조용한 시간이나 밤에 잠들 때 신경쓰이게 들려오던 이명도 감쪽같이 사라졌다.  내 마음을 속속들이 뒤집어서 확인해볼 수는 없지만 일단 조금 괜찮아지기는 한 것 같다.


  우울증이 한순간에 완치되는 것도 아니고 떠나갔다가도 언제든 쉽게 돌아올 수 있는 병이니 이건 당뇨병 환자들이 매일 혈당 관리를 하듯이, 앞으로 살아가면서 매일 체크하고 관리해야 될 목표라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우울증을 치료하고 싶은 이유 2:
즐겁고 가슴 설레이는 소소한 일들을 매일 하는 것


  가슴을 짓누르던 심한 우울감에서 벗어난지 며칠째 되는 어느 밤에 가만히 생각해보았다.  지금 나는 행복한가?  고통에서 벗어나서 좋은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게 '행복'인지는 잘 모르겠다.  뭔가 애매한 기분인걸 보니 단지 우울감에서 벗어나는 건 우울증을 치료하고 싶은 이유의 전부가 아니었나보다.  


  우울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무조건 몸을 피곤하게 해서 몸과 마음을 정신 못차리게(?)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관심이 없더라도 무조건 어딘가에 갔다.  박물관에도 가고 야외로 여행도 가고 도서관에도 가고 공연도 보러 갔다.  3일 나가고 2일 쉬는 방식으로 끊임없이 다녔다.  (2일 중 하루는 브런치에 사진들을 정리하거나 글을 쓰고, 남은 하루는 그냥 쉬었다.  처음에는 다리가 너무 아파서 약간 절뚝거리면서 다닐 정도였기 때문에 쉴 수밖에 없었다.)


  서울 안에서만 다니다보니 금방 밑천이 떨어졌다.  그래서 서울 여행에 관한 책들을 10권씩 가져다놓고 가볼만한 곳들 리스트를 만들고 다이어리에 미리 일정을 적어두었다.  약도도 대충 그려놓았다.  하고 싶은 일들도 생각나는대로 적어놓았다.  취미생활을 위해 뜨개질을 가르치는 동영상을 보기도 했고 수채색연필 같은 재료들을 구입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날 잠들기 전에 문득 깨달았다.  내일이 기다려진다는 걸.  내일은 어디를 가기로 했고 거기엔 뭔가 재미있는게 있을지도 모르고, 모레는 주문한 색연필이 도착할거고 그걸로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거고, 그 다음날엔 어릴 때도 실패했던 뜨개질에 드디어 도전해볼 거고.......  대단찮은 것들이지만 나를 즐겁게 하고 가슴 설레이게 만드는 일들이었다.  그런 것들이 있어서 인생이 재미있고 내일이 기다려졌다.  


  내가 우울증에서 벗어나고 싶은 이유는 단지 우울감을 제거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이런 소소한 즐거움들을 누리고 싶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울증을 치료하고 싶은 이유 3:
인생 대부분의 시간에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것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우울감에서도 벗어나고 매일 재미있는 것들을 하며 정신없이 보냈지만 '이게 끝은 아닌 것 같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바쁘게 산다고 문제가 해결이 돼?'라는 재하의 팩폭은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나는 잡다한 취미생활로 바쁘고 즐거웠지만 아직 갈 길을 결정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나는 원래 준비하던 시험을 계속 준비하고 전공을 살려서 그 길로 계속 나아갈 것인지, 아니면 다른 길로 갈 것인지 결정을 하지 못했다.  어느 길을 선택하든 그 길로 나아갈 의욕이나 힘도 아직은 없었다.  그 문제까지 해결이 되어야 우울증에서 좀 벗어났다고 말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내가 우울증을 치료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이유이자 목표였다.


  나의 경우에는 직업이지만 이건 사람마다 다를 거라는 생각이 든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 정립일 수도 있고 직업 이외의 인생의 목표같은 것일 수도 있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우울증이 온 경우라면 그 문제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와 같은 것일 수도 있겠다.  무엇이 되었든간에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나의 우울증이 다 나았다고 보기 어렵다고 생각되는 것이 마지막 세번째 목표이다.


  이건 시간이 좀 오래 걸렸다.  우울증이 조금씩 나아지면서 내 머리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이 문제를 계속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그냥 내버려두었다.  파도가 일었다 스러지는 광경을 바라보듯 나는 이 문제를 제3자의 문제인양 그냥 바라보았다.  빨리 결정해야지, 이렇게 어영부영 시간 보내다가 내년 시험 준비도 늦어질지 몰라, 너 진짜 어떻게 할 생각이야......  이런 고민들은 접어두었다.  어차피 내 마음이 준비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재촉들이기도 했고, 죽음에서 간신히 살아돌아온 생존자에게 뭘 더 바라냐 싶기도 했다.  우울증 생존자인 나에게는 지금처럼 살아서 재미있는 일들을 하는 것 자체가 대단한 발전이었다.  나는 지금 당장은 나에게 그 이상 바라는건 무리라고 생각했다.    


  아니, 나는 나에게 뭘 바라는걸 그만두기로 했다.  예전에는 죄책감이나 불안으로 나를 정말 많이 혹사시켰다.  그 혹사의 시간들이 결국 우울증으로 돌아오고 한때는 나를 죽음으로까지 내몰았다.  그러면서 깨닫게 된 것은 내가 죄책감을, 불안감을 가지면 가질수록 나는 더 열심히 살게 되는게 아니라 그와 반대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어버린다는 것이었다.  그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라는 걸 10년 이상의 시간을 우울증으로 날린 다음에야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뭔가를 하고 싶어지면 하고, 정 하고 싶은게 생기지 않으면 그냥 부모님에게 평생 얹혀살기로 했다.  사지 멀쩡한 젊은 사람이 무슨 그런 생각을 하냐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우리 부모님에게는 자식의 시체를 치우는 것보다는 고생을 해서라도 살아있는 자식을 먹이고 입히는게 훨씬 행복하다고.  나는 가볍고 뻔뻔하게 인생을 살기로 결심했다.  나 자신을 위해서.


  그렇게 생각하면서 매일 매일을 우울감을 쫓아버리기 위해 열심히 살다보니 마음 속에서 조금씩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나는 '인생 대부분의 시간에 하고 싶은 일'을 찾을 때 성공 가능성 따위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시를 쓰고 싶으면 쓰는 거지 세상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시를 쓸 수 있을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우울증때문에 인생을 망친 이유가 바로 그거였기 때문이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생각하는게 아니라 무슨 일을 하든 남들에게 인정받고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  그게 내 인생을 오랜 시간 피폐하게 만들었던 주범이었다.  내 안에 있던 이런 우울증적 사고를 알아보고 하나씩 제거할 수 있게 되었다는 건 내가 그만큼 나아졌다는 증거겠지.  기쁘게 가시를 뽑아낸다.


  대신 내가 생각한 것은 내가 인생 대부분의 시간에 그 일을 즐겁게 할 수 있을지였다.  나는 시를 쓰는 것도 좋아하고 그림을 그리는 것도 좋아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에 그걸 할 정도로 좋아하지는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감정이 북받칠 때 시를 쓰고 그림을 그려서 감정을 풀어내는 것은 좋아하지만 그 다음에는 시나 그림 생각이 전혀 나지를 않는다.  그러면 취미생활일 수는 있어도 '인생 대부분의 시간에 하고 싶은 일'이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단념했다.


  그렇게 하나 둘 지워가다보니 결국 원래 내가 공부했던 전공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생각해보니 나는 처음부터 전공 공부를 싫어한 것은 아니었다.  그게 성공을 위한 도구가 되었을 때부터, 절대 단 한 번의 시험도 실패해서는 안 된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부터, 실패를 거듭해서 그게 나를 아프게 했을 때부터 싫어졌을 뿐이다.  그 분야에서 취직해서 나 스스로 뭔가를 이뤄내고, 인정받고, 감사의 인사를 받고 보람을 느끼고, 밤을 새워도 즐겁게 일했던 기억도 분명히 있다.  이런저런 생각끝에 나는 그 길을 다시 가기로 마음속으로 결정을 했다.


  결정하고도 한동안은 내버려두었다.  갈 길을 결정했다고 해서 그 길로 나아갈 의욕이나 용기가 한순간에 생기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랜시간 투병하면서 공부나 일에 필요한 많은 능력들을 잃은 상태이기도 했다.  우울증에서 점점 벗어날수록 오랫동안 사라졌던 의욕과 용기, 집중력이나 다른 능력들이 서서히 돌아올 것이라고 믿는다.  '이것까지 완벽하게 해버리면 우울증에서 너무 빨리 낫는거잖아.  그래서는 곤란해.'라는 조금 우스꽝스러운 생각을 하면서 천천히 나를 기다려주고 있다.           

       


   

  처음에는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는 것조차 힘이 든다.  그럴 때는 목표같은 건 생각하지 말고 그냥 오늘 어디에 가서 뭘 보고 올까 하는 생각만을 하는게 나을 것 같다.  조금씩 회복되어 약간의 의욕도 생기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에 생각이 닿을 수 있게 될 때 이런 목표를 세우기 시작하면 된다.  나는 왜 우울증에서 벗어나고 싶은걸까.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게 되면 우울증이 다 나았다고 생각할 수 있는걸까.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자기만의 목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답을 찾으면 그걸 이정표삼아 나아갈 수 있게 된다.  우울증이라는 건 결국 바다에 치는 폭풍우나 암초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우울증 자체와 싸우기 위해서 사는게 아니라, 인생이라는 항해 도중에 우울증을 만나 방해를 받은 상태인 것이다.  우울증이 방해인지, 아니면 그동안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던 배를 새로운 곳으로 돌릴 계기인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인생의 목표를 다시 세우게 되면 우울증을 이겨낼 힘이 조금 더 생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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