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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지나무 Mar 23. 2018

여행치료: 국립중앙박물관(2)

선사시대,  고조선 이전


  맨 처음 들어간 곳은 오른편 첫번째, 선사고대관이었다.



  들어가자마자 어두운 공간 속에서 암각화가 그려진 거대한 벽이 모습을 드러냈다.  벽을 가득 채운 고래와 물고기들, 사슴같은 것들을 보는 순간 이상하게 뭔가 울컥했다.  우울증 환자 특유의 감수성이 폭발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뭔가가 내 마음을 무겁게 치는 느낌이었다.  


  바위에 저 그림을 새긴 것은 지금의 나와 같은 어떤 사람이었다.  아니, 아마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그림을 그리던 사람이 먹을 것을 구하러 나갔다가 멧돼지에게 받혀 죽었거나 급류에 휩쓸려 떠내려갔다면 다른 사람이 이어서 그렸을 테니까.  처음부터 여러 사람이 그렸는지도 모르겠다.  "야, 니가 그린 고래는 이상한데?  이거 봐, 내가 새긴 고래가 더 실물에 가깝다고."  이런 대화를 나누면서.


  아무튼 그 사람들은 고래를 사냥했을 것이다.  실제로 잡아보지 않았다면 바닷속에 있는 고래를 저렇게 세밀하게 그릴 수 없을 테니까.  그리고 커다란 고래를 양껏, 맛있게 먹었을 것이다.  고래고기가 맛이 없었다면 다음번에도 고래를 잡을 수 있기를 희망하면서 저런 그림을 열심히 돌에 새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해가 떠 있는 동안 그림을 새기고 석양이 오기 시작하면 잠을 자러 갔겠지.  내일 다시 눈뜰 수 있기를 바라면서.       


  수만년간 사람은 그렇게 살아왔다.  우리도 어릴 때는 그렇게 살았다.  눈을 뜨자마자 온 세상을 다 뒤집어 엎을 것처럼 관심을 끄는 것들을 찾아내 놀이를 하고 때가 되면 맛있게 밥을 먹고, 멸치 반찬을 좋아하면 스케치북에 멸치 그림을 실컷 그려보기도 했다.  그리고 밤이 되면 새근새근 잠을 잤다.  그게 사람의 원초적인 삶의 모습이다.


  그런데 나는 우울증에 걸린 이후로 그렇게 주어진 생명과 시간과 공간을 마음껏 누리는 삶을 사는 방법을 잊어버렸다.  우울증이 온 이후의 나의 일상은 이렇다.  아침이 되면 눈을 뜬다.  눈을 뜨면 비참한 현실과 버거운 일들, 안좋은 기억들이 떠오른다.  꿈 속에서는 괜찮았는데 눈을 뜨고 나면 '쓰레기인 나'와 대면해야 한다.  내가 만들지 않은 아침밥을 먹는데 입맛도 나지 않는다.  내 몸이 이런 음식을 먹을 가치가 있는지도 의심스러워서 묘한 죄책감이 생긴다.  그렇게 아침을 먹고 학교에 가거나 직장에 간다.  아침 햇살 속에서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걸어갈 때는 잠시 기분이 좋아진다.  뭔가 즐겁다.  나는 책상에 앉아서 공부를 하거나 일을 한다.  그렇게 어찌어찌 하루를 보내고 나면 밤에는 별로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는 야식거리를 하나 사들고 들어오지 않을 수 없다.  힘든 하루를 보내고 위안이 되는 건 잠깐 혀를 즐겁게 해줄 무언가 먹을거리뿐이다.  야식으로 배를 채우고 뭔가 개운하지 않은 기분으로 잠자리에 든다.  적막감, 외로움, 우울감, 불안감 같은 감정들에 시달리다가 겨우 잠이 든다.  내일 눈을 뜨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암각화 사진으로 채워진 벽을 바라보면서 나는 다시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저렇게 날카로운 돌조각을 나무 막대기 끝에 꽂아서 창처럼 사용하기도 했고 돌의 면을 날카롭게 만들어 무언가를 뚫거나 새기는데 쓰기도 했다.  보온을 위한 털도 충분하지 않은 피부와 동물들만큼 빨리 달릴 수 없는 다리를 가진 인간이 뭔가를 사냥하고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해서는 특단의 대책을 강구해야만 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주위에 널려있던 돌을 생각해냈다.  돌을 쥐고 가공할 수 있을만큼 유연한 긴 손가락이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단지 먹이를 구하는데만 돌을 사용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뭔가를 그리고 기록하고 남기고 싶어했다.

  



  국립중앙박물관에는 시각장애인의 관람을 위한 이런 모형이 곳곳에 놓여있다.  더 많은 유물 모형이 있으면 좋겠지만, 각 구역마다 대표적인 유물 하나를 만져볼 수 있도록 만들어놓은 것 같다.  이용하는 사람이 없길래 나도 눈을 감고 모형을 만져보았다.  면과 날카로운 부분들을 직접 만져보니 느낌이 달랐다.  실제로 내가 이것을 쥐고 뭔가를 찍는 느낌이랄까.  그 당시의 사람들은 이런 도구를 손에 쥐고 얼마나 든든하고 뿌듯해했을까.  그들은 이런 도구로 그동안 잡지 못했던 새로운 먹이를 찾고, 그동안 엄두도 내지 못했던 맹수에게도 대항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이런 도구가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해주는 소중한 물건이었을 것이다.  



(이런 얇고 작은 돌들을 묶어 그물을 만들기도 했다.)



  사람들은 조개도 먹고 열매도 갈고 도자기도 만들었다.  그들은 열매를 다른 방식으로 먹거나 보관하거나 다른 음식을 어디에 담거나 하고 싶었다.  열심히 생각해보니 이러저러하게 생긴 물건들이 있으면 열매를 갈고 음식을 보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들은 돌이나 흙을 이용해서 자기들이 상상한 물건을 만들기 시작했다.  수도 없이 실패하고 몇 세대가 지나서야 드디어 성공했는지도 모른다.  


  그것을 처음 만들어낸 사람은 얼마나 기뻤을까.  자기가 만든 것을 주위에 자랑하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그 물건을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는지 시범을 보였을 것이다.  사람들은 너도나도 그것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겠지.  처음 물건을 만든 사람은 아마 만드는 방법을 처음부터 가르쳐주었을 것이다.  다들 모여앉아서 처음 만들어낸 사람의 손놀림을 집중해서 쳐다보면서 촉촉한 흙을 쌓아올리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다들 자기만의 작품을 만들어냈지만 그대로 만족하지는 않았다.  밋밋한 모습이 뭔가 허전해보인다.  강물이나 바다에도 물결이 치고 땅에도 흙과 모래가 어떤 모양을 이루고 있고 햇살도 반짝거리고 바람이 불면 나뭇잎들도 스스스 소리를 내며 흔들리는데 그릇의 표면은 너무 단순하다는 생각이 들었을까.  그래서 흙을 빚은 다음 표면을 긁었다.  물결 같기도 하고 바람에 따라 일제히 방향을 바꾸는 풀들 같기도 하고 구부러지면서 이어지는 길 같기도 하다.  


  자연에는 각진 것이 별로 많지 않은데 그들은 왜 각진 무늬를 넣었을까?  물결처럼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기보다는 각지게 그리는게 편해서 그랬을까?  긁은게 아니라 얇은 나뭇가지같은 것으로 찍어서 만든걸까?  아니면 직선을 그으면서 어떤 만족감을 느꼈기 때문일까? 

      

  그 당시 실제 그릇의 무늬가 이렇게나 선명한 것도 놀랍고 무늬의 간격이 거의 일정하다는 것도 놀랍다.  무엇보다도 그릇이 참 잘생겼다.  최근에 민속품들을 파는 가게를 지나친 적이 있는데 현대인들이 생산한 그 가게의 그릇들보다 이 토기가 훨씬 모양이나 무늬가 아름다웠다.  




  이건 어느 무덤의 부장품들이다.  그들은 무덤에 이렇게 예쁜 돌덩이나 꾸미개들을 넣었다.  돌덩이를 넣은 사람들의 기분이 이해가 된다.  소중한 사람을 위해서 가장 예쁘고 좋은 것들을 넣어주고 싶다는 소박한 생각.  


  어릴 때 인형을 데리고 장례식 놀이를 한 적이 있다.  그때 어린아이였던 나는 자연스럽게 무덤에 부장품을 넣었다.  부장품을 넣어야 한다는 관습을 알았던게 아니다.  그냥 생을 마감한 인형에게 뭔가 예쁘고 좋은 것들을 넣어주고 싶다는 자연스러운 충동이 생겼다.  젤리처럼 투명하고 단단한 붉은 빛이 도는 긴 지우개와 속에 꽃잎 모양이 있는 동그랗고 길쭉한 지우개를 넣었다.  그 당시에는 가장 예쁘고 좋아보였던 것들이다.  돌덩이들을 보니까 그 생각이 났다.  




  토기를 이용해서 만든 이런 사람 얼굴모양의 작품들도 나온다.  이게 사람의 얼굴이라고 다들 생각한다.  어디 써놓은 것도 아니고 단지 세 개의 구멍일 뿐인데 얼굴 모양이라고 알아보는게 조금 신기하다.  눈을 세로로 길쭉하게 파놓기도 했고 동그랗게 뚫어놓기도 했다.  입 모양도 조금씩 다르다.  웃는 모양을 그려놓기도 했다.  뭔가 놀란듯한 얼굴 같기도 하다.  양쪽으로 있는 구멍은 귀를 표현한 것일까?  




  가지무늬 토기라고 한다.  이게 가지무늬라는 건 사람들이 붙인걸까 아니면 실제 가지모양이었을까.  가지가 그때도 한반도에 있었나.  왜 하고많은 것들 중에 가지였을까?  신사임당의 초충도나 그런 그림을 연상시키는 것같은 무늬이다.  어떻게 만들었는지는 몰라도 요즘 나오는 화병들과 비교해도 충분히 아름다운 토기들이다.  실제로 사용해도 될 것처럼 튼튼해보이기도 한다.  


  여기까지가 선사관.  뭔가 내 안에 잠재되어 있는 인간의 원류를 더듬어 찾아가는 기분이었다.



*이 글은 국립중앙박물관에 대한 소개글이나 감상문이 아니라 개인적인 목적의 우울증 치료용 글이기 때문에 의식의 흐름대로 생각나는 것들을 자연스럽게 썼습니다.  특별히 뭔가를 전달하려는 글이 아니라 읽기 불편하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국립중앙박물관을 직접 방문하셔서 자기만의 감상문을 써보시는게 더 나을 수도 있어요.  치료용 글쓰기의 예시로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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