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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지나무 Apr 02. 2018

우울증 환자를 위한 실전 매뉴얼(5)

휴직(휴학)이 고민될 때

(침대에서 일어날 수 있거나 없을 때)


준비물: 스마트폰, 다이어리, 약간의 깊은 생각



미션 1: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그만두고 쉴 것인지 결정하기
   

  처음에는 가벼운 우울감에서 시작한다.  그렇게 우울감이 조금씩 쌓이다보면 어느날 '아, 이거 우울증이구나'하고 자각하는 순간이 온다.  내 안의 우울증이라는 병을 자각한 순간, 바로 그때가 치료가 필요한 시점이다.  가벼운 우울감이나 약간의 스트레스를 받는 단계에서는 좋아하는 음악을 듣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재미있는 데이트를 하고 오는 걸로도 우울감을 떨쳐낼 수 있지만, 우울증이 시작되면 그렇게 쉽게 벗어날 수가 없다.  그때는 본격적으로 내 마음을 마주하고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


  치료를 하기 위해서는 치료를 하기 위한 시간, 치료에 도움이 되는 장소와 기타 방법들이 필요하다.  예를들어 심한 독감에 걸렸다면 약과 며칠간의 휴식과 비타민C, 그리고 심한 경우 병원에 입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암에 걸린 경우라면 항암치료를 하기 위해 직장을 휴직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할 거고, 어느 병원에서 혹은 다른 공간에서 어떻게 투병할 것인지 계획을 세워야 할 것이다.  




  우울증도 마찬가지다.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서 일단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그만두고 쉬어야 할지를 결정해야 하고, 어느 병원에 다닐지, 어떻게 치료를 할지를 미리 계획할 필요가 있다.  우울증에 걸렸다고 자각할 정도라면 이미 마음이 많이 시달린 상태이기 때문에 일단은 직장이든 학교든 그만두고 한동안 푹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게 정상이다.  마음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라면 일단 충분한 휴식과 치료할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울증 환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일상생활을 유지하는 것'이지 뭘 해야할지 몰라서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는 휴식이 아니다.  단순히 번아웃된 상태라면 적당한 휴식으로 치유될 수 있겠지만, 우울증 환자는 번아웃과는 상황이 조금 다르다.  우울증 환자는 이미 부정적인 사고에 상당히 침식된 상태에 있고, 우울증 환자를 괴롭히는 것은 외부 환경이 아니라 바로 자기 머릿속의 이 우울증적 사고이다.  


  그런데 이런 우울증적인 사고활동은 일을 하든 집에 누워서 휴식을 취하든 상관없이 이루어진다는게 문제다.  당신이 온갖 진상들에게 감정노동을 제공하고 매일 계속되는 야근으로 지쳐 쓰러져서 집에 돌아오는 상황이든, 아니면 코타키나발루의 해변에서 석양을 감상하는 아름답고 여유로운 상황이든, 당신은 당신 내면의 우울증적 사고작용 때문에 고통받게 된다.  암 투병중인 사람이 회사에 다니든 집에 누워있든 죽음의 공포와 육체적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번 우울증에 걸리면 쉽게 벗어나기 힘든 이유는 우울증 환자들이 대개 다음과 같은 연쇄작용을 거치면서 중증 우울증으로 빠져들어가기 때문이다.               

  우울증 환자들도 이런 연쇄작용의 한가운데에 있다는걸 알기 때문에 그 사이클을 끊고 싶어한다.  그래서 우울증으로 집중력, 의욕이 상실된 단계에서 업무성과나 성적이 더 떨어져서 더 우울해지는 단계로 넘어가지 않도록, 일단 회사나 학교를 쉬는게 낫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쉬면서 우울증을 치료하면 자신의 능력이 다시 회복될거고 능력이 회복된 다음에 회사나 학업으로 복귀한다면 다시 괜찮은 업무성과, 성적을 낼 수 있을 거고, 그러면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할 수 있다.


  이런 생각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우울증이 일이나 공부, 인간관계에 필요한 우리의 능력들을 상당히 갉아먹기 때문에 일이나 학업, 인간관계를 계속 이어나간다면 원하는 성과를 얻지 못할 수밖에 없다.  그런 실패는 더 큰 우울증을 불러올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는 회사를 잠시 쉬고 휴학을 하고, 대인관계를 피하는게 낫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우울증은 몸과 마음에 여유가 생길수록 악화되는 특성을 가진 병이라는 점이 문제다.  어떤 경우에는 스트레스를 주는 상사에게 갈굼당하고 창피를 당하고 화장실 갈 여유도 없이 밀린 업무를 처리하는게 오히려 우울증적 사고를 잠시 멈추게 해주기도 한다.  외부의 일로 스트레스를 받고 바빠지면, 머리는 일단 외부의 일에 대응하고 처리하기에 바빠서 그것보다 덜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내면적인 잡생각은 미뤄두게 된다.  


  하지만 급하게 닥쳐오는 외부의 일이 사라지고 내면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되면 우리의 머리는 다시 급속도로 우울증적 사고회로를 돌리기 시작한다.  바쁠 때는 잊고 있었던 나쁜 기억들과 열등감을 느끼는 일들, 나의 비참한 처지나 상황, 이미 치른 시험 결과에 대한 걱정, 어딘가 마음이 식은 것처럼 느껴지는 연인의 태도에 대한 불안, 예전에는 나보다 못했지만 지금은 굉장히 성공해있는 친구, 그때는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분노가 치솟는 일들 등등.  이런 것들이 차례로 생각나고 각 생각들은 햄스터가 쳇바퀴를 돌듯 우울증적 사고회로 속에서 맴돌며 엄청나게 커져간다.  


  시작점은 연인이 카톡에 답장을 늦게 보냈다는 단순한 사실이었는데, 이런 과정을 거치다보면 내 마음은 어느새 연인이 이미 마음이 식어서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걸 '확신'하는데까지 이르러있다.  (이 정도 신통력이면 강남역에 돗자리깔고 1년이면 건물주가 되고도 남을 듯-_-)  그리고 있지도 않은 배신과 이별에의 예감으로 눈물을 뚝뚝 흘리고 고통스러워하게 된다.  때로는 연인이 마음이 식은 이유는 내가 무능하고 못생겼고 주제에 성격까지 더럽기 때문이라고 자학하기도 한다.  여기까지 오면 우리는 멈추고, 생각해야 한다.  '아, 그분이 오셨구나.'




  그래서 우울증 환자에게는 뇌가 저런 땅굴파기를 하지 않도록 주의를 돌릴만한 일들을 많이 만들어주는게 필요하다.  그중 핵심이 일상생활을 유지하는 것이다.  밤 11시쯤에는 잠자리에 들고, 아침 7시쯤에는 잠자리에서 일어나고, 일어나면 씻고, 빵이든 밥이든 주스든 무엇이든 먹고, 낮 12시쯤에는 점심을 먹고, 저녁 7시쯤에는 저녁을 먹고, 씻고, 밤 11시쯤에는 다시 잠자리에 든다.  하루를 이렇게 분명하게 구획해놓고 그 사이사이를 걷기, 햇빛 쬐기, 바람 쐬기, 공부, 일, 취미생활, 놀러가기 같은 것들로 조금씩 채워나간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만큼 힘들면 다른 것들은 다 안해도 좋지만, 취침시간, 밥 먹는 시간만큼은 정말 무조건 지켜야 한다.  일상의 기본적인 틀이 무너지면 생체리듬이 망가져 뇌뿐만 아니라 몸까지 합세해서 같이 땅굴을 파게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우울증 치료의 핵심은 일상의 틀을 지키고, 그 틀 안에서 뇌의 주의를 돌릴만한 여러가지 일들을 조금씩 채워나가는 것이지, 틀을 무너뜨리면서 쉬는 것이 아니다.  휴식은 외부의 일로 뇌가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아서 틀 자체를 지켜내기 힘들 때, 혹은 외부의 일이 지나치게 많아서 취미생활이나 걷기, 바람 쐬기, 놀러가기 같은 것들을 틀 안에 끼워넣을 수 없을 때 필요한 것이라는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


  나같은 경우에는 우울증으로 힘들 때마다 휴학, 퇴사라는 결정을 내렸고 그때마다 정말 밑바닥이 없을 것 같은 땅굴을 팠다.  휴학은 반복되었고 나중에는 인생 자체를 멈추고 싶어졌다.  사실 휴학이나 퇴사, 휴직은 진짜 휴식이라고 할 수도 없다.  휴학, 퇴사, 휴직을 하면 그때부터 새로운 걱정과 불안, 고민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남들보다 1년 뒤쳐진 것을 어떻게 만회하지, 취직할 때 나이가 너무 많아지는게 아닐까, 취직할 때 자기소개서에 이 공백을 어떻게 변명하지, 회사를 그만둔건 속시원하지만 다시 취직이 될까, 이 나이에 이 정도 경력으로 재취업이 될까, 지금은 휴직해서 좋지만 다시 저 지옥같은 회사로 돌아가야 하나, 돌아가지 않으면 앞으로 뭘 해서 먹고살까, 남들은 저렇게 회사 잘만 다니고 잘 사는데 왜 나는 이렇게 못나고 초라할까.......  어떤 의미에서는 우울증 시즌2의 개막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을 그만두고 우울증 치료에 집중해야 하는 상황이 분명히 존재한다.  아마 여기까지 읽었다면 스스로 어느정도 답을 찾았을지도 모른다.  한 가지 기준을 제시한다면, 이런 기준으로 휴직 여부를 결정할 수 있을 것 같다.



현재 하는 일때문에 죽고 싶다는 생각을 진지하게 한 적이 있는가?
있다면 그만둬야 한다.  

          


  죽고 싶다는 생각을 진지하게 한 적이 있다면 그 일은 이미 당신의 '틀'을 무너뜨리고 있다.  당신은 이미 무너진 것이다.  그럴 때는 그 일을 잠시 쉬면서 다시 일상을, 당신 자신을 재건해야 한다.  단, '그만두려고 생각하는 일'과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일'은 같은 것이라야 한다.  예를 들어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일은 연인과의 이별인데 직장을 그만두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실연의 고통이 아무리 크더라도 직장 자체에서는 별 문제가 없다면, 직장에 계속 다니면서 일상을 유지하고 아픈 마음을 치유해나가는게 훨씬 도움이 된다. 


  죽음을 생각했다면, 휴학이나 휴직으로 인한 후폭풍도 심각한 것은 아니다.  어차피 당신이 죽으면 지위든 명예든 돈이든 아무 소용이 없다.  진지하게 죽음을 생각한 사람은 그대로 내버려두면 자살준비로 나아가게 되고, 그러다가 자살시도에까지 나아갈 수도 있다.  죽음을 생각했다면 실제로 자살시도를 했든 안했든간에 당신은 이미 한번 죽었다 살아난 것과 같다.  지금 당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가 무너져서 붕괴 잔해물 속에 3일 동안 갇혔던 당신은 간신히 구조되어 살아났다.  그렇게 살아난 순간 당신의 기분은 어떨까?  당신 마음속에 아파트가 붕괴되기 전 확인했던 대학의 불합격 통지가 들어있을까?  아파트 붕괴로 전재산을 잃어버린게 가슴아플까?  아마 둘다 아닐 것이다.  살아났다는 안도감, 뭔가 과거는 죽고 새롭게 태어났다는 묘한 느낌을 가질 것이다.  죽음을 생각한 당신도 그와 같은 상황에 있다.  가진 걸 잃을지도 모른다고 불안해할 게 아니라, 아예 다 잃었다고 생각하고, 다 놓아버리고 당신 자신을 재건하는 일만 생각해야 한다.




  죽음까지 생각한 적이 없다면, 일을 당장 그만둘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현재 상황에 대한 평가는 필요하다.  일에서 겪고 있는 문제들이 심각한 스트레스를 주는 정도인지, 내가 이 문제를 감당할 수 있는지, 감당하고 싶은지, 어떤 방식으로 감당할 수 있을지, 이 문제가 현재 다니고 있는 이 직장에 특수한 것이고 이직이나 다른 일을 시작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는지 같은 것들을 충분히 고민할 필요가 있다.  


  고민할 때 주의할 것은 '남들이 다 견디고 있는지'는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남들이 다 견디니까 나도 견뎌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간 조만간에 죽음을 생각하는 단계로 가게 된다.  남들이 다 견뎌도 나는 못견딜 수 있다는 것, 그게 내가 나약하거나 문제있는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참을 수 없을만큼 싫은게 사람마다 달라서라는 것, 아프다고 느끼는건 아직 그걸 느낄만큼 내 마음의 조직이 괴사하지 않았다는 증거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미션 2-1: 쉬기로 결정했다면, 어떻게 쉴지 계획세우기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단순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는게 아니라 일상의 틀을 조금씩 채워나가야 한다.  여러개의 풍선들을 한데 묶어놓고 당신은 그 끝을 잡고 하늘을 날아가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풍선 한두개가 터지더라도 남은 풍선들이 당신의 몸무게를 지탱하기에 충분하다면 당신은 계속 살아나갈 수 있을 것이다.  


  우울증 치료도 마찬가지이다.  우울증으로 인해 당신의 삶을 지탱하기 위한 풍선들이 점점 터져나가고 있는 상황이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울증 자체를 치료하기 위한 작업도 해야하지만, 동시에 풍선 수를 늘리는 작업도 해야 한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우울증이 아무리 풍선을 터뜨릴지라도 동시에 충분한 풍선을 계속 추가할 수만 있다면 우울증이 어떻든 상관이 없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풍선 수가 많아질수록, 당신의 일상을 지탱해주는 것들이 많아질수록 우울증이 줄어들기도 한다.  일상의 틀을 채워나간다는 것은 이런 의미이다. 


  다이어리 하나를 사서, 다음과 같은 계획을 대충 세워놓은 후 휴직 또는 휴학하는 것을 권한다.




  (1) 휴직 또는 휴학 기간


  최소 1개월에서 최장 6개월 정도가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죽음까지 생각할 정도로 심각한 상태인데 1개월도 안 되는 기간은 너무 짧고, 6개월을 넘어가버리면 세상으로부터 소외된 상태가 너무 길어져 우울증 치료에 좋지 않다.  단, 어학연수나 유학, 대학원 과정, 취미생활을 배우기 위한 학원이나 문화센터 프로그램, 새로운 사업기회 탐색 등 확고한 계획이 있는 상태라면 1년까지도 괜찮다.



  (2) 병원과 상담받을 곳 결정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할 정도라면 일단 병원을 방문해서 약물치료를 시작하는게 좋을 것 같다.  약물치료와 함께 상담치료를 병행하는 것도 괜찮다.  약물치료나 상담치료에 회의적인 생각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병원을 찾아가는 것의 가장 큰 장점은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는 점이다.  우울증은 결국 스스로 자기의 문제를 해결하는 작업을 거쳐야 나을 수 있는 병이지만, 혼돈과 고통의 한가운데에 있을 때에는 그런 작업을 수행할 힘이 없다.  그럴 때는 도움을 받아야 하고, 가장 먼저 찾아가야 할 곳은 병원이라고 생각한다. 


*참고: https://blog.naver.com/leeojsh/220852877049


  심리학을 전공하고 현재 심리상담센터를 운영하고 있으며, 우울증을 포함한 마음의 병에 관한 블로그로 유명한 '서늘한 여름밤'님의 블로그에 있는 '심리상담센터/정신과 추천지도'이다.  실제 방문했던 사람들의 추천을 받아 만들어진 지도라고 하니 참고할만 할 것 같다. 

           


  (3) 우울증을 치료할 동안 머물 곳 결정하기


  가장 이상적인 것은 '집'이다.  여기서 말하는 '집'이란 아무런 대가없이 당신을 보살펴줄 수 있는 가족이 있는 곳을 말한다.  부모님 집일 수도 있고, 부모님이 오히려 상처를 주는 존재라 불편하다면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계신 집으로 가는 것도 방법이다.  당신이 일상을 유지할 수 있도록 아침에는 깨워주고, 밤에는 자라고 적당히 잔소리도 해주고, 청소 좀 하고 살라고 혼내고, 제때 밥을 챙겨먹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환경이 이상적이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 중에는 주위 사람들, 특히 부모님과 같은 가족에게 우울증에 걸린 사실을 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우울증이라는게 우리 사회에서 무슨 문제가 있는 병인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이기도 하고, 부모님이 걱정하실까봐 말을 못하기도 한다.  하지만 휴직을 할 정도의 상태라면 말을 해야 한다.  도움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정서적인 도움보다는 물질적인 도움이 필요하다.  우울증을 치료할 동안의 생계, 치료비, 교육이나 취미생활을 위해 필요한 비용같은 도움일수도 있고, 하루 세끼 밥을 챙겨주거나 청소와 빨래를 대신 해주는 도움일수도 있다.  우울증이 심할 때는 침대에서 일어나거나 씻는 등 일상생활조차 힘들 수 있기 때문에 가족의 도움이 정말 필요하다.  


  가족이 오히려 상처를 주는 경우라면,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서처럼 가까이서 친구나 친척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에서 혼자 거주하는 것도 괜찮다.  집밥같은 건강한 식사를 할 수 있는 식당이나 반찬가게를 미리 알아두고 근처에 살 곳을 구하는 것도 방법이다.  이 경우의 장점은 환경을 바꿔볼 수 있다는 점이다.  발길 닿는대로 돌아다니다가 골목길이 마음에 든 곳에 방을 구할 수도 있고, 아무 생각없이 떠난 여행에서 그대로 눌러앉아 몇달 살아볼 수도 있다.  단, 병원은 가까워야 한다는 점은 명심하자.




  (4) 휴직(휴학) 기간 동안 방문할 곳 20곳 이상 정해놓기     


  1개월 쉰다면 12곳, 2개월 쉰다면 24곳, 3개월 쉰다면 36곳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한달에 12곳 정도 방문하는 걸 기준으로 계획을 짜보자.  장소는 박물관, 미술관, 음악회, 도서관, 번화가, 산, 바다, 놀이공원, 벽화마을 등 구체적으로 정하는게 좋다.  평소에 잘 가지 않는 곳, 많이 걸을 수 있는 곳 위주로 짠다.  인터넷에 검색해도 되고 도서관에 가면 각 지역별 여행지를 소개해놓은 책들도 있다.  리스트를 만들고, 다이어리에 1주차, 2주차, 3주차에 각 어디에 방문할지를 대충 적어놓는다.   


  그밖에 배워볼만한 것들 리스트도 작성해본다.  도예, 미술, 시낭송, 뜨개질, 텃밭 가꾸기, 서예, 발레, 한국무용, 해금, 바이올린, 피아노, 가죽공예, 목공예, 스케이트, 요리, 옷 만들기......  어릴 때 배웠거나 배우고 싶었던 것들이나 블로그에서 다른 사람들이 배우는걸 흥미있게 봤던 것들을 적어본다.  생각이 잘 나지 않으면 이마트나 백화점의 문화센터, 자치센터의 수강신청 목록을 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인터넷에 검색해보고 여러 경로로 찾아봐서 배울 수 있는 곳, 수강신청 기간까지 다이어리에 적어놓는다.


  실제로는 이 리스트대로 전부 실행할 것은 아니다.  중간에 더 하고 싶은걸 발견할 수도 있고, 하고 싶은 것 한 가지를 찾아서 그것만 계속 할 수도 있다.  리스트에 있는 것들을 복직 또는 복학하고 난 이후에 슬슬 실행하거나 다닐 수도 있다.  하지만 늘어지기 쉬운 첫 3주차 까지는 분명한 계획을 세우고 그대로 꼭 실천하는게 좋다.   

 


미션 2-2: 계속 해나가기로 결정했다면,
어떻게 치료를 병행할지 계획세우기


  (1) 하루에 한 가지 나를 위한 일 정해서 하기


  건강을 생각해서 야식 안 먹는 날, 샐러드 먹는 날, 치느님 영접하는 날, 건강때문에 평소 참았던 음식 먹는 날, 야외에서 피맥하는 날, 좋아하는 음악 1시간 동안 듣는 날, 회사 근처에 안 가본 골목길 탐방하는 날, 퇴근하고 집에 바로 안 가고 카페가서 책 읽으면서 차 마시는 날, 과일 사러 가는 날 등등.  


  좋아하는 일이나 하루만 딱 참아야지 싶은 것들, 재미있을 것 같은 일들을 다이어리에 적어놓고 실천해본다.  꼭 어딘가 멀리 떠나야만 여행이 되고 기분이 풀리는 것은 아니다.  꾀죄죄하고 삭막해보이는 회사 근처의 골목길을 걸어보는 것도 20분간의 여행이 될 수 있다.  고양이를 만날 수도 있고 예쁜 모자를 파는 가게를 볼 수도 있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잠깐이나마 기분을 풀어줄 일, 미리 정해놓고 쉽게 실천할 수 있는 소소한 일들을 하다보면 스트레스가 해소된다.


  주말에는 위의 (4)번에서처럼 가볼만한 곳을 정해놓고 피곤해도 한번 속는셈치고 나가보는 것도 괜찮다.  취미생활도 찾아서 평일 저녁이나 주말에 수업을 듣거나 유튜브로 배워보는 것도 좋다.   


   참고로 우리 부모님은 평생 여행에 관심이 별로 없고 여행의 효용에 대해서도 굉장히 회의적인 분들이었는데 주말에 수원 화성에 한번 다녀온 이후로는 여행에 눈을 뜨셨다.  그동안 우울증때문에 힘들어하는 자식을 보는 것때문에 꽤 스트레스가 많으셨을 거란 생각도 든다.  그래서 지금 우리 가족은 매주 가볼만한 곳들을 찾아보고 정해놓는다.  그러면 일주일 동안 뭔가 설레고 기대가 된다.  주말에 다녀오고 나면 온가족이 기분전환도 되고 다음 일주일 동안 계속 이야기할 화젯거리도 생겨서 재미있다.  무엇보다도 그런 기분좋은 경험들이 내면의 힘이 되어주는 느낌이다.  



  (2) 병원과 상담받을 곳 결정


  가벼운 우울감이 있는 상태라면 일단 (1)번 대로 실천해볼 것을 권한다.  그렇게 3주 이상 실천했는데도 여전히 우울감이 계속된다면 병원에 찾아가는 걸 추천한다.  그때는 전문가의 도움을 구할 필요가 있다.  우울증은 초기에 제대로 치료하면 나중에 재발될 확률이 낮다고 하니 가볍게 보지 말고 치료를 시작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  



  (3)  환경에 대응하는 방식을 조금씩 바꿔나가기


  현재의 직장, 학교에 남아있기로 결정했지만 그건 환경에 순응하기로 결정한 것은 아니다.  자신의 우울증을 치료하는 한편으로, 현재의 상황에서 자신을 힘들게 하는 것들에 대한 대응 방식도 조금씩 바꿔나갈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요즘 핫한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면서 대처하는 법'이라는 책같은 걸 하나 사놓고 문제 상황에서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고민하는 것이다.  내 생각과 취향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믿음을 갖고 무례하지 않게, 화내거나 울지 않으면서, 논리적으로 자기 생각을 말하고 타인의 부당한 간섭을 쳐내는 연습을 해야 한다.  이렇게 환경을 바꿔나가지 않으면 결국 모든 것을 참는 대신 자신을 학대하는 우울증이라는 병으로 빠져들게 된다.


  그건 자신에 대한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면서 대처하는 법'이라는 책제목을 보면 누구나 타인이 자신에게 가하는 가해행위에 대해서 생각하지, 자기가 자기에게 가하는 가해행위는 생각하지 못한다.  그런데 실제로 당신 자신에게 가장 무례한 사람은 바로 '당신 자신'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남들에게 '참 못생기셨네요.  능력도 참 없으시네요.'라고 말하지 못한다.  그렇게 무례한 사람은 흔치 않다.  그런데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는 '너 참 못생겼다.  너 머리 진짜 나쁘다.  너 왜 이렇게 성격이 더럽냐.  너가 얼마나 무능하면 시험에 이렇게 계속 실패하니.  너 이것도 못하냐.  이 모양이니까 여자친구(남자친구)도 없지.'라고 너무 쉽게, 너무 자주, 너무 당당하게 말한다.  이런 우울증적 사고방식도 환경 이상으로 당신을 힘들게 하는 내부의 적이다.  같은 책을 읽으면서, 타인뿐만 아니라 나를 학대하는 나 자신에게도 웃으면서 대처하는 법을 연구해보자.    

     



*쓰고보니 좀 길어졌네요.  다시 돌아간다면, 저라면 휴학이나 휴직을 선택하지 않고 그대로 갔을 것 같아요.  성적이 망하고 업무성과가 엉망이 되었더라도요.  우울증이라는게 1~2년 만에 완치될 수 있는 병도 아닌데 무조건 다 그만두고 쉬기만 하는 건 답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쉬더라도 우울증을 치료할 수 있는 방식으로 '열심히' 쉬어야겠지요.  하지만 제가 휴학할 당시에 저는 저런 걸 몰랐어요.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한 방식을 찾기 위해서라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지금 돌아보면 아쉽기도 하네요.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은 잘 생각해보고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결정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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