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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지나무 Apr 10. 2018

농업치료: 도시농부학교(2)

당귀, 케일, 방풍, 곰취, 호랑이콩, 당근, 시금치, 상추

(침대에서 일어날 수 있을 때)


준비물: 신문지, 부엽토, 씨앗(상추, 당근, 시금치, 호랑이콩 등), 모종(당귀, 케일, 방풍, 곰취), 텃밭(상자)



뭔가 기분 좋아지는 시간


  흙을 만지는 것, 이 계절에 뭘 심을 수 있는지 배우는 것은 뭔가 즐겁다.  별로 어렵지 않으면서도 머릿속이 개운해지는 시간이다.  먹어본 적 없는 낯선 이름의 야채들도 심고 기르고 먹어보고 싶은 기분이 든다.  


  도시농부학교에 다닌 이후로 확실히 새로운 세계가 열리긴 했다.  이전까지는 봄과 초록빛 자연에 대해 그저 관찰하고 감상하는 입장이었다면, 이제는 경작하는 자의 입장이 되었다.  오늘 텃밭에 가는 길에 아직 아무것도 심어져있지 않은, 텃밭처럼 구획해놓은 땅을 보자마자 빌릴 수 있는 곳일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저기에 모종이든 씨앗이든 지금 심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심을 수 있을텐데 하는 생각.  


  아마 도시농부학교가 끝나더라도 나는 상자텃밭을 만들든 근처의 텃밭을 빌리든 매년 무언가를 심고 수확하는 삶을 이어가게 될 것 같다.  한 해 동안 무엇을, 언제 심고 수확해야하는지 체험하고 배워나가고 있으니까 이것도 습관이 되지 않을까.  


  도시농부가 된다는 것이 내 삶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한 가지 찾는다면, 이제 시간과 계절이 내게 의미가 있다는 점이다.  우울증때문에 무기력하게 시간을 흘려보낼 때에는 시간의 흐름이나 계절의 변화를 잘 느끼지 못했다.  봄이든 여름이든 가을이든 겨울이든 우울증때문에 전부 똑같은 회색빛으로 보이기도 했고, 시간 속에 도태되는 것을 견딜 수가 없어서 애써 시간을 잊어버리려고 노력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봄은 조금 다르다.  나는 처음으로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기다리게 되었다.  시간이 흐르고 계절이 지나서 씨앗들이 움트고 자라나 열매를 맺는 것을 보고싶다.  할 일과 설렘이 있는 봄이다.


           

씨감자와 모종 심기


  지난주에는 텃밭에 씨감자와 모종 몇 종류를 심고 왔다.  지난 시간에 미리 잘라서 준비해둔 씨감자를 손 하나 반 정도의 간격을 두고 심었다.  (성인치고는 작은 손 기준으로 하나 반!)  이랑과 고랑을 만들고 간격을 조정하고...... 이런 것들을 이론 수업시간에 구체적으로 배웠지만 막상 텃밭으로 가니 적당히, 어떻게, 그냥, 잘 되었다.ㅋㅋ  감자 심는 간격도 배웠는데 몇 센티미터인지 재는 사람도 없었고 자도 없었다.  그래서 그냥 눈대중으로 적당히 간격을 띄어서, 적당한 깊이에 심었다.


  그밖에도 모종을 나눠주셨는데 당귀, 케일, 방풍, 곰취 모종이었다.  모종들도 적당히 간격을 띄워서 어찌어찌 심었다.  상추 씨앗도 준비해갔는데 그날 밤 비가 많이 올 예정이라 심지는 못했다.  상추 씨앗은 흙을 살짝만 덮어줘도 되는데 비가 많이 오면 쓸려내려갈 수 있다고.  상추는 다음에 심기로 했다. 


  아직 덥지 않은 때라 물은 2~3일에 한번 가서 '비가 내린 것처럼' 흠뻑 주고 오면 된다는데 다행히 씨감자와 모종을 심은 뒤로 비가 3일에 한번 정도는 와주었다.  고마운 비.......       


(이렇게 심었습니다......)



방풍, 곰취, 당귀, 케일, 상추


  이론수업 시간에는 지난번에 모종으로 심은 방풍, 곰취, 당귀, 케일, 그리고 심지 못한 상추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방풍, 곰취, 당귀, 케일은 여러해살이 식물이라 한번 심어놓으면 월동을 거쳐 다음해에도 계속 자란다고 한다.


  방풍은 종류가 몇 종류 있는데, 우리가 먹는 건 식방풍(갯기름 나물)이라고 한다.  방풍은 그늘에서 잘 자라며, 잎은 먹고 뿌리는 약용으로 쓴다고 한다.


*식방풍에 관한 사진과 설명: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49XX11800377



  곰취도 그늘을 좋아하는 식물이다.  원래 고냉지에서 자란다고 한다.  그늘을 만들어주기 어려우면 대신 물을 더 자주 주면 된다고 한다.  곰취는 2월에 파종하고 4월에 육묘이식을 한다.  하순 꽃대가 올라오기 전까지 꾸준히 수확할 수 있고, 수확시마다 2~3개의 잎을 남기고 수확하면 된다고 한다.  중부지방에서는 2~3회 수확할 수 있다고 한다.  뿌리가 약재로 쓰이는데 타박상, 요통, 거담, 항암, 피부노화방지 등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곰취에 관한 사진과 설명: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49XX11800596



  당귀는 요리해서 먹기도 하고 약용으로도 쓴다고 한다.  우리가 먹는 것은 참당귀.  개당귀는 식용이 아니라고 한다.  당귀를 약용으로 재배하려면 꽃대를 키우지 않은 당귀를 수확해야 한다.  간, 기관지, 빈혈에 좋다고 한다.  당귀는 먹어본 적이 없어서 어떤 맛일지 궁금하다.


*당귀에 관한 사진과 설명: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49XX11800369



  케일은 추위에 매우 강하다고 한다.  서늘한 기후를 좋아해서 봄, 가을 재배가 가능하고, 수확할 때는 6~8매 정도를 남겨두고 수확한다.  항암, 빈혈, 골다공증 예방, 피부와 모발 개선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케일에 관한 사진과 설명: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49XX11800167



  상추는 봄과 가을에 재배하는데   가을 상추가 영양가가 더 많다고 한다.  상추는 서늘한 기운을 좋아한다고 한다.  생명력이 강해서 아무렇게나 뿌려놔도 잘 자란다고 하니 정말 반가운 식물이다.  상추에 종류가 많다는 걸 이번에 처음 알았다.  지금까지는 상추가 좀 주름이 많군, 색이 좀 갈색이군...... 이렇게 생각했는데 종류가 다 다른 거였다.  


  봄재배, 여름재배, 가을재배하는 상추 종류가 다 달랐다.  봄재배하는 상추는 선풍포찹적축면, 연산홍적치마, 삼선적축면, 여름재배하는 상추는 강한청치마, 청하청치마, 한밭청치마, 가을재배하는 상추는 연산홍적치마, 토종맛적축면이라고 한다.  이름이 너무 어렵다.  일반 상추는 우리가 흔히 보는 평평한 상추이고, 축면상추는 주름이 많이 잡힌 상추를 말한다.  약간 갈색빛을 띄는 상추는 치마상추 중 적치마 상추.  그밖에 담배상추, 로메인, 오크립, 롤로로사 상추같은 것이 있다고 한다.  


*상추에 관한 사진과 설명: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49XX11800696



신문지 포트 만들기


  이론수업 후에는 신문지 포트를 만들고 씨앗을 심어서 모종을 만드는 체험을 했다.  요즘 신문지는 콩기름 잉크를 사용하고 신문지 종이 자체도 친환경적이기때문에 씨앗이 싹을 틔우면 신문지 포트째로 심어도 괜찮다고 한다.  


  신문지 포트를 만드는 방법은 간단한 듯 하면서도 어려운데 아래 블로그를 참조하면 쉽게 만들 수 있다.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zelkovadady&logNo=40157010376



  신문지 포트를 만드는 방법을 선생님이 설명해주고 시연을 해보이셨는데도 좀 버벅거렸다.  완성된 신문지 포트에는 부엽토를 담고 준비된 씨앗을 뿌린다.  그리고 주위 흙으로 씨앗을 살짝 덮어주면 완성.  흙이 축축하면 물을 뿌리지 않아도 된다.  부엽토는 꽃집이나 인터넷에서 구입할 수 있다.  씨앗은 상추, 당근, 시금치, 호랑이콩 등이 있었는데 나는 상추, 당근, 시금치를 받아왔다.  포트 가장자리에는 어떤 씨앗을 심었는지 잊어버리지 않도록 이름을 쓴다.  포트에 적당히 물을 주면서 싹이 나게 하는게 1주일간의 과제.  싹이 자라면 텃밭에 옮겨심을 예정이다.    

   

(당근 씨앗을 심은 신문지 포트)



지렁이 키우기


  수업이 끝날 무렵에는 지렁이에 관해 공부했다.  지렁이가 좋아하는 먹이는 야채 찌꺼기, 과일 껍질 등이다.  단, 오렌지나 귤 등 산도가 높은 과일은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커피찌꺼기, 계란껍질, 밥이나 국수도 좋아한다고 한다.  다만 전분 등으로 점성이 강한 음식은 싫어한다고 한다.  지렁이가 특히 싫어하는 것은 육류, 생선류, 유제품 가공식품이다.  동물 지방이나 식용유 등 기름이 들어간 음식, 염분이나 조미료가 들어있는 음식도 주면 안된다.


  전에는 지렁이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는데 지렁이분변토가 최고라니 우리 텃밭을 생각해서 탐이 났다.......  선생님이 지렁이를 키우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좀 나눠주셨는데 나는 받아오지는 않았다.  혹시 죽기라도 하면 너무 슬프니까.  우울증에 걸린 이후로 뭐든 잘 잊어버리고 매일 꾸준히 뭔가 하는 것이 좀 어렵다.  미니 선인장을 데려왔다가 물주고 가끔 햇빛 쬐어주는 걸 잊어버려서 말려죽인 적도 있었다.  아끼던 난 하나도 그렇게 하늘나라로 보냈다.  지렁이도 같은 방식으로 죽이게 될지 몰라서 불안했다.  그래서 데려오지는 않고 구경만 했다.   

(흙 속에 있는 지렁이들)


  지렁이 집을 만드는 법은 간단했다.  테이크아웃 커피를 담는 긴 컵에 신문지를 몇 조각 길게 잘라서 넣는다.  신문지는 지렁이를 위한 습기를 유지하는 역할도 하고, 지렁이의 먹이가 되기도 한다고 한다.  신문지를 넣은 다음 컵에 흙을 채운다.  흙은 컵의 2/3 정도 채우면 된다.  우리는 남은 부엽토를 넣었다.  지렁이가 숨을 쉴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컵의 옆면이나 컵의 뚜껑에 구멍을 내고 망사같은 것으로 그 부분을 막아준다.  그 다음에 지렁이를 넣으면 끝.  먹이는 한번에 너무 많이 넣어주면 안되고 지렁이가 먹는 양을 봐서 적당히 넣어줘야 한다.  흙은 마르지 않게 분무기로 물을 살짝 뿌려줘야 하는데, 손으로 쥐었을 때 살짝 뭉칠 정도의 습기를 유지해줘야 한다.  지렁이는 그늘진 곳에서 키워야 한다.


  참고로 지렁이에게 사람 손은 너무 뜨겁기 때문에 지렁이를 손으로 만지는 건 피해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지렁이를 화분에 넣어서 식물과 함께 키우는 경우라면 지렁이를 위해 음씩 찌꺼기를 따로 넣어줄 필요는 없다고 한다.  식물의 부산물들에서 먹이를 얻을 수 있다고.  키울 수 없는게 좀 아쉽다.



  다음 시간에는 오늘 만든 신문지 포트 모종 외에 여러가지 잎채소 씨앗이나 모종을 가져와서 심어도 좋다고 했다.  어떤 분은 부추 씨앗, 다른 분은 아욱 씨앗, 상추 씨앗 같은 것들을 가져오신다고 한다.  나도 씨앗이나 모종을 보러 한번 나가야 할 것 같다.  뭐가 좋을까.  뭐가 맛있을까.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데 도시농부학교에 다녀오니 다시 기분이 좋아졌다.  요즘엔 힘들어서 누워만 있을 때에도 기댈 곳은 있다.  저쪽 어딘가 텃밭에서 지금 자라고 있는 방풍과 케일과 당귀와 곰취, 그리고 감자.  내가 일어나서 물을 주러가지 않으면 목마르고 말라죽을지도 모르는 나의 식물들.  이 세상에서 나를 절실하게 필요로하는 어떤 생명들.  너무 힘들어서 존재하고 싶지 않을 때면 가만히 그 생명들을 생각해본다.  그러면 아주 조금이지만 위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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