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를 떠나있는 동안 한 일들
*저는 경제적 형편이 좋지 않기 때문에 목록이 부실하다는 점은 참고해주세요. 예산 제한이 있어서 학원 종류는 전부 포기했어요. 그래도 저는 이 정도만으로도 우울증에서 치유되는 계기를 만들어나가는데 충분했다는 거:)
1. 모두의 학교
교육비: 무료 (재료비 없음)
찾아가는 길: 신림역 5번 출구로 나와서 직진하면 버스 정류장이 있는데 거기서 (거의) 아무 버스나 타고 '천주교성령봉사회관, 등불교회' 정류장에서 내려서 횡단보도를 건너서 쭉 걸어가다보면 오른쪽에 있습니다. 찾기 엄청 쉬워요.
모두의 학교는 금천구에 있어요. 실제로 중고등학교 같은 학교 건물이 있고, 그 건물 안에서 다양한 수업이 이루어집니다. 저는 올해 모두의 학교에서 업사이클 수업, 아두이노로 미세먼지 측정기 만들기 수업, 3D 프린터로 리쏘페인 조명 만들기 수업을 들었어요. 모두의 학교의 가장 큰 장점은 교육비 무료, 재료비 무료라는 것! 아두이노도 공짜로 받았고 3D 프린터로 만든 조명도 그냥 받았네요;
제가 일정이 겹쳐서 듣지 못한 프로그램 중에도 좋은 것들이 많았어요. 미술심리치료, 놀이치료, 자기 목소리나 일상생활을 녹음해서 기록으로 남기는 수업, 만화에서 나온 음식들을 실제로 만들어보는 수업, 곤충 요리를 만들어보는 수업, 웹툰 그리기를 배우는 수업, 실크 프린팅으로 사진 등을 인쇄하는 수업 등등. 다양하고 창의적인 프로그램들이 많습니다. 주로 평일 오전 수업이 많은 편이지만 토요일 수업도 꽤 있으니 한번 찾아보세요.
우울증에 도움이 된 정도: 별 2개
평가: 별이 2개뿐인 이유는 제가 일정상 프로그램을 세개밖에 수강을 못했고 그 결과 제 우울증 해결에는 그렇게 큰 영향은 미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아두이노나 3D 프린터로 조명 만드는 수업같은 색다른 수업들은 재미있고 정신적인 자극이 되었던 것 같아요. 업사이클 수업에서는 거의 10년 만에 손바느질을 하게 되었는데 그 덕분에 손을 움직여서 작품을 만드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어요. 초등학교 때 방과후 수업으로 공예반을 선택했는데 그때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면서 굉장한 희열을 느꼈던 경험이 있어요. 그때 이후로 손바느질로 작은 코끼리 인형이나 쥐 인형같은 것을 만들곤 했었는데 되지도 않는 '공부'를 한답시고 어느 순간부터 그런 시간을 전부 없애버렸네요...
아무튼 잃어버렸던 취미를 발굴해낼 수 있어서 도움이 되었습니다.
2. 누구에게나 엄마가 필요하다
교육비: 무료 (재료비 없음, 따뜻한 밥 공짜)
회기: 총 6회 (주 1회)
링크: http://www.mom-project.org/
줄여서 '맘프'라고도 합니다. '공감인'이라는 곳에서 서울시와 함께 진행하는 서울시민 치유 프로젝트입니다. 상반기, 하반기에 몇몇 구청과 협력해서 해당 구에서 진행됩니다. 예를들어 올해 하반기에는 구로구, 도봉구, 서초구, 남양주 등에서 맘프가 열렸거나 열릴 예정입니다. 맘프는 정신과 의사 정혜신 선생님이 개발한 프로그램으로 2013년부터 지금까지 이어져온 프로그램입니다. 그래서 프로그램이 믿을만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저는 올해 구청 홈페이지에서 맘프 공고를 보고 참여하게 되었어요. 맘프는 6주간 진행되고, 일단 가면 밥부터 먹게 됩니다. 따뜻하고 맛있는 한끼 식사를 치유활동가들이 친절하게 대접해주는데 그것 자체가 치유활동의 한 과정입니다. 그러고 나서 각 테이블별로 자신의 아픈 이야기를 털어놓는 시간을 갖습니다. 이야기의 주제는 4주간 각각 다르게 제시되고 그 주제에 맞게 이야기를 하면 됩니다. 마지막 2주는 전체가 다 함께 이야기를 하는 과정인데 이 프로그램의 백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맘프'는 정말 오묘한 프로그램입니다. 심리적 방어가 강한 분은 맘프에 참여해서 아무것도 얻지 못할수도 있습니다. 주위 사람들은 자기 상처를 이야기하면서 눈물을 뚝뚝 흘리는데 나 혼자만 '나는 별 상처가 없는데... 저 사람들이 우는 것에 공감이 안 된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맨송맨송하게 있다가 시간낭비한 기분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저도 그런 편이었어요. 맘프에서 조별 대화를 하는 중에 '가장 추웠던 날을 떠올려보라' 이러면서 애잔한 음악도 틀어주고 다른 사람들은 사방에서 훌쩍훌쩍 우는데 저는 '산 밑에 있었던 우리 학교의 추위는 정말 대단했다. 4월 초에도 패딩을 입을 정도였지. 그때가 가장 추웠던 날이었어.' 이런 생각이나 하면서 어색하게 앉아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대화가 다 끝나고 전체적으로 마무리를 할 무렵 진행자분이 저에게 마이크를 주면서 오늘 어떤 느낌이었는지 이야기를 해보라고 하셨어요. 그때 갑자기 저도 모르게 눈물이 터졌어요. 그리고 저는 제가 왜 '우리 학교의 추위'를 떠올렸는지 그 진짜 이유를 알게 되었죠. 학교가 물리적으로 춥다는 건 제 방어기제였고, 실제로 제가 그때 진짜 추웠던 이유는 이거였어요.
저는 학교 다닐 때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이 너무 추웠어요. 운동장 둘레를 걸어가는 길인데 왼쪽으로 어둠 때문에 검어진 산들이 찬바람을 내뿜고... 길 옆 수풀이나 돌바닥에는 조명들이 차가운 흰 빛을 쏘고 있었어요. 저는 너무 추웠어요. 학교 수업을 들었는데 다른 친구들은 다들 열심히 공부해와서 문제도 풀고 질문도 하고 지난 시간에 푼 서술형 문제의 답지들을 찾아와서 비교도 하고 검토도 하는데... 저는 교과서 한장 읽을 힘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어떤 문제도 풀 수 없었죠. 아는게 없으니 쓰지도 못하고 그냥 빈 답안지를 고이 접어서 가방에 넣어올 수밖에 없었죠. 그 다음해에는 시험에 떨어진 낙오자로 그 수업을 청강하며 다시 그 길을 걸어나와야 했죠. 매일. 그 길이 너무 추웠어요. 제가 너무 초라하고 앞날은 막막하고 무너진 제 모습이 가슴이 아프고 슬펐어요.
그 상처가 깊게 뿌리내려서 저를 아프게 하고 있었는데도 저는 그 상처를 의식도 못했고 심지어 가장 추웠던 날을 떠올려보라는 유도에도 바로 생각하지 못했던 거에요.
맘프를 하면서 제 안에 썩어들어가는 상처가 가득 차있는데 심리적인 방어가 강해서 그걸 알아보지 못할 뿐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실 맘프를 처음 시작할 때 제 생각은 이랬어요. "나는 이미 우울증을 거의 치료했고 이제 우울감을 별로 느끼지 않는데 이 프로그램이 의미가 있을까?"
에... 거짓말입니다! 저는 그때 저를 속이고 있었어요. 상처를 끄집어내는게 아프니까 "여기서 그만. 너 이제 우울증 다 나았어. 괜찮아. 상처 있어? 없잖아. 더 파고들지 마." 이런 식으로 합리화를 했던 것 같네요.
그 뒤로도 저는 맘프에 갈 때마다 심리적인 방어 1개를 부수고 피가 철철 나는 상처 1개를 획득하는... 고통스러운 경험을 했어요. 가난한 집 맏딸로 자라 많은 걸 포기하고 양보하는 착한 아이 콤플렉스를 갖게 된 참여자의 사연을 들으면서 '나는 첫째도 아니고 원하는 걸 다 말하고 자랐어.'라는 생각을 했는데 잠시 후에 다시 생각해보니 저는 그것보다 훨씬 더 억압적인 환경에서 가치관이며 세상을 보는 시각을 완전히 세뇌당하며 자랐고 진짜 원하는게 아빠의 틀에 맞지 않는 거라면 원한다고 말도 못하고, 내가 원하는 걸 아빠가 원하는 것과 같게 만들려고 애쓰면서 살았다는 걸 갑자기 알게 된 충격적인 경험도 했네요.
맘프를 하는 내내 과연 이게 지금 나한테 필요한지 모르겠다고 회의적인 생각을 하면서 다녔지만 나중에는 결국 맘프가 주는 메시지를 받아들이게 되었어요. 제 안에는 십몇년간 방치하고 쌓아두었던 온갖 오물과 쓰레기와 피고름같은 것들이 쌓여있고, 이것들이 풍기는 냄새때문에 우울증이 반복적으로 찾아온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이것들을 치우지 않으면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요.
맘프 이후 달라진 점은 심리적인 방어가 있다는 것, 그 방어 뒷면에는 너무 아파서 잊어버리고 싶었던 상처들과 창피한 기억들이 한가득이라는 것, 그래서 내가 지금 '나'라고 생각하는 것은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것만 취사선택해서 조합해놓은 허상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어두운 면을 적극적으로 찾아내려고 노력한다는 거에요.
사실 찾아놓는다해도 어떻게 이걸 '청소'할 수 있을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창피한 기억같은 것들을 최대한 열심히 의식 수준으로 끄집어내고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받아들이는게 전부입니다.
예를 들어, 제가 전에 어떤 창피한 말이나 행동을 했던 경험이 저를 괴롭힌다면, 지금은 그 기억을 구체적으로 상기하고 저 자신에게 말합니다. "내가 예전에 누구한테 이런 말을 했는데 그때 망신을 당했어." 그리고 그때 제가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이야기합니다. "그때 나는 정말 창피했고 지금도 창피해서 죽고 싶어."
그런데 그게 지금의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도 생각해봅니다. "나한테 그런 말을 하게 만든 건 내가 남의 눈치를 너무 많이 보고 남의 비위를 무조건 맞춰야 되고 남이 나를 아껴줘야 내가 존재 가치가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야. 그때 내가 자존감도 참 낮았고 마음이 많이 힘들었구나. 어쩔 수 없었던 일이야. 그래도 이건 내가 스스로 창피하고 부끄러운 일이지 남에게 피해를 준 것도 아닌데 너무 과하게 괴로워할 필요는 없어. 그리고 그건 오늘 내가 살아가고 즐거운 기분을 느끼는데 있어서 별로 중요한 문제도 아니야. 사람들은 남의 일을 금방 잊어버리니 그때 그 자리에서 내가 창피당하는 걸 지켜본 사람들도 벌써 잊었을거야."
이런 식으로 떠오르는 부정적인 기억, 감정을 그때그때 정리하려고 노력합니다. 물론 이렇게 한두번 해서 그 기억들이 사라지지는 않아요. 그런데 하다보면 객관성을 유지할 수 있어서 그런지 비교적 쉽게 가라앉습니다. 최소한 그 기억들은 부정적인 기억으로 그치지, 그게 제 본질을 공격하지는 못합니다. 예를 들어, 예전같으면 그렇게 창피한 행동을 했다는 기억이 곧장 '너는 그렇게 멍청하고 무능한 거짓말쟁이야. 너는 구제불능이야.' 그런 생각으로 이어져 우울증을 심하게 불러일으켰지만, 지금은 '내가 그때 멍청하고 무능한 거짓말쟁이였던 건 사실이지만 지금은 좀 다른데. 그리고 그때 멍청하고 무능했던 건 우울증이 심해서 자존감이 낮아서였지 내가 본질적으로 문제있는 사람이라 그런 건 아니야.' 이런 식으로 생각이 됩니다. 그러다보면 우울감이 가라앉고 며칠 내지는 몇주 동안은 그 기억을 잊어버릴 수 있습니다.
정신적인 힘이 더 자라면 더 쉽게 제압할 수 있겠죠. 어쩌면 아예 잊어버리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네요. 분명한 건 이 부정적인 기억이나 감정이 완전히 해결되지 못한 상태로 잊혀지는 것보다는 기억하고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상태가 훨씬 정신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우울증에 도움이 된 정도: 별 4개
평가: 심리상담을 받은 적이 없으신 분들에게는 더 좋고, 심리상담을 받은 경험이 있는 분들에게도 괜찮은 경험입니다. 맘프 자체가 상담자(권위자)에 의한 내담자의 치유와 같은 수직적인 구조가 아니라, 상처입은 사람들끼리 서로 대화를 나누고 감정을 나누면서 치유를 이루어내는 수평적인 구조라 속마음을 털어놓기가 편합니다. 맘프를 준비하는 치유활동가들도 전부 맘프를 경험한 사람들, 다시말해 마음에 상처가 있었던 사람들이에요. 내가 이런 말을 했다고 정신병자로 보지 않을까,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할 필요가 없어서 편해요.
그리고 자기 마음속 상처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생각해볼 수 있게 만드는 좋은 프로그램이기도 합니다.
3. 치유활동가 교육 및 활동
교육비: 무료 (재료비 없음)
조건: '누구에게나 엄마가 필요하다' 과정을 수료하고 4회 이상 출석했을 것
맘프를 끝내고 나서 알게된 새로운 사실은 맘프가 일회적인 프로그램이 아니라는 점이었어요. 맘프를 수료하면 '치유활동가'가 됩니다. 치유원리 구조 및 어르신공감단, 누구에게나 엄마가 필요하다와 같은 '공감인'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에서 활동할 수 있는 다양한 교육을 받을 수 있습니다. 교육을 이수하면 해당 프로그램에 치유활동가로 참여하게 됩니다.
공감인에서 제공하는 치유활동가 교육 및 활동의 장점은 치유활동가들을 프로그램을 수행하기 위한 '도구'로 생각하는게 아니라, 치유활동가 자신들부터 치유되어야 하는 주체라고 인식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이런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다보면 치유활동가들의 정신건강에 도움이 되는 여러가지 내용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치료사들의 객체가 되는 무능력한 우울증 환자가 아니라 '치유활동가'라는 이름을 받고 자기 자신을 치유하고, 그렇게 해서 생긴 마음의 여유로 주위 사람들을 포용하고 좋은 감정을 전해주는 것, 그게 공감인이 생각하는 치유활동가의 개념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치유활동가 교육을 받으면서도 치유활동가 서로 간에 어떻게 대화하고 행동해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훈련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이곳에서 가장 중요한 규칙은 '판단, 충고, 비난, 훈계'를 절대 하지 않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저 4가지를 하지 않으면 도대체 어떻게 대화를 하지?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저 4가지 없이 대화하는 경험을 실제로 해보니 정말 좋더군요.
예를 들면 '나는 당신의 우울증이 어떤 상태인지 이해해요. 나는 그럴 때 이렇게 했으니까 당신도 이렇게 꼭 해보세요. 그러면 당신은 나을 거에요.' 이 말은 좋은 말일까요?
이 말 속에는 판단, 충고가 들어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은 맞지도 않고 도움도 안 되고 오히려 듣는 사람에게 큰 상처를 줄 수 있습니다.
(저도 맘프 교육을 받기 이전에 이 브런치에 그런 류의 글을 쓰기도 했고 지금도 조심하고는 있지만 또 쓰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럴 때는 알려주시면 좋겠어요.)
위의 말이 잘못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나의 우울증과 당신의 우울증은 전혀 다르다.
우울증을 '상황'으로 바꿔도 마찬가지입니다. 우울증은 한 사람이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방식과 경험과 굉장히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사람마다 다 다른 병입니다. 어떤 사람은 A라는 방법으로 나을 수도 있지만, 그건 그 사람이 A와 관련된 우울증을 앓았기 때문이고 다른 사람은 A의 방법으로 절대 나을 수 었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울증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 다르고, 상담사든 누구든 여러가지 방법을 알려줄 수 있을 뿐 결국 자신을 치유할 방법을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은 본인밖에 없습니다.
상황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를들어 '남편이 바람을 피웠다'는 상황이 있다면, 말 자체는 동일하지만 상황은 집집마다 사람마다 경우마다 다 다릅니다. '바람 피운 사람이랑 어떻게 같이 사냐, 나는 바람 피운 남편이랑 깨끗하게 갈라서고 지금은 더 좋은 사람이랑 교제하고 있다.' 이런 조언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적용될까요? 아닙니다. 오히려 용서하고 부딪쳐서 행복을 찾는게 더 나은 사람도 있고, 아이들이라든지 여러 상황때문에 이혼이 답이 아닌 사람도 있고, 과거 자신도 남편을 정서적으로 괴롭힌 적이 있기 때문에 바람과 같은 남편의 잘못을 용서해주는게 공평한 상황인 사람도 있겠죠.
(2) 그래서 내가 우울증에서 회복된 방법은 당신에게는 소용이 없을 수도 있다.
그렇게 상황이 다르고 사람이 다르기 때문에 나의 조언이 다른 사람에게는 전혀 도움이 안 될 수도 있습니다. 저도 그렇고 보통 다른 사람들도 그렇고, 그 사실을 인정하는게 굉장히 어렵더라고요. 다른 사람을 괴롭히려고 일부러 자기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조언하려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은 다른 사람을 진짜 돕고 싶어서 자기 경험을 이야기해주는 거죠. 그런데 그게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안 될 수 있다면, 하지 말아야겠죠.
(3) 오히려 조언을 듣는 사람은 상처받을 수도 있다.
제가 이 브런치에서 우울증을 해결하는 방법에 대해 여러가지 이야기를 늘어놓고 꼭 해보세요! 하면 나아질 거에요! 당신도 나을 수 있어요!
이렇게 말하면 듣는 사람은 상처를 받을 수 있습니다.
브런치에서 말하는대로 하는게 본인한테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억지로 해봤는데 진짜로 도움도 안 되고 힘들었다, 누군가는 이 방법으로 우울증에서 탈출했다는데 이것도 안 되는걸 보니 나는 진짜 구제불능인가보다... 혹은 '나는 내 우울증을 치료할 방법이 뭐라는 건 알고 있어. 그래서 나는 지금 우울증을 치료할 방법이 궁금한게 아니라 그 방법을 수행할 힘이 없는 현재의 자신이 너무 힘들어. 힘이 없는데 어떻게 일어나라는 거야?' 이런 식으로 생각할 수도 있죠.
남을 정말 도와주고 싶어서 충고를 하려고 한건데, 아무 도움도 안 되고 듣는 사람이 오히려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면 하지 말아야겠죠.
자, 이쯤에서 그럼 조언도 못하고 무슨 말을 하라는 거냐! 이런 생각이 드실 것 같아요.
판단, 충고, 비난, 훈계 대신 이렇게 말하는게 더 좋은 것 같아요.
(1) 조언을 하고 싶을 때: 나는 이런 경험이 있었는데 나는 이렇게 했더니 좀 괜찮았어요.
타인의 상처를 이해한다고 판단하지 말고, 대신 '힘드시겠네요.'라고 공감만 해주면 충분해요. '이거 진짜 효과 좋아요, 이렇게 해보세요, 이러면 진짜 해결돼요' 이런 말은 덧붙일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나의 경험과 그때의 나의 감정만 딱 이야기하면 됩니다. 타인의 '조언' 자체가 문제가 되는게 아니라 조언에 덧붙여지는 '강요'가 문제되는 것이니까요.
(2) 판단 내지는 충고를 하고 싶을 때: 당신의 행동을 보면서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판단과 충고가 필요한 때도 있어요. 다른 사람의 일, 행동 등을 평가해줘야 하는 경우가 있죠. 예를 들어서 치유활동가 교육을 받을 때 맘프 진행자 역할 교육을 받은 적이 있어요. 그때 한 사람씩 앞에 나와서 실제인 것처럼 진행을 해보고 끝나면 다른 사람들이 평가를 해주는 시간을 가졌어요.
그럴 때 좋은 말만 해줄 수는 없죠. 그 사람에게 도움이 안 되니까요. 단점도 지적하고 문제점도 알려줘야 되는 상황입니다.
그럴 때 '이건 잘못됐어요. 저건 문제가 있네요. 목소리가 너무 작아요. 이건 바꿨으면 좋겠네요.' 이렇게 말하는건 판단 내지는 충고에 해당합니다.
하지만 '당신의 발표를 들으면서 나한테는 목소리가 조금 작았어요. 나는 이 부분은 약간 진행이 매끄럽지 않다고 느꼈어요. 나한테는 말소리가 조금 빠르게 느껴졌어요. 나는 이 부분은 이러저러하게 받아들여서 오해의 소지가 있는 것 같아요.' 이런 식으로 말하면 받아들이는 사람 입장에서는 덜 불편해요. 왜냐하면 그건 '그 사람'의 생각, 느낌, 의견일 뿐이니까요. 절대적인 어떤 기준에서 잘못된 건 아닌 거죠.
저는 심리적인 방어가 강하고 누군가의 지적을 받으면 그런 지적을 받도록 멍청하게 행동한 저 자신을 미워하고 힘들어하는 스타일인데, 발표 후에 저런 형태로 소감을 들을 때 편했어요. 부담이 없었습니다. 그건 단지 그 사람의 의견일 뿐이니 저도 그 사람에게 '내 생각과 의견은 다르다'고 대응할 수 있으니까요. 실제로 같은 문제를 놓고도 A라는 사람은 자기 생각에는 이렇게 느껴졌다(부정적인 쪽)라고 했는데 뒤이어 B라는 사람은 자기 생각에는 다르게 느껴졌다(긍정적인 쪽)라고 이야기를 하더군요. 저는 두 의견이 모두 수긍할만하다고 생각했어요. 어떤 절대적인 기준에서 '이게 잘못되었다'라고 판단하고 지적하는 상황이라면 이런 식으로 서로가 각자 다른 의견을 이야기하는 건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튼 맘프 치유활동가 교육과정 및 활동은 이런 식으로 치유활동가 본인에게도 도움이 많이 되는 구조입니다. 그래서 맘프 자체에서 별다른 치유효과를 느끼지 못한 저같은 분들도 일단 맘프를 수료하고 치유활동가로 넘어가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실제로 교육받다보면 맘프에서는 아무 느낌도 없었는데 치유활동가로 몇년 활동하고 나니 자신의 문제와 숨겨진 상처가 뭔지 알게 되었다는 강연자 분들도 계셨어요.
우울증에 도움이 된 정도: 별 4개
평가: 맘프에서는 어렴풋하게 경험하고 넘어갔던 치유의 원리에 대해 구체적으로 배우고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치유활동가들과 교류하면서 인간관계를 넓혀갈 수도 있고 실제로 활동에 참여할 기회가 계속 주어진다는 것도 장점입니다.
4. 주민건강리더 프로그램 및 소모임
교육비: 무료
재료비: 2만원
기간: 올해 4월(기초과정)부터 8월(심화과정)을 거쳐 현재까지 진행중
(가)성북의료사협에서 진행했던 프로그램입니다. 주민건강리더 프로그램은 요즘 여러 구에서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중에서 저는 이 프로그램이 내용이 가장 괜찮았던 것 같아요. 우울증과 '주민건강리더' 프로그램이 무슨 관련이 있을까 싶지만, 이 프로그램이 전제하는 '주민건강'에는 신체적, 정신적 건강이 모두 포함되어 있고, 목표는 건강리더 본인들이 건강하고 행복해야 주위 다른 사람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 건강리더들의 건강을 먼저 챙겨주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기초과정은 일종의 집단상담 프로그램처럼 진행되었습니다.
내용은 애니어그램 검사로 자신의 성격 이해하기(1회기), 춤동작 테라피(4회기), 타로 심리상담(2회기), 한방건강(1회기), 연극치료(1회기)로 구성되어 있어요. 뭔가 수박 겉핥기같은 느낌도 들지만 실제로 경험해보니 그 정도로도 충분했어요.
애니어그램 검사는 비교적 흔해서 무슨 도움이 될까 싶었는데 실제로 해보니 괜찮았어요. 저는 4번 유형이 나왔는데 다른 유형들에 비해 4번이 딱 맞는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저의 성향에 대해 객관적으로 다시 들여다보면서 저의 생각 패턴, 감정 패턴에 대해 좀더 이해할 수 있었어요. 4번 유형은 부정적으로 발현되면 우울증에 걸릴 가능성이 높다고 하네요. 헐?
애니어그램 검사가 좋았던 점은 그 이후로는 저 자신을 전체를 뭉뚱그린 인간 중 하나가 아니라 '4번과 같은 성향을 가진 인간'이라고 기준을 바꾼데 있어요. 이전에는 성격이 긍정적이고 밝은 사람, 무난하게 주위와 잘 맞춰가는 사람 등 다른 성격의 사람들을 많이 부러워하고 저는 '열등한' 성격을 가졌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애니어그램 검사를 해보면서 제 성격도 제가 부러워하던 다른 성격과 마찬가지로 장단점을 갖춘 하나의 유형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네요. 당연한 말 같은데 그동안은 왜 제가 열등하다고 부정적으로 생각했는지 모르겠어요.
제 우울증 치료에 가장 큰 계기가 되었던 건 춤동작 테라피였어요. 나중에 유튜브나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춤동작 테라피는 대체로 비슷한 것 같아요. 그런데 이건 집에서 혼자 해보는 걸로는 의미가 없고 집단상담 프로그램으로 현장에서 진행되어야 효과가 있어요. 실제로 다른 사람들과 몸으로 소통하면서 이루어져야 제가 느꼈던 것과 같은 '해방감'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요.
춤동작 테라피라고 해서 '춤'을 잘 춰야하는 건 전혀 아니에요. 저는 어릴 때부터 너무 내성적이고 소심해서 다른 사람들 앞에서 몸을 움직이거나 춤을 추는 걸 심하게 기피했어요. 이것도 자존감이 너무 낮아서 그런 걸까요? 아무튼 초등학교 때 체육 수업이 가장 싫었고 체육 수업 때 배가 아프다거나 다리를 다쳤다거나 하는 식으로 거짓말까지 해가면서 최대한 수업을 빼먹을 정도로 병적으로 심했어요. 그런 배경때문에 춤동작 테라피가 제게 효과가 더 컸는지도 모르겠지만... 이 이야기를 드리는 건 그렇게 심하게 소심한 저도 춤동작 테라피를 하는데 부담이 크지 않았다는 걸 알려드리려고요:)
춤동작 테라피는 자기 자신의 몸에 주의를 기울이기, 스트레스나 불안으로 근육이 뭉치고 긴장된 몸을 마사지하거나 두드려주면서 몸에 남은 스트레스를 풀어주기, 다른 사람들과 함께 동작을 하면서 내가 다른 사람과 어떻게 관계하는 사람인지 알아가기, 일상생활에서 잘 하지 않는 막춤 등 자유로운 동작을 취하면서 몸을 해방시키기 등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원래 다른 사람들과 함께 팀플을 하는 것보다는 제가 주도적으로 생각해서 결정하고 노력을 쏟을 수 있는 과제들을 더 선호하는 편이었어요. 그런데 춤동작 테라피를 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는게 얼마나 행복하고 소중한 일인지 처음 알게 됐어요. 언어를 통한 상호작용이 아닌 몸으로 서로 인사하고 관계맺으면서 그걸 더 강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함께 참여하신 다른 분들도 춤동작 테라피가 가장 좋았다고 말씀하시는 걸 보니 느낌은 다들 비슷하셨나봐요. 춤동작 테라피를 하면서 우울증을 앓은 이후로 처음으로 느껴보는 굉장히 큰 해방감, 행복감, 평온함, 즐거움을 경험했어요. 테라피가 끝나고 찍은 셀카는 그때까지 찍은 셀카들과 확연히 다르게 얼굴이 펴지고 이완되어 있어요(그때 셀카도 요즘 셀카와 비교하면 어둡긴 하지만요).
프로그램 만족도가 굉장히 높아서 일정이 맞지 않는 한분 빼고는 전부 심화과정을 수강했어요. 8월에 진행된 심화과정에서는 주민건강리더가 지역사회에서 어떤 활동을 할 수 있는지 배우고 탐색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9월부터는 소모임을 만들어서 활동하기 시작했어요. 저는 힐링자수 모임, 타로심리상담 모임에 참여하고 있는데 자수는 정말 제 취향저격이었어요. 자수를 직업으로 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어요. 자수를 놓을 때는 하루종일 지치지도 않고 집중하는 제 모습을 보면서 공부가 안 되는 이유는 제 집중력 자체가 부족해서는 절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됐네요...;
소모임도 하고 지역사회 골목축제 때 부스에도 참여하면서 주민건강리더 때 함께했던 분들과 계속 교류하는 것도 행복의 중요한 원천이 되고 있습니다.
우울증에 도움이 된 정도: 별 5개
평가: 주민건강리더 과정을 거치면서 우울증에서 근본적으로 벗어나기 위해서는 주위에 좋은 사람이 많아야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사람들과 즐거운 일을 함께 하면서 얻는 치유의 효과가 혼자 하는 취미생활이나 다른 것보다도 훨씬 컸습니다.
5. 종교활동
교육비: 1만원 (헌금 등 6개월간 모든 비용을 합산해도 8만원 이내)
기간: 교육기간은 6개월
처음에는 신앙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여러 종교 중에 가톨릭을 고른 이유는 예비자 교리학교라는 부담스럽지 않은 접근방법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 뭔가를 알아보거나 하는 것도, 사람과 직접 대면하거나 깊이 대화하기도 힘들었던게 3월의 제 상태였어요. 그래서 인터넷으로 예비자 교리학교의 일시, 장소를 확인하고 그냥 당일에 그곳에 가서 수업을 듣기만 하면 되는게 장점으로 느껴졌어요. (종교를 고른 이유치고는 너무 농담같지만 농담이 아닌 현실이라는...) 경험해보니 가톨릭이 조금 개인주의적이고 끈끈하지 않을 자유(?)가 있다는 것도 장점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제가 종교가 저한테 도움이 된다고 느꼈던 데는 세 가지 정도 이유가 있어요.
(1) 심리상담적 효과
저는 일상생활 속에서 기도를 하면서 여러가지 이야기를 하는 편이에요. 오늘 어떤 모임에서 전반적으로 내 기분이 어땠는지, 누가 어떤 말을 했는데 나는 어떻게 대응했어야 했는데 잘못 대응한 것 같다든지, 누가 어떤 행동을 한 것이 내 기분을 좋게/상하게 했는지 하는 것들을 이야기해요. 상담을 받으면서 할 만한 이야기들을 하고 저의 감정이나 기분을 그때그때 체크하는 편이에요. 그러다보면 제 감정이나 생각을 비교적 객관적으로 돌아보고 정리할 수 있죠. 이건 종교가 없어도 충분히 스스로에게 말을 걸면서 할 수 있는 것이긴 하니 종교 관계없이 한번 시도해보셔도 괜찮을 것 같아요.
(2) 자존감을 뒷받침해주는 외부적 요인
종교라는 하나의 가치관 안에서 자신의 존재의 의미를 규정짓는 것이 저한테는 자존감에 도움이 좀 되는 것 같아요. 우울증이 심해지면 무슨 일을 하든 허공에 집 짓는 공허한 기분이 들 때가 있는데 종교를 가진 이후에는 그 부분이 어느정도 해결이 됐어요. 아직도 우울증이 심할 때는 시궁창에 집 짓는다는 느낌은 들지만, 그래도 시궁창은 바닥이 있다는 차이가... 나를 창조하고 항상 지켜보고 사랑해주는 부모와 같은 어떤 절대자가 있다는 생각은 위로가 많이 돼요. 깊은 우울감이 몰려올 때 기도문이 정해진 기도를 암송하면서 걸어다니다보면 불안이 줄어들고 마음이 편안해지기도 합니다.
(3) 나 자신으로부터의 해방
안셀름 그륀 신부님의 '고해성사'라는 책이 있어요. 그 책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와요. 하느님은 인간이 죄를 지었다고 비난하거나 심판하려고 벼르고 있는 분이 아니다, 인간이 죄를 지었다고 비난하고 심판하고 처벌을 요구하는 건 인간 자신(초자아)이다, 고해성사는 인간이 초자아로부터 자신을 자유롭게 하는 과정이다... 대충 그런 내용이었어요.
저는 이 책을 보고 고해성사의 심리치유적 효과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어요. 저는 살면서 잘못을 꽤 많이 했던 것 같아요. 나를 미워하는 잘못이든 남에게 해코지를 한 잘못이든 남을 미워한 잘못이든 거짓말한 잘못이든 컨닝을 한 잘못이든 나태했던 잘못이든 나를 죽이려고 했던 잘못이든... 그중에는 진짜 죄인 것들도 있고 죄가 아닌데도 죄책감이나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게 하는 것들도 있어요. 살면서 그런게 쌓이고 방치되면서 부정적인 감정들도 같이 쌓였고, 우울증으로도 이어졌다는 생각이 들어요.
고해성사를 하면서 죄라고 생각하는 것들, 죄가 아닌 것 같지만 죄책감을 느끼게 하는 것들을 그냥 전부 고백하고 오면 기분이 가볍고 편해져요. 고해성서 하러가기 전에 죄가 뭐가 있을까 고민하면서 이미 한번 정리 과정을 거치고, 다른 사람한테 죄를 소리내어 말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그 부정적인 감정들을 잘 다뤄서 해결해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우울증에 도움이 된 정도: 별 4개
평가: 개인적으로 종교는 사람의 성향에 따라 우울증에 도움이 될 수도 해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자기 성향에 맞지 않으면 종교를 가질 필요가 없겠죠. 성향이 맞는 사람에게는 심리치유적인 효과도 있을 수 있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