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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지나무 Jan 28. 2019

스카이 캐슬

청소년 우울증, 자존감의 문제



 이렇게 몰입해서 본 드라마는 정말 오랜만인 것 같아요. 스카이 캐슬이라는 배경, 고액의 입시 코디네이터, 서울 의대같은 것들은 떡밥일뿐, 사실 이 드라마에 나오는 이야기는 우리나라 대부분의 가정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상에 관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어요. 적성에 맞는지, 진짜 하고 싶은 일인지는 본인조차도 생각해보지 않은 '서울 의대'라는 목표에 목숨거는 예서, '서울 의대'에 가지 못해도 괜찮다거나 대학과 상관없이 너는 너 자신으로 충분하고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고 말한 적 없는 한서진, 세상은 피라미드로 구성되어 있다면서 뭐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무조건 피라미드 꼭대기로 올라가야 한다고 강요하는 차민혁, 그런 부모에게 사랑받고 싶어서 거짓말을 한 차세리, 자식의 힘든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나약하다고 하면서 총까지 들이댄 박수창, 자신의 열등감을 해소시켜주는 마약인 것처럼 자식의 성공에 집착한 김주영, 그리고 머리를 다쳤어도 그런 엄마를 슬프지 않게 하려면 공부하는 흉내라도 내야한다고 믿는 케이까지. 이런 모습이 없는 가정이 우리나라에 얼마나 될까요.


(이미지 출처: jtbc 홈페이지 'SKY 캐슬' 포토갤러리)


 드라마에서 최종보스처럼 등장하는 김주영은 사실 인간(영재네 가족, 예서네 가족 등)이 원하는 욕망을 그대로 비춰주는 거울에 불과하죠.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악마와 거래했고 원했던 것은 얻었지만 악마가 그것보다 더 소중한 다른 것을 가져갔더라는 이야기.


 영재나 수창은 김주영이 가을이의 연락처를 알려줘서 명주가 자살하고 영재의 인생을 망친 것처럼 원망했지만, 사실 그건 박수창과 이명주가 뿌린 씨앗을 거둔 것에 불과해요. 서울 의대에 가야한다면서 어린 아들을 잠도 재우지 않고 모욕을 주고 비난하면서 공부시킨건 김주영이 아니라 영재 부모 본인들이었죠. 미성년자인 아들이 성관계를 가진 것은 충격이었겠지만 박수창이나 이명주가 진짜 분노한 이유는 '딴짓하느라 서울대 의대에 못갈지도 모른다'는 거였어요. 아무도 영재한테 왜 그런 행동을 했냐고 묻지 않았죠. 심지어 박수창은 자기도 가고 사촌들도 다 간 학교에 가는게 뭐가 힘드냐고, 약해빠졌다면서 영재에게 총까지 들이댔죠. 김주영이 없었다면? 영재는 가을이든 다른 무엇이든 찾으면서 방황을 계속했을 거고 결국 서울 의대에 못 갔을 테고 박수창이나 이명주는 그런 영재를 절대 용서하지 않았을 거에요. 아마 박수창은 영재에게 비루한 인생을 살지 말고 차라리 자살하라고 말했겠죠. 그게 박수창의 확고한 가치관이었으니까요. 김주영이 없었다해도 박수창의 가정은 이미 박살난 상태였어요.

 

(이미지 출처: jtbc 홈페이지 'SKY 캐슬' 포토갤러리)


 이수임은 그런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오직 김주영만 제거하면 영재든 예서든 아이들의 인생이 불행해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행동했죠.


 입시 경쟁에 관해서 비판하는 이 드라마에서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는 인물이 처음에는 이수임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결국 노승혜가 그 역할을 맡더군요. 저는 이 드라마에서 노승혜가 가장 좋은 가치관을 가진 엄마라는 생각이 들어요.


 세리가 하버드에 다닌다고 거짓말한 것은 사실 부모가 차민혁같은 사람이라고 해도 바르지 않은 행동이고 배신이에요. 노승혜도 처음에는 크게 실망하고 상처받지만 결국 결정적인 순간에는 '내 딸한테 손대지 마'라고 하면서 차민혁으로부터 세리를 보호해요. 그리고 세리를 데리고 나와서 같이 쇼핑을 하고 오뎅을 먹이면서 그동안 딸과 이런 시간도 갖지 못했던 자신을 반성하죠. 세리는 미국에 간 때부터 공부를 잘한다는 소식을 전하는 것 말고는 부모에게 사랑받을 기회가 없었다는 걸 이해하죠. 그리고 차민혁이 클럽에서 일하는 세리를 인생의 실패자 취급하자 승혜는 자기 딸이 그런 취급을 받게 놔두지 않아요. 이혼을 선언하고 아이들을 모두 데리고 나가죠.


 노승혜가 남긴 반성문은 어쩌면 이 드라마가 말하고 싶었던 주제를 담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승혜는 박사과정까지 수료할만큼 열심히 공부했으면서도 자신의 인생에 무엇이 중요한지,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해 주체적으로 질문을 던지지는 못했죠. 앵무새처럼 '서울 의대'를 외워대는 영재나 예서와 비슷하게. 그래서 단지 아버지에게서 벗어나는 것을 목적으로, 차민혁이 어떤 가치관을 가진 남자인지는 확인하지 못하고 결혼해버렸죠. 하지만 승혜는 자식들이 차민혁의 왜곡된 가치관으로 고통받는 것을 보면서 그 질문을 다시 자신에게 던지고, 용감하게 아이들을 데리고 집을 나왔어요. 자신의 인생에서 중요한 것들을 지키면서 살기 위해서요. 아마 승혜네 삼남매는 엄마가 자기 인생의 주체가 되어 자기의 가치관을 지키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런 삶의 방식을 배워나가겠죠. 우울증을 경험한 사람의 입장에서 본다면, 우울증으로부터 가장 강력하게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삶의 방식을 배우는...


(이미지 출처: jtbc 홈페이지 'SKY 캐슬' 포토갤러리)


 저는 스카이 캐슬을 거의 매회 울면서 봤어요. 제가 영재, 예서, 세리였고, 지금은 케이의 입장이니까요. 저희 가정도 스카이 캐슬에 나온 스토리를 어느정도 거쳤던 것 같네요. 저희 아빠는 박수창, 차민혁과 비슷했어요. 세상은 피라미드로 이루어져 있다고, 그 피라미드는 절대적이라고 세뇌시켰죠. 자신의 가치관에 반대하는 것은 용납하지 않았어요. 차민혁처럼 자상하고 자식들을 사랑으로 세심하게 챙겨주면서도 정신적으로는 옥죄는 스타일이었죠. 박수창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 집은 총이었고 저희 집은 식칼이었다는 점? 차민혁이 자신의 열등감 반, 자식에 대한 깊은 사랑 반에서 자식들을 피라미드 꼭대기에 오르도록 강요했던 것처럼 저희 아빠도 비슷했어요. 차라리 자식을 그냥 학대하기만 했다면 반항하기가 쉬웠을 텐데 그 정신적인 학대 속에 자식에 대한 깊은 사랑과 걱정이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반항하기가 어려웠죠. 그래서 저를 미워하는 걸 선택했던 것 같아요. 실제로 세상은 아빠 말대로 약육강식의 계급사회이고 거기서 벗어날 방법이 없으니 오로지 조금이라도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가는 것밖에 방법이 없는데, 내가 모자라고 나약해서 주저앉아버린 거라고 나를 비난하고 경멸하고 미워하는게 더 편했죠. 아빠를 미워하고 증오하는 것보다는. 그리고 그 가치관 속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스스로 매순간 낙인찍는 인생 실패자의 삶을 살았어요. 어느 순간부터는 더이상 아빠와의 관계에서의 문제가 아니더라고요. 그 부정적인 가치관이 제 머릿속에 세뇌되어 제 내부에서 저를 벌주고 심지어 명예롭게(?) 자살시키고 싶어하게 되었으니까요. 우울과 불안이 지옥불에서 타는 것처럼 저를 괴롭힌 근본적인 원인은 거기에 있었어요.


 그러면서 저는 케이가 되었죠. 머리를 다친 것처럼, 우울과 불안으로 몸도 마음도 모두 망가져서 제대로 살 수 없게 되었어요. 공부를 할 수 없는 건 물론이고 일상생활도 힘들어졌죠. 차도로 뛰어들지 않으려고, 높은 곳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매순간 이를 악물고 참아야 하는 삶이었죠. 그러면서도 아빠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 공부하는 척이라도 해야하는... 저희 아빠가 모든 것을 내려놓은 건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였어요. 아빠도 박수창처럼 극단적인 상황을 겪으면서 자신에게 무엇이 중요한지 알게 되신거죠. 아빠 본인이 원하던 목표를 자식이 이루지 못한 상황에서, 그런 자식은 필요없고 비루하게 사느니 차라리 명예롭게 자살해주기를 바라는지, 아니면 세상을 버리더라도 자식이 살아주기를 바라는지. 아빠는 자살이 단순한 반항이라고 생각할 때는 그 결정을 하지 못했어요. 우울증과 자살이 배가 불러서, 나약해서 하는 투정이라고 생각했을 때는 정신차리게 만들려고 오히려 더 강압적으로 나오셨죠. 하지만 자살이 현실이라는 것을 자각한 이후에는 선택을 하셨어요. 세상을 다 버리더라도 자식을 살리는 쪽으로.


(이미지 출처: jtbc 홈페이지 'SKY 캐슬' 포토갤러리)


 아마 이 글을 읽는 부모님들은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어요. 자식이 실패했다고 죽기를 바라는 부모가 세상에 어디있겠느냐고요. 그런데 자식들은 그렇게 느끼지 않아요. 실패해서 부모를 실망시키고 좌절하게 만들고 짐을 더해주느니 죽는게 도와주는 거라고 느끼죠. 부모가 세상 모든 것을 다 버리더라도 자신을 사랑한다고 느끼는 자식은 부모의 생각만큼 많지는 않을 거에요. 놀랄 정도로 부모와 자식간에 인식 차이가 큰 부분이죠. 어쩌면 부모의 입장에서는 자식이 자신의 목숨보다 귀한게 당연하고 자식도 그런 무한한 사랑을 알거라고 믿기 때문에 죽을만큼 자식을 몰아붙여도 괜찮다고, 아무리 다그쳐도 죽을리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게 아닌가 싶어요.


 저는 어릴 때부터 아빠에게 굉장히 사랑받고 자란 편이었는데도 얼마 전까지는 아빠가 저의 사회적 성공보다 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사랑한다는 걸 확신하지 못했어요. 아빠가 바라던 직업을 갖지 못한 제가 살아있기를 원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어요. 물론 여기에는 우울증도 큰 역할을 했겠죠. 우울증은 세상을 바라보는 눈에 필터를 적용해서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보게 만드니까요. 하지만 우울증을 떠나서 진심으로 모르기도 했어요. 아빠는 저의 자살이 거의 현실화 되기 이전에는 그런 말을 저한테 한 적이 없었으니까요. 네가 세상 무엇보다도 소중하다고, 너는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부모에게 할 일을 다한 거라고, 너를 위해서라면 나는 다 버릴 수 있다고. 이런 말을 그 전에는 들어본 적이 없어요. 사랑한다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아빠의 진심을 알기에 부족했나봐요.


 물론 저의 경험때문에 제가 더 그렇게 느끼는 것일 수도 있지만, 저는 스카이 캐슬이 그냥 '강남에는 저런게 진짜 있다더라'하는 식으로 아무 위기감 없이 넘길 드라마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공부때문에, 성적때문에 갈등을 겪는 집이라면 한번쯤 진지하게 생각해볼 가치가 있는 질문들을 던지는 드라마라고 생각해요.


 이 드라마에서 등장한 음악 중 유명한 것이 슈베르트의 '마왕'이죠. 아버지는 늙은 버드나무 가지일뿐이라고, 아무것도 아니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해요. 아들이 끊임없이 마왕에 대한 두려움과 고통을 호소하는데도 아버지는 '마왕'을 보지 못해요. 그리고 도착했을 때 아들은 이미 마왕이 데려가버린 후였죠. 부모의 입장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이해되지 않지만, 자식은 병들고 죽어있을수도 있어요.  


https://www.youtube.com/watch?v=cDyadF3Zc6g

 


(1) 피라미드의 관점에서 아이들을 평가하지 말아주세요


 현실은 차민혁이 말한 것처럼 피라미드가 맞을지도 몰라요. 부모님들이 그런 현실에서 자식들이 상처를 받을까봐, 고생을 할까봐 공부를 시켜서 좋은 위치를 선점하게 해주려고 노력하는 경우가 많죠. 부모님들 본인이 그런 피라미드를 경험하고 상처를 받았기 때문에 더 불안하고 두려움을 느끼는 경우도 많아요.


 하지만 현실에서 타인들이 피라미드의 관점에서 나의 위치를 평가한다는 것과, 부모가 피라미드의 관점에서 나의 위치를 평가한다는 것은 굉장히 큰 차이가 있어요. 타인들이 피라미드의 관점에서 나의 위치를 평가한다는 것은 그 타인들의 의견에 불과해요. 자존감이 강해서 타인들의 의견과 자신의 가치관 사이에 선을 잘 그을 줄 아는 사람은 아무리 사회가 그렇다고 해도 그런 사회를 적당히 무시하며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죠.


 하지만 부모가 피라미드의 관점에서 자식의 위치를 평가하는 것은 자식의 자존감을 도끼로 찍어내리는 것과 같아요. 자식은 전적으로 부모에게 의존해서 생존하는만큼 부모를 통해서 자기 존재를 확립해요. 부모가 아무 생각없이 한 사소한 말까지도 전부 흡수해서 자아를 만들어나가죠. 부모의 이혼이 자기가 부모의 말을 잘 안 들어서 그런 거라고 받아들이는 아이들의 사고를 생각해보시면 아이들이 부모의 말과 행동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고 그것을 자기의 자존감과 연결시키는지 이해하실 수 있지 않을까요.


 사춘기 자녀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는 않아요. 부모가 주입시키는 그런 가치관은 아이의 머릿속에 그대로 들어가 박혀요. 단지 공부 의욕을 자극할 목적으로 한 사소한 말들, 예를 들어 "누구 엄마는 참 좋겠다. 누구가 공부를 그렇게 잘한다며.", " 지금 전교 1등하는 걔는 나중에 엄청 잘 살텐데 너는 이 성적으면 걔 심부름이나 하러 다니겠다.", "85점이 뭐가 잘했어? 니 위에 몇 명이 있는지 알아?"같은 말들이 아이의 자존감에 상처를 주고, 나중에 자존감이 무너진 아이는 스스로 머릿속에서 자기는 부모를 실망시키는 무능한 존재, 다른 잘난 사람들의 뒤치다꺼리를 하는 실패한 인생을 사는 존재라고 자신을 평가하게 돼요. 낮은 자존감은 아이가 나중에 뭘하고 살아도 끊임없이 머릿속에서 아이를 단죄하고 처벌하겠죠. 네가 무능해서 이따위 일이나 하면서 초라하게 살고있는 거라고. 다른 친구들이 잘 살고 있는 모습과 끊임없이 비교하게 만들면서요.  


(이미지 출처: jtbc 홈페이지 'SKY 캐슬' 포토갤러리)


 반대로 피라미드의 관점에서 좋은 평가를 하는 것도 자존감에 해로워요. 예서는 좋은 평가를 받고 피라미드 꼭대기로 올라설거란 기대를 받고 있는 아이죠. 하지만 서울 의대를 못가면 죽을 것처럼 행동하는 예서의 모습을 보고 예서가 자존감이 높다고 생각하시나요? 예서는 서울 의대를 가지 못하면 엄마의 인생을 망치고 할머니에게 손녀로 인정받지 못하고 아빠도 크게 실망할거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어요. 전교 1등으로 남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시선도 비웃음으로 바뀔 거라는 걸 알고 있죠. 그래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서울 의대가 꼭 필요한 아이에요. 서울 의대가 아니면 유지할 수 없는 자신의 존재 가치. 그 자존감이 얼마나 낮은지 이해되시나요?


 칭찬 위에 올려진 자존감은 쓰레기 더미 위의 자존감과도 같아요. "네가 열심히해서 항상 좋은 성적을 얻어서 엄마는 너무 기뻐.", "전교 1등한 우리 딸 최고야!"같은 과정이 아닌 결과에 대한 칭찬은, 아이의 성공을 자신의 성공인 것처럼 행복해하는 모습은 아이에게 그런 성과를 얻어야만 진짜 사랑받고 인정받을 수 있고 부모의 행복은 자신의 손에 달렸다고 믿게 만들어요. 사실 그 칭찬은 아이에게 한 칭찬이 아니라 아이가 가져온 것들, 즉 '전교 1등', '수학 올림피아드 수상', '토익 만점'같은 결과물에게 한 칭찬이에요.


 진짜 강한 자존감은 아무것도 성취하지 않더라도, 무엇이 되지 않더라도 현재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사랑받을 때 만들어져요. 아이가 전교 1등을 가져오든 공부를 게을리하든 어떤 상황에서도 너를 사랑한다는걸 말과 행동으로 보여주고, 아이가 성과를 얻으면 "네가 원하는 걸 얻어서 다행이다.", "네가 기뻐하니 엄마도 기쁘다."같은 식으로 아이가 행복해서 부모도 행복하다고 말해주세요. 아이가 의대에 가고 싶지 않다면 안 가면 된다는 걸 알려주세요.


 현실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건 알아요. 미성숙한 자녀의 판단에 자녀의 인생을 맡기는 것도 두렵고, 아이의 자존감을 자극하지 않고 아이를 공부하게 유도하고 분발하게 만드는 방법을 찾는게 더 힘들다고 느껴지니까요. 부모님들이 피라미드의 관점에서 자식을 평가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그게 공부의 강력한 동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겠죠. 실제로 그렇게 해서 잘 되는 경우도 있어요. 자존감을 짓밟았더니 갑자기 용수철처럼 튀어올라 공부에 매진해서 상위권이 되는 경우도 있고, 꾸준히 자존감을 건드려줘야 방심하지 않고 최상위권을 유지하는 경우도 있죠.


 그런데 그렇게 성공하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요? 성공할 확률이 높다면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대다수가 노벨상이라도 타낼 기세로 밤을 새면서 공부하고 있지 않을까요? 현실이 그런가요? 현실에서는 자존감이 짓밟히면 그냥 그대로 찌그러져 버리는 캔들이 더 많지 않을까요. 어차피 못할 거 공부를 포기해버리는 거죠. 수포자라는 말, 수업중에 무기력하게 엎드려있는 아이들을 생각해보세요. 무엇보다도 자존감이 낮아지면 높은 확률로 우울과 불안이 와요. 우울과 불안에는 게임 중독과 스마트폰 중독같은 증상이 따라오고, 그렇게 되면 공부에 집중하기가 훨씬 힘들어지겠죠. 제 생각에는 공부를 힘들어하는 청소년들 중 상당수가 그런 마음의 병을 앓고 있기 때문에 더 공부와 멀어지는게 아닐까 싶어요.  

  

(이미지 출처: jtbc 홈페이지 'SKY 캐슬' 포토갤러리)

   

 그리고 설령 김주영이 혜나를 이용해서 예서의 자존감을 건드리고, 그렇게 해서 예서가 방심하지 않고 상위권을 유지하게 만든 것처럼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드라마속에서 그게 예서를 행복하게 만들었나요? 자존감이 낮아지면서 예서는 혜나와 자신을 끊임없이 비교하고, 그럴수록 더욱더 서울 의대에 집착했죠. 혜나와 비교하는 것이 자신의 존재감을 위협하기 때문에 너무 불안하고 무서워서 서울 의대에 가지 않으면 죽을 것처럼 느꼈던 거에요. 그렇게 낮아진 자존감과 비교는 예서가 서울 의대에 간 이후에도 끝나지 않을 거에요. 서울 의대에서의 성적, 그후의 진로, 그후의 남편의 스펙, 자식의 스펙... 평생 비교가 끝나지 않겠죠. 혜나가 있으면 혜나와, 혜나를 제쳤으면 또 다른 앞서가는 사람과. 그러다가 우울과 불안이 찾아와서 한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겠죠.


 단순하게 생각해보면 부모님들이 입시와 관련해서 불안해하고 두려워하는 것은 결국 자식이 불행해지는게 두려워서 아닐까요. 자식이 불행해지는게 무서워서, 자식이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서 자식에게 공부를 강요하고 공부하도록 자극하기 위해 피라미드를 들이대고 실패하면 너는 사회의 하층부에서 남들한테 경멸당하며 비참하게 살아가게 될 거라고 두려움을 심어주는 것 아닌가요?


 그런데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서울 의대를 간다고 행복해지지 않아요. 서울 의대에 간다고 해서 자존감이 채워지는게 아니거든요. 자기가 이뤄낸 성공이 자신을 지탱해주고 있어서 일시적으로 뿌듯하고 안정감을 느낄 뿐, 그 사람은 계속해서 자신을 떠받쳐주고 보호해줄 다른 성공들을 찾아내지 않을 수 없어요.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모두 정신적으로 건강한 건 아니죠. 성공이 자존감을 채워주고 모든 문제를 해결해준다면 우리 사회에서 성공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건강한게 정상일텐데도요.


 반대로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남들에게 무시당하는 일을 한다고 해서 불행해지지 않아요. 주위에 이런 일을 하면서 이런 임금을 받으며 이런 집에서 살아간다면 정말 불행할 것 같지만 정작 본인들은 자기 일과 삶에 만족하고 행복하게 사는 경우들을 종종 보시지 않나요? 사실 피라미드의 관점에 따르면 세상에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차민혁은 사회적으로 상류에 속해있는 사람이지만 차민혁 본인은 자신이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있지 못하다는 걸 알고 있죠. 차민혁은 그 열등감때문에 자식들이 자기보다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가길 바라며 좋은 발판 역할을 해주려고 했어요. 명문대학을 나와 검사까지 하다 나온 차민혁도 열등하다면 세상에는 차민혁보다 더 아래층에 있는 사람들이 대다수겠죠. 그래서, 지금 불행하신가요?

 

 마음의 병을 오래 앓다보니 사람이 부모로부터 습득하는 인생의 가치관과 자존감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해하게 돼요.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믿고, 행복을 찾을 수 있는 확고한 자존감이 있었다면 이런 마음의 병에 걸리지 않았을 테니까요. 공부든 다른 분야에서의 피나는 노력을 통한 성공이든 뭐든 좋아요. 하지만 그건 전부 인생에서 즐거움을 느끼고 행복해지려고 추구하는 것들이잖아요. 마음이 병들어서 무엇을 이뤄도 행복해질 수 없다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일까요. 마음이 병들어서 마침내 손가락 하나 움직일 힘조차 없어진다면...


 아이들이 공부나 성공이나 노력이나 외부적인 모든 것들과 상관없이 존재 자체로 부모에게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존재라는 걸 알려주세요. 그리고 그렇게 높은 자존감을 갖고 인생을 계획하고 세상을 살아나가는 것을 곁에서 도와주세요. 자존감 높은 아이는 실패했다고 자신의 존재가치가 무너지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더 어려운 과제에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요. 자존감 높은 아이는 마음이 안정되어 있고 불안해하지 않기 때문에 공부 습관만 잘 잡아주면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어요. 자존감 높은 아이는 우울하거나 불안해하지 않기 때문에 중독에 쉽게 빠지지 않아요. 자존감이 높을수록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기 때문에 공부든 뭐든 잘 해낼 수 있어요.   

   

 

(2) 승혜처럼, 부모님들이 자기 자신을 사랑하면서 당당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먼저 보여주세요

      

 아이가 되었으면 하는 모습을 부모님들이 먼저 이뤄내서 보여주세요. 아이의 자존감을 위해서 아이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한다는 부모의 말과 행동도 중요하지만, 부모가 낮은 자존감을 갖고 불행한 세상을 애써 견디며 살아간다는 마인드라면 아이의 자존감이 높아지기는 어렵겠죠.


 차민혁네 집에서 처음 일어선 것은 차세리에요. 세리는 클럽에서 일하는 것을 좋아하고 그것을 인생의 실패라고 생각하는 차민혁에게 당당히 맞설 정도로 자존감이 높아요. 아버지의 돈으로 모든 걸 해결했고 아버지를 그렇게 망신당하게 했으면서도 도리어 아버지의 가치관을 비판하는게 뻔뻔해보이기도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그 뻔뻔한 모습은 세리의 자존감이 굉장히 강하기 때문에 가능한게 아닐까요. 세리는 아버지의 망신이나 실망, 좌절, 괴로움, 아버지가 주는 낙오자라는 낙인같은 것들을 무시할만큼 자기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고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세리는 아직 어려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존감이 깎이는 일인지 알면서도 가짜 하버드생인척 연기를 했고 아버지에게 그 사실을 밝히기 두려워서 밖을 맴돌만큼 아직 어리고 약하죠. 그런 세리와 쌍둥이들에게 승혜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면서 살아가는 방법을 직접 보여줬어요. 세리와 쌍둥이들의 자존감을 지지해줬을 뿐만 아니라 승혜 자신이 자존감을 지키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줬죠. 승혜의 반성문은 세리와 쌍둥이들이 앞으로 살아가면서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큰 가르침이 되지 않을까요. 살다가 힘든 일이 닥쳐와서 자신의 존재 가치가 무너질 것 같은 위기가 오더라도 엄마의 용기있고 당당한 모습이 큰 힘이 되어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미지 출처: jtbc 홈페이지 'SKY 캐슬' 포토갤러리)




 저는 '남들도 다 하니까'라는 이유로 아이들이 받는 스트레스에 무감각해져가는 사회가 정말 무섭다고 생각해요. 이 드라마를 보면서 아이들이 죽음으로 몰릴만큼 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아가는 것에 문제의식을 느끼는 사람들보다는 스카이 캐슬의 부모들처럼 아이들을 뒷받침해주고 싶다고 생각하거나 스카이 캐슬 속의 부모들과 아이들의 모습이 '평범하다'라고 느끼는 사람들이 더 많아보이는 건 저만의 착각일까요.


 그 속에서 어떤 아이들은 우울과 불안으로 고통받다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하고, 평생 고통을 줄 수도 있는 우울증의 씨앗을 마음속에 갖게 되기도 할 거에요. 그러다가 원하는 대학을 간 이후에도 그 고통을 견디다 못해 훌쩍 세상을 떠나버리는 경우도 있겠죠. 남들도 다 고통받고 사니까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 사회라면 아이들을 처음부터 태어나지 않게 하는게 아이들을 위한 일 아닐까요. 아이들에게 이 세상에 와달라고 말하려면 우리 사회가 이 문제를 정말 진지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사회가 너무 거창하다면, 일단 우리집에서 부터는 어떨까요.  



(이미지 출처: jtbc 홈페이지 'SKY 캐슬' 포토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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